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서원’ ‘수유+너머’의 성공한 실험···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과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성공한 실험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인디고서원’은 획기적인 행사를 기획했다. 격년제로 열리는 ‘인디고 유스 북페어’. 지난 2008년 첫 행사 이후 지난해 ‘가치를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포럼·강연·전시·연극·무용·시 낭송 등의 잔치를 했다. 이 행사에는 세계각국 청소년들과 진보적인 학자들이 참석한다. 초정인사가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당선하는데 기여했던 청년모임 리더, 쿠바의 체 게바라 연구소장, 인도의 불가촉천민출신 미술작가, 브라이언 파머 스웨덴 웁살다대학 교수 등이었다.

인디고 유스 북페어(메인)--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환경오염·기아·전쟁 등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인디고서원 아이들. 사진은 ‘2010 인디고 유스 북페어’

부산 청소년들은 꿈을 꾼다
부산에서 만든 작은 서원에서 이런 행사를 열다니, 놀랍지 않은가. 청소년들이 ‘겁없이’ 이런 행사를 열 수 있는 것은 용기이겠지만, 이런 용기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인문학의 힘이다. 허아람 대표는 지난 2004년 8월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한 골목에 서점을 열었다. 지금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점으로 유일무이한데다 책까지 발행하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여기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INDIGO+ing’ 국제인문학잡지 ‘INDIGO-새로운 인문 연대의 시작’을 발간하고 있다.

허아람 대표는 “책 읽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 땅의 청소년들은 무한경쟁 속에 내던져져서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성장은 돌보지 못한 채 혼돈의 시간을 헤매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피적인 현상과는 반대로 오늘날이야말로 살아있는 사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전인적인 인간이 필요한 시대”라며 “인디고서원은 꿈꾸는 청소년을 길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달 ‘주제와 변주’라는 이름의 세미나를 연다. 이 세미나는 내로라하는 명강사들이 한 번쯤은 다녀갔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스펙’이 아니라 ‘삶의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지금 부산에서 문화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시민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수유+너머’. 사진은 제가백가 강의를 듣는 사람들.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로 출발했던 ‘수유+너머’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 2000년 문을 연 이곳은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키는 연구자들의 생활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다. 한 개 였던 연구공간은 현재 7개로 늘어났다. 여기서는 금요인문강좌, 기획세미나, 6080세대를 위한 고전학교, 이론학교, 대중지성 등의 다양한 세미나가 매일 열린다. 그리고 치밀한 독서·깊이있는 토론·강도높은 글쓰기를 훈련하는 수련처 ‘강학원’도 있고, 청소년들을 위한 서당도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가 서울 수유리에 작은 공부방을 얻은 뒤 소수의 국문학자들은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러자 지식에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교수, 작가, 학생, 주부 등. 시민들은 오늘도 여기서 지적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에 대해 성찰한다. 고미숙 씨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에서 “먹고 놀고 즐기는 일상의 공간이면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배움터, 구도를 위한 명상이 가능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고 씨는 지난 2007년 ‘책읽는 청주’ 선정위원회가 뽑은 대표도서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의 저자로 전국적인 강사 대열에 합류했다. 청주도 이미 몇 차례 다녀갔다.

“인문학,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시작은 미약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 감동을 주고 있는 ‘인디고서원’과 ‘수유+너머’는 인문학공부 모임이다. 두 곳은 인문학 붐을 일으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문학 강좌 바람은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건너왔다.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는 살인사건에 연루돼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8년째 복역중이던 여죄수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에 더 빈곤해진다는 얘기였다.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보다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결론을 내고 95년 노숙자·빈민·마약중독자·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열었다. 철학·미술사·논리학·역사·문학 등의 강좌를 개설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 코스는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 원조가 되었다. 그가 지은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刊)’은 국내에 번역돼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최근 서점에서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지성 씨가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에 대해 소리높여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아인슈타인·처칠·에디슨이 사고뭉치에서 위대한 천재가 됐던 비결, 둔재들만 가던 삼류학교 시카고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 카네기·워런 버핏·이병철·정주영이 황금 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모두 인문학에 있다”고 잘라 말한다. 특히 인문고전에 대해 강조하는 그는 장한나가 하버드대학 음악과가 아니라 철학과를 간 이유는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대국들의 교육방식 또한 백과사전을 암기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위대한 천재들이 남긴 인문고전을 공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성찰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지나친 경제중심적 사고로부터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종합적·포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 인문학”이라면서 “사람은 누구나 인문학적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만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문학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가 나왔을 때 학자들은 한국사회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인문학이 당장 입고, 먹고, 돈을 버는데 필요한 학문이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더 한 것을 준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