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통은행˙건설업 몰락-대형할인점 진출
예금·개발이익 역내 재투자 안돼

지역자금의 주요 역외유출 경로로 대형 할인매장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웬만한 경제학자나 경제관료, 언론마저 마치 신념화된 ‘소견’처럼 되뇌이는 대답이다. 과연 그런가.
전문가들은 “결론적으로 대형할인매장들이 지역자금을 역외로 유출시키는 주요 근원지라는 설명은 일정 부분 맞다”고 인정한다.

2∼3년전 호황기 때 대형 할인점의 연 매출액 규모는 1000억원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청주에 진출한 대형할인점을 모두 합칠 경우 인건비와 제반 경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2000억대 이상 순매출을 기록했다는 어림계산이 가능한 대목이다. 따라서 타지에 본사를 대형할인점들을 통해 자금이 빠져나간다는 설명은 타당해 보인다. 다만 이것이 역외유출 현상의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고민이 있다.

유출경로 많고 복잡해 특정하기 곤란
지난해만 해도 자금의 역외유출 규모, 그것도 화폐의 발행·환수 규모만으로 추정한 액수가 6000억원을 넘는다는 점을 볼 때 다른 유출원인이 규명돼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충북은행의 몰락을 또 다른 중요 원인으로 꼽는 견해가 지지를 받는다. 지역 예금이 그 지역에 기업대출 등으로 이어질 경우 자금의 선순환이 가능하지만 대출처를 찾지 못해 지역 밖으로 나간다면 예금을 통해 모처럼 자본형성을 하더라도 그 지역의 투자 및 생산활동은 확대되지 못하게 되는 때문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충북은행을 비롯, 신용금고 종금사 등 향토 금융기관의 몰락 이후 기업들은 돈을 빌리려 해도 빌릴 곳이 사라져 버렸다. 충북은행을 합병한 조흥은행은 시중은행의 잣대로 지역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하는 바람에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는 소리는 이젠 진부한 얘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향토 금융기관의 몰락이 자금역외 유출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연구결과 역시 현재로선 뚜렷이 없다.

이런 가운데 “지역의 붕괴돼 버린 건설부문이 자금의 유출을 부채질하는 주요원인”이라는 또 다른 분석이 눈길을 잡아끈다. 건설업체 대표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개발이익 외지 건설업체가 독과점한다”
“충북 경제가 근래 탄력을 잃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유수한 지역의 건설업체들이 IMF를 전후해 줄줄이 도산하면서 생긴 여파 때문이다. 무주공산의 지역 건설업계에 대자본으로 무장한 외지업체들이 진출, 점령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은 협력업체 리스트라는 것이 있어서 웬만하면 아무하고나 원청-하청의 계약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 건설인은 “IMF 이전만 해도 청주에 중견 건설업체가 30∼40개에 달했다. 그런데 환란 위기를 전후해 업체의 90%이상이 부도로 쓰러졌다. 그나마 꿋꿋이 살아남은 신라건설은 서울로 활동무대를 사실상 옮겨버렸고, 기껏해야 덕일과 두진 정도가 남아 있지만 덕일건설 역시 대표가 지역을 떠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부영 대림 대우 현대 등 외지의 대기업체들이 아파트 건축시장과 주요 토목공사를 독과점하고 있다. 이러니 지역에서 많은 건설투자가 이뤄져도 개발이익이 지역업체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고 열변을 토했다.

건설업계 등 경제주체들의 분발 필요
지역 건설업체들의 부진이 지역경제 침체와 자금의 역외유출을 부추기는 큰 원인이라는 주장인데, 이같은 ‘경험론적 경제학’은 실상에 제대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협회 충북도회와 한국은행 충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에서 발주된 공사규모는 870여 건에 1조 2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외지업체가 수주한 것은 63%인 8200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역의 건설업계는 자연 경영난이 가중, 지난 한해 부도로 쓰러진 건설업체가 7곳에 이르고 있다. 외지업체들이 독주하다시피 한다는 주장이 확인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업계는 지역 건설업의 활성화를 위해 분리발주 등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처방일 수 없다. 도내 건설업이 견실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고 지원하는 지역의 분위기가 전제된 가운데, 건설업계 스스로 외형 확대보다는 경영의 내실화를 도모하는 한편 기술개발과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그치기 십상인 까닭이다. 철저한 자구노력과 경영의 투명성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 이를 위해 업계의 구조조정 노력 등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라는 인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충북은행을 대신할 제2의 향토은행 육성과 재래시장 활성화 노력 역시 우리의 경제주권 확립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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