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각가 이석호의 집...부부가 1년 동안 지은 집, 철골조에 목재로 마감

충북도청 근처에서 ‘오리골’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도암 박수훈 씨는 서예가다. 벌써 여러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이 식당을 가본 사람들은 도암의 글씨를 여기 저기서 발견했을 것이다. 차림표, 화장실, 방안, 문패 등등···식사 때가 아니면 예술가로 돌아가는 박 씨와 도원 이석호(55) 씨 집을 찾아나섰다. 알고보니 도암과 도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도암이 붓글씨를 쓰면 도원은 그것을 새겼다.


도원의 집은 청원군 문의면 도원1리에 있다. 문의면 소재지에서도 한 참을 들어갔고, 그 동네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과연 예술가의 집 다웠다. 넓은 마당에 단층짜리 집이 있고 오른쪽에 작품 전시공간, 왼쪽에 작업실이 있었다. 철골조집에 목재로 외장을 마감한 것인데, 마당에서 보면 마치 갤러리 같다. 머리는 백발에 전혀 꾸미지 않은 그가 나오면서 도암을 보고 웃었다.

집 외관 목조는 짙은 밤색. 나무에 기름칠을 했을 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둔색이 된다는 게 집주인의 말이다. 대지는 580평에 밭이 350평, 집이 33평, 작업실 12평, 전시실이 9평이다. 이 씨 부부는 지난 2003년에 골조를 세운 뒤 1년 동안 손수 집을 지어 2004년에 입주했다. 건축재료와 기법 등 모든 것을 부부가 결정해서 짓느라 1년 씩이나 걸렸다는 것. 그러나 나무를 많이 다뤄본 사람이라 그런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고도 남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인테리어도 독특했다. 안주인인 김명순 씨가 발품을 팔아가며 구입했다는 실내 등, 가구, 주방용품 등이 눈에 띄었고 곳곳에 걸린 주인의 서각작품이 빛을 발했다. 거실 커다란 유리창으로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주방 유리창을 커피숍처럼 설계한 것도 보기 좋았다. 도원은 “낮에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햇빛이 잘 들어온다. 요즘같은 겨울철에도 아침 저녁에만 보일러를 튼다”고 말했다. 창문으로는 넓은 마당이 보이고, 마당에 나가서면 멀리 동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꼭대기 집인데다 시야를 가리는 게 전혀 없어 시원했다. 김명순 씨는 “이 집에 살면서 가장 좋은 건 앞이 탁 트여 아래가 한 눈에 보인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이 집은 밭이 350평이나 딸려 있다. 그런데 대부분을 잔디밭으로 가꾸고 텃밭에는 배추·무·시금치 등의 채소를 가꾼다. 지금은 엄동설한이라 볼 수 없지만, 봄·여름에는 푸른 잔디밭과 꽃들로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도암은 한 마디 거들었다. 실제 부부의 솜씨로 보아 이 넓은 마당을 쓸쓸하게 방치할리는 만무일 것 같다. 지금은 사철나무들만 있지만, 흰눈과 어우러져 그런대로 운치있었다.

공무원 생활 처음한 문의면에 둥지
작업실에는 커다란 무쇠난로와 서각하는데 쓰는 각종 도구, 나무 같은 게 널려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연신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버지 때부터 쓰던 오래된 시계도 있었다. 전시실로 가자 그동안 그가 해온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도암의 글씨가 가장 많았고 쇠귀 신영복,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있었다. ‘늘 처음처럼 새 날을 시작하고 싶다’ ‘함께 여는 새 날’ ‘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與誰同坐 누구와 더불어 자리를 함께 하랴’ 등 좋은 글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사의 글씨는 힘이 있으면서도 멋이, 쇠귀의 글씨는 독특함 그대로, 도암의 글씨는 부드러운가 하면 강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의 글씨를 많이 새긴다. 작업했을 때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추사체는 강렬해서, 도암체는 간결하면서도 각이 살아 있어서, 쇠귀체는 뜻이 좋고 독특해서 좋다. 서각은 글씨를 잘 보이게 하면서도 보존성이 있다. 나는 글씨를 쓴 사람이 어떤 느낌으로 썼을까를 생각하며 동화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체전에는 나가 봤지만, 아직 개인전을 못했다. 의뢰들어오는 일 하다 작품을 하려니 시간이 별로 없다. 1년 동안 해도 내 마음에 드는 작품 2~3개 하기가 벅차다. 개인전 한 번 해야 할텐데···”라고 말했다.

도원이 문의면에 정착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문의면사무소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공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도 문의면이다. 그래서 정이 들었다. 이 곳이 청정지역이라 충북에서는 주거환경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러면서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한 마디 했다. “집의 구조는 단순할수록 좋다. 집은 한 번에 완공하는 게 아니고 살면서 계속 고치고 만져야 한다. 이 게 재미다. 올해는 아궁이가 있는 찜질방을 지어보려고 한다. 온돌방 한 칸 있는 게 시골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도원 이석호는 누구?
웃골서각공방대표···장승·솟대·서각 혼자 익힌 재주꾼

서각가인 도원 이석호 웃골서각공방 대표는 청원군 공무원 출신이다. 26년 동안 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지난 2008년 명예퇴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서. 그의 취미는 장승과 솟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손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었다. 혼자 공부해 취미를 살렸고, 서각 또한 혼자 익혔다. 힘찬 글씨는 힘찬 대로, 작으면서 부드러운 글씨는 부드럽게 표현해 내는 손 감각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술이다. 20여년 전 문의면사무소에 근무할 때 당시 민성기 면장이 “마을회관 현판 한 번 파보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

이 씨는 “서각 역시 취미로 하다 서예가 도암 박수훈 씨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했다. 서각은 누군가의 글씨를 파는 일이기 때문에 글씨가 필요하다. 마침 도암이 자신의 작품을 내줘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의 문화재단지·대청호미술관·손병희선생 사당·단재 신채호기념관 등의 현판이 모두 이 씨 작품이다. 문의 문화재단지에는 그가 만든 장승도 여러 개 서있다. 도원1구 청년회가 추진하는 솟대공원이 완공되면 언제든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도원이라는 호는 마을이름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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