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취업 전공 선호… '자원 없다' 학과 폐지·명칭 변경도
전문대 영역과 애매모호… "대안은 교양강좌로 명맥 유지해야"

▲ 지난 11일 청주의 한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대학도 인문학 위기>도내 대학들이 '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인문대학 관련 학과를 잇달아 폐지하면서 '인문학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더욱이 4년제 사립대학들이 취업과 관련해 전문대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부 학과를 새롭게 신설하면서 경계까지 애매모호 해 지고 있다. 심지어 전문대학 인문학 강좌가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기까지 하고 있다.

청주대학교는 지난해 학부 정원 조정계획을 확정 하면서 올해 인문대학 어문학부 및 학과 가운데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 러시아어문학과를 폐지했다. 또 사범대 평가와 관련해 지리교육학과를 폐지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영미어문 학부를 폐지할 예정이다. 또한 예술대학 공연영상학부 공연예술학과를 폐지키로 했다.

대신 전문대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군사전략 전문가를 양성하는 군사학부를 새롭게 신설했다. 청주대학교는 지난 2009년 문화철학과와 무용전공, 나노과학과를 폐지하는 대신 전문대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치위생학과를 신설하면서 보건계열을 강화한 바 있다. 물론 같은 시기 인기가 높은 간호학과와 공연예술전공 관련학과도 새롭게 신설됐다.

이는 IT관련 학과 및 학부 아산 캠퍼스이전을 추진 중에 있는 영동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전문대학 미용관련 학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부 뷰티케어학과가 보건산업대학에 신설되어 운영 중이다. 청주사범대학으로 출발 해 비교적 타 대학에 비해 인문사회과학 대학이 강한 청주 서원대학교(98년 명칭변경)도 지난 2000년대 초반 보건복지학부 레저운동관리학과가 신설되어 청주효성병원과 재활의학 분야에 협력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립대 취업관련 전문학과 신설
서원대학도 자원부족 등을 이유로 지난 2004∼2005년도에 무용과 와 경영정보과 야간이 폐지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 철학과를 폐지한 지방대학이 유독 많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말 현재 전국 55개 대학에 철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8개 대학이 철학과를  폐지하거나 명칭을 변경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17개 대학에 철학과가 설치되어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폐지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반면에 충북의 경우 청주대학교가 3년 전 문화철학과를 폐지한 뒤 국립대인 충북대가 유일하게 철학과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주대가 올해 문화콘텐츠학과로 명칭을 변경해 새롭게 신설했다.

가까운 충남의 경우도 철학과가 설치된 곳은  백석대학교(기독교 철학)가 유일하다. 호서대는 2002년 폐과됐고 선문대는 2008년 문화콘텐츠 학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를 두고 대학 관계자들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대학 관계자들은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 되어야 할 4년제 대학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직업교육 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수이남 국립대만 철학과 유지
또 4년제 사립대학들은 "순수 기초학문 분야는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들이 맞고 경쟁력 있는 응용학문이나 실용학문은 사립대학이 맡아야 한다. 취업을 위한 전문학사 과정의 전문대학 전공과는 대부분 본래부터 4년제 대학에 있었던 것이다. 심화학습 단계로 호봉 승급과 처우개선, 자기계발을 위한 연계 학습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내 국립대학들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과 국립대 법인화 추진으로 언제 지원이 끊길지 모르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며 "역시 경쟁력 있는 실용학문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청주대학교 안영호 기획처 팀장은 "국립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이 적은 사립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를 전략적으로 육성할 수밖에 없다"며 "한수이남 사립대학에서 철학과가 있는 사립대학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이는 지역거점 대학인 국립대학이 보완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충북대학교 김귀룡(철학과 교수) 교무처장은 "장기적으로 인문학은 교양강좌 형식의 선택과목으로 가고 실용학문 위주의 전략적인 학과 및 학부 편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며 "인문학의 위기는 학부제 시행에 따른 원인도 있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어떤 전공을 선호할 지는 이미 나와 있는 답이다"고 전했다.

"시대에 맞게 재해석…관심 끄는 강의 중요"
최병준 서원대 독어독문과 교수 '바른 가치관 인문학 필수'

▲ 최병준 서원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최병준(문학박사·사진) 교수는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풍조를 말해 준다"며 "한마디로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밥 먹여주는 학과가 아니라 푸대접을 받는 것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 실용학문은 전략적으로 키워지고 인문학은 교양강좌 형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며 "영어 조기교육에 유학까지 다녀오다 보니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영문학은 더 이상 전공자를 필요로 하지 않아 많은 대학에서 폐지되는 추세다. 독어도 중국어가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전공자의 수준이 예전만 못하다. 한 때 고등학교에서 제 2외국어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이제 제 2외국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에서 문학을 10년 동안 공부한 동료 교수가 대학 강좌에서 정작 회회만 가르치며 신세한탄을 한 적이 있다"며 "국내외 독일·프랑스계 회사가 정작 영어회화 가능자를 선호하는 것만 보아도 현 세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문학은 인성을 살찌우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학문으로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며 "전공으로 푸대접을 받지만 유명한 인문학 강의는 수백 명의 청강생을 끌기도 한다. 한국의 문학이 시와 소설이 주도한다면 독일 문학을 선도하는 것은 희곡이다. 이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 현재 '연극의 이해'란 강의를 하고 있다. 이는 270여명의 학생이 수강 신청을 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 강좌는 앞으로 교양강좌로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인문학이 이처럼 위기를 맞게 된 데에는 교수 등 관련 학자들도 반성해야 한다"며 "도올(김용옥 철학과 교수)의 강의가 '시대의 사기극'이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는 인문학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끌어낸 장본인이다. 순수 학문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실과 어울리게 새로운 해석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관심을 이끌어 내는 교수 지도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모두가 깊게 반성해야 한다. 실례로 임상경험을 달달 외우는 전공의들에게 인성을 살찌우는 인문학 강의를 반드시 듣도록 하는 가천의대 총장의 사례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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