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회장선거,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 어른선거 흉내"
합숙에 홍보물 제작·단기 스피치 학원까지 과열 양상도

▲ 지난 10일 청주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다음날 있을 회장단 선거를 앞두고 등교하는 같은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뽑아달라고 유세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호 3번 김○○… 기호 2번 오○○" 지난 10일 브랜드 아파트가 모여 있는 청주의 한 초등학교 앞. 다음날 있을 회장 선거에 앞서 자신이 지지하는 같은 반 학생의 회장 및 부회장을 지지하는 유세가 한창이었다. 이 학교는 이번에 회장후보 3명, 부회장 후보 4명이 출마를 했다. 같은 시기 다른 학교는 12명 안팎의 후보가 출마하며 과열양상을 빚기도 했다. 한 초등학생은 마치 로또 뽑기를 연상케 하듯이 작은 구슬크기의 축구공이 담긴 통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피켓을 들고 다니며 뽑아 달라는 선거활동을 벌여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학교 후문은 인근 공원과 아파트 단지 산책로가 붙어 있어 평소에도 지나는 이가 많은 곳이다. 행인과 선거유세를 하는 학생들이 뒤엉켜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일부 학생은 학교 교문과 담벼락에까지 올라가 등굣길 친구들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급우를 뽑아 달라는 호소를 앞 다퉈 하면서 과열 양상을 빚기도 했다. 자칫 발을 헛디딜 경우 다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에서도 지도교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한 아주머니가 학생들에게 뭔가 지시하고 있는 듯해서 인사를 건넸다. 혹시 지도 교사인가 해서 아는 척을 한 여인은 이번에 어린이 학생회장에 출마한 한 학생의 어머니였다. 한 곳에서만 유세를 하지 말고 정문과 후문에서 나눠 하고 일부는 교실 현관 앞에서 하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선거 유세가 한창인 한 후보에게 물었다. "공약이 뭐고, 왜 학생회장이 되려고 하는데?""엄마가 나가라고 그랬어요. 나중에 사회 생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요. 공약은…"

비슷한 질문을 유세 활동에 열심인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 봤지만 자신이 왜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되려 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다만 일부 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에 씌어진 '건강한 학교, 밝은 학교, 행복한 학교'라는 글귀에서 이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을 짐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지난해 교육계 수장을 뽑는 6.2지방선거에서 쉽게 보았던 캐치프레이즈인 듯 했다.

한 학생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스피치 학원도 다녔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료는 10만원 안팎이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한 유명 여성 앵커 이름을 딴 스피치 학원의 한 달 수강료가 70만원 안팎인 점을 생하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이다. 하지만  청주에서 검도학원 등의 수강료가 월 9만원이고 지역물가를 고려한다면 비싼 가격이기도 하다. 항간에서는 학생회장 출마를 위해 POP글씨 의뢰, 선거 벽보 및 홍보 전단 인쇄, 스피치 학원 수강 등을 하는데 모두 합쳐 150여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도 했다. 한 마디로 "부모가 돈 없으면 회장 선거도 못나간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급우 위해 무엇 할지 분명한 목적의식 중요"

▲ 초등학교 어린이회장 선거가 과열양상을 빚으면서 교문과 담벼락까지 올라 유세활동을 벌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실제로 청주의 한 인쇄 골목에선 중·고등학교 회장단 선거에서 선거벽보 제작 의뢰를 받았던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다. 또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를 앞두고 일부에서는 "떡볶이를 사줬다. 돈가스를 사줬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심지어 "회장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출마한 아이 엄마가 같은 반 친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합숙훈련에 들어갔다"는 말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또 "학부모들 사이에서 '에어컨을 사 주겠다''어학연수를 보내 주겠다'는 지키지 못할 공약도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부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를 지켜보면서 맹목적으로 어른 선거를 흉내 내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초등학교 회장 선거도 민주주의로 가는 하나의 교육이다. 하지만 출마하는 학생들이 자신이 왜 어린이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려 하는지, 회장이 되어서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단순히 '엄마가 시켜서'라고 말하는 초등학생에게서 어떤 미래를 볼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더욱이 어른 선거 흉내 내기 식 선거활동이라면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 학교 교장은 "전교 학생회장은 어린이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졸업 할 때에 봉사 상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며 "다만 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입학 사정관제로 대학 신입생을 뽑을 때에 가산점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다 보니 다소 과열양상을 빚는 것 같다. 먼저 학교에서 선거 벽보 인쇄를 맡겨 야단을 친 적이 있는데 우리 학교가 그런 전통이 있는지 아직 몰랐다. 선거도 하나의 교육이란 생각은 공감한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공명선거, 돈 안 드는 선거, 가족이 함께 공약을 적고 연설문을 만드는 선거가 되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리더 되기 위한 평소 준비 중요"
맹계실 한샘 리더십 스피치 학원장 밝혀

▲ 맹계실 한샘 리더십 스피치학원장
청주 한샘 리더십 스피치 학원에 맹계실(47·사진) 원장은 "회장 선거를 앞두고 단기 코스로 문의를 해오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맹 원장은 "맹목적으로 어른들 선거를 흉내 내기보다 평소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스피치 훈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도권에 유명 앵커 이름을 딴 스피치 학원은 한 달 수강료가 70만원 안팎이지만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다. 이는 리더로 키우려면 말 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수도권에서는 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학원에서 대필을 해 주기도 한다"며 "하지만 지역에서는 학생에게 먼저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바탕으로 기조 연설문을 쓰게 하고 교열을 봐 주는 정도다"고 전했다. 그는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가 때론 학부모들의 대리전으로 번져 과열양상을 빚기도 한다"며 "리더십 스피치 훈련은 학창 시절엔 발표력을 기르고 사회생활에선 프리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열 양상을 피하기 위해 예고 없이 출마자 신청을 받고 기조연설 후 하루 만에 투표로 결정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며 "현재는 사전 등록과 선거 유세, 투개표로 이어지다 보니 어른 선거를 흉내 내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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