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출신’기록된 문집 「옥주유고」 발견
전순표 향토전시관장 ‘옥천향토문화’기고

<옥천신문>조선말 근대화를 추구해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3일천하’를 이룩했던 김옥균 선생이 옥천 사람이라는 기록이 실린 문집이 발견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선생의 옥천 출생설은 안내면 인포리와 장계리 인근 마을을 중심으로 얘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안내면 인포리에는 김옥균 선생 선대 묘소로 추정되는 묘소가 관리되고 있는 점과 아울러 군북면 석호리 청풍정 명월암에 전해오는 김옥균과 기생 명월이와의 애틋한 사랑 전설과도 연계, 이 문집 기록의 사실 확인이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전순표 향토전시관 명예관장이 입수한 ‘옥주유고(沃洲遺稿)’ 발문(跋文)에는 ‘김옥균은 옥천 출생으로 옥천 사정을 잘 알고 있고’라고 밝히고 있어 그동안 안내면 인포리와 장계리 일원에서 전해지는 ‘김옥균 옥천 출생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전 관장은 이 기록에 근거해 안내면 인포리 김옥균 선대 묘소로 추정되는 묘소를 답사하고, 안동김씨 후손들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근대화의 선각자 김옥균 옥천 출생’이라는 글을 (사)옥천향토사연구회(회장 안후영)가 펴낸 옥천향토문화 제14집에 기고했다.

▲ 소정리 출신 정납 선생이 쓴 <옥주유고> 문집 발문에 김옥균이 옥천 출생이라는 기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전 관장에 따르면 옥주유고라는 시집은 군북면 소정리 안말이 고향인 정납 선생의 유고 시집으로, 지난 1982년 시집을 발간할 당시 고 정구충 박사가 쓴 발문에 ‘김옥균은 옥천 출생으로 옥천 사정을 잘 알고 있고’라고 옥천 출생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김옥균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각각 시·도 문화재로 보전, 계획 중인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와 대전시 동구 이사동 외에 우리 고장 출생설을 주장할 수 있는 토대를 찾게 되었다.

옥주유고에는 특히 개화파 김옥균 선생이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근대화 개혁을 단행한 후 같은 고향 사람인 정납 선생을 일본과의 교섭 창구에 쓸 인물로 꼽고 있다는 사실과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후 혹여나 있을 체포령을 피해 경상도로 피신했던 내용 등을 함께 담고 있다.

옥주유고 발문을 쓴 정구충 박사는 옥천읍 문정리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 일본 대한의과대학을 졸업,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의료계에 종사한 것을 시작으로 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여자의대 초대학장과 대한의과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의료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1986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당시 지역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탁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도록 유지를 남겼으며, 부인인 정남술씨 명의의 정남술장학회를 운영, 우리 고장 이과 계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갑신정변 후 김옥균 선생이 중국에서 피살된 후 부인 기계 유씨와 딸이 10년간 옥천 땅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다 1894년 발견된 후 1914년 충청도 논산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까지 추적, 글을 마친 전 관장은 “그동안 김옥균 선생이 옥천 출생이라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었는데 정납 선생의 시집 옥주유고를 통해 김옥균 선생이 옥천에서 출생했다는 민간 기록을 찾았다는데 그 가치가 있다”며 “김옥균 선생이 태어났다는 곳이 공주와 대전 등지가 있는 만큼 앞으로 현지를 방문하고 각종 자료 등을 연구해 실제 출생지가 어디인지 고증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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