김억중 교수 연구실...한쪽 벽은 코르텐강판, 또 한 쪽은 칠판
"남은 10년을 위해 리모델링, 생각하는 공간으로 아주 좋다"

흡사 수도원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연구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모두 수납장에 넣었고, 책꽂이도 꼭대기에 설치했다. 오른쪽 벽은 코르텐강판으로, 왼쪽 벽은 칠판으로 처리했다.

교수 연구실하면 어떤 광경이 떠오르는가. 출입문 쪽만 빼고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종 자료는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보기만해도 숨막히게 두꺼운 원서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더러는 입구부터 책을 쌓아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실도 있다.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은 뒤쪽으로 나있는 작은 창문 뿐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런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깬 사람이 있다. ‘교수 연구실을 획기적으로 리모델링했다’. 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구미가 확 당겼다. 집은 아니지만, 충분히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과 교수(56)다. 공과대학내 11층 꼭대기에 있는 김 교수의 연구실은 과연 놀라웠다. 철학적 건축을 하는 교수답게 일반인들의 상식을 보기좋게 뒤집었다. 설계는 본인이 했고, 시공은 그의 제자들이 만든 회사인 TAO 건축에서 했다.

코르텐강판(부식철판)으로 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멍석이 깔려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바닥에 아무 것도 없다. 손님용 탁자 위, 창문쪽으로 놓은 책상 위에도 아무 것도 없다. 여기가 연구실이 맞나 싶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런 저런 물건들은 책상 양쪽 수납장으로 들어갔고, 꼭 필요한 책들은 출입문 위쪽 꼭대기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얼핏 보았을 때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물건 한 개가 없으면서 조용하고 안락한 게 수도원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나도 전에는 헌 책방 같은 연구실에서 살았다. 집이 인품을 대변한다고 주장했으나 나의 연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남은 10년을 생각해 작년 8월 이렇게 바꿨다. 10년 후면 정년퇴직을 한다. 이제 뭘 바꾸느냐고 하는데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사치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모두 집으로 가져갔다. 책에 휘둘리지 않고 내 생각에 심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 골동품점에서 구입한 현판. 책 읽고 연구하는 서재라는 의미의 '천장백연지재'를 멋스럽게 쓴 글. 김 교수는 이것을 연구실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은 10년을 위해 연구실 확 바꿔”
더 놀라운 것은 한 쪽 벽면 전체를 짙은 밤색 부식 철판, 반대편 벽면은 칠판으로 시공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코르텐강판은 일정시간 동안 서서히 부식하다 어느 지점에서는 멈춘다. 출입문은 물을 뿌려 더 부식되게 만들었고, 벽면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들은 실내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녹슬지 않을 것이다. 이 것처럼 늙어가고 싶다. 치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 쪽 칠판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좋다. 책 읽다 가슴에 와닿는 글귀같은 것을 적는다.” 이 칠판에는 마침 우암 송시열 선생의 한시 구절이 쓰여 있었다.

출입문을 열면 신발벗는 곳이 나온다. 검정 고무신은 김 교수가 애용하는 신발. 바닥에 멍석을 깔아 누구나 이 곳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우암 선생의 한시를 설명하던 김 교수는 자연스레 “건축은 변화하는 것(자연)과 고정된 것(집)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좋은 집은 집 자체가 좋은 게 아니다. 고정된 것이 변화하는 것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따라 좋은 집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몰두하는 이유는 바깥 변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취미로 고서와 골동품을 수집하는 김 교수는 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읽고, 쓰고, 설계하는 일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연구실에도 ‘삼국유사’ ‘동문선’ 등과 옛날 선비들의 문집이 많았다.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과거 선조들의 집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핀다. 그러면서 학문적으로 업적을 쌓은 선비들은 빼어난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계선생은 60세에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학문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도산서원을 짓는다는 글을 ‘도산자벽’에 썼다. 삶과 앎을 일치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에서 집을 지었던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 왜 짓고, 이 집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옛날 선비들은 좋은 집 한 채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60세에 집 지으면 그 나이에 무슨 집이냐고 한다.”

어떻게 보면 까다롭고, 어떻게 보면 철학이 있는 집을 짓는 그가 강조하는 것은 땅의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을 땅에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래서 설계를 의뢰하면 그는 땅을 보고 거기에 맞는 집을 그린다. 땅마다 모두 그에 맞는 역할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 자리, 그런 집, 그런 사람, 그런 삶이 맞아 떨어질 때까지 설계를 계속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의 철학이 어떤 것인가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연구실은 생각하기 좋은 공간 같았다.

김억중 교수는 누구?
철학하는 건축가, 대전 아주미술관 등 설계

김억중 교수
김억중 교수는 서울대 건축학과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건축과에서 공부하고 충북대 대학원 건축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를 펴냈다. 그 외 공저로 ‘일상의 건축’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가 있다. ‘김억중 전: 공간-기호의 질서와 힘’ ‘건축가 김억중의 수작전’ 등의 전시회도 열었다.

김 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한 건씩 집을 설계해오고 있다. 다작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게 특징. 집의 이름을 짓고, 이를 설명하는 시나 산문을 써서 집 주인에게 선물로 준다. 공주 어사재, 논산 수경당·사미헌·애일헌, 천안 완락재, 광주 사가헌, 대전 무영당 등이 그가 설계하고 이름을 지은 집들이다. 대전 아주미술관과 유성문화원도 설계했다.

그리고 공주에는 단무지 공장을 개조한 그의 집이 있다. 허름한 창고를 찾아다니다 이 공장을 만났다고. 그의 손길이 간 공장은 아름답고 독특한 집으로 변모해 각종 잡지에 소개된다. 공간 재구성으로 탄생된 집에는 작업실, 가족공간이 있다. 그는 이 집에 호가 없다는 의미의 ‘무호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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