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축구단 ‘프로’에서 ‘실업’으로 후퇴한 진짜 이유
비용과다·시설부족 명분에 가려진 정치·행정적 배경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충북도당은 충북연고의 도민프로축구단 창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 종목에 걸쳐 프로구단 하나 없는 충북의 열악한 스포츠 인프라를 확대해 도민의 역량을 모으고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당시 이시종 민주당 도지사 후보는 프로축구단 창설을 충북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주요 공약중 하나로 제시했고 취임이후 프로축구창단지원팀이라는 별도 기구를 신설해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는 과다한 창단비용, 경기장 시설부족 등을 이유로 프로팀(K리그)이 아닌 실업팀(N리그) 창단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명분 뒤에는 지방선거와 지방권력 변화에 따른 다양한 요인이 깊이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시종 지사의 프로축구단 창설 공약이 실업팀 창단으로 용두사미가 된 배경을 분석해 본다.

1. 창단비용 150억원·시설정비 부담

충북도가 당초 구상한 프로축구단은 인천, 대구, 대전, 경남, 강원과 같이 도민주 공모를 통해 155만 도민이 참여하는 도민구단으로 2012년 창단해 2013년 K리그에 참가한다는 계획이었다.

창단비용은 선수영입비, 축구발전기금 등에 70억 원이 드는 것을 비롯해 인건비, 훈련비, 유소년축구단 운영 등 운영비로 80억 원 정도가 들어 창단 첫 해에 150억 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청주, 충주, 제천 등 3개 시 종합경기장을 K리그 시설규정에 맞춰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소요되는 비용은 이 보다 훨씬 많다.

K리그 시설규정은 관중석 1만2000석 이상, 보조경기장, 광고간판, 야간 조명시설, 선수단 대기실 등을 갖춰야 하는데 당장 청주종합운동장만 해도 관중석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비가 필요한 ‘B급’에 불과한 실정이다.
도 관계자는 “기업들의 후원과 도민공모를 병행키로 하고 대기업과 도내 중견기업들의 의사를 타진했지만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지사 공약이라 해도 자칫 도민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프로구단 창단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창단비용과 경기장 시설정비 외에 매년 소요되는 운영비도 80억원에 달하지만 입장료와 광고수익으로 이를 충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충북도가 운영하고 있는 5개 실업팀(역도, 유도, 펜싱, 볼링, 카누)의 올해 예산이 19억원에 불과한 실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도민 프로축구단을 운영하는 타 지역의 경우 대부분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자칫 재정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2009년 경남은 22억6000만원, 강원은 13억2000만원, 가까운 대전도 18억7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남자팀의 경우 37억원, 여자팀 28억원이면 가능한 실업팀 창단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2. 공약의 현실성 문제는 없었나

충북 연고 프로구단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프로축구 원년 럭키금성과 남자프로농구 SK나이츠가 연고지를 옮기면서부터 불거졌다. 최근에는 여자프로농구 KB세이버스가 천안에서 청주로 연고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청주실내체육관의 시설 문제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대형 스포츠이벤트에서 충북이 배제되는 불명예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2년 월드컵 유치 경기장 선정에 신청한 15개 도시중 전남 무안과 함께 유일하게 배제된 것이다.
이시종 지사가 후보시절 프로축구단 창단을 공약한 데에는 충북의 자존심 회복과 도민화합이라는 명분과 함께 이러한 지역의 여론도 반영된 것이지만 실업팀으로 후퇴, 용두사미가 돼 빛이 바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초 이 지사가 창단비용만 150억원에 달하는 재원마련 대책 없이 무리하게 공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프로축구단 창단과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기업 스폰서 등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 지역연고 프로축구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제시한 공약이었는지는 짚어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시종 도지사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프로축구단 창단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도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주식공모와 도의 출자를 통해 상당부분 확보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여기에 유니폼과 티셔츠 판매 등의 머천다이징사업, 광고수익사업, 입장수익사업, 선수 이적·임대사업, 식·음료판매수입사업, 유소년수익사업, 친선경기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실제 인천유나이티드는 2009년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179억1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3. 정치적 이해관계로 공론화 시들

충북 연고 프로구단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정작 6.2지방선거에서 이시종 도지사 후보가 제시한 도민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은 이렇다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유력 후보였던 정우택 전 지사를 의식한 나머지 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에 대한 찬반 공론화는 고사하고 의견개진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시종 후보 선거캠프는 도민프로축구단 창단과 관련해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발제자는 물론 패널로 참여할 인사들을 섭외하지 못해 무산됐었다.
캠프 관계자는 “충북 연고 프로구단 필요성을 강조하던 유력인사들은 물론 체육계에서 까지 토론회 참석을 기피했다. 결국 토론회 대신 보도자료를 통해 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 등 선거판세가 정우택 후보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에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꺼려했던 체육계 안팎의 분위기에 이같은 상황이 반영됐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심지어 이시종 후보의 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에 대해 충북도체육회 이규문 상임부회장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상임부회장은 “충북도 재정 형편으로는 강원, 인천과 같이 K-리그 팀을 창단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 선거를 앞두고 프로축구팀 창단을 선거 이슈로 삼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발언한 것.

여기에 민주당이 발끈해 비난 성명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이 부회장이 충북의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 부회장은 충북도의 대변인가. 체육인으로서 이 부회장이 할 일은 도의 어려운 재정형편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프로축구단 창단 문제는 공약으로서의 가치와 필요성은 묻혀버린 채 정치문제로 변질됐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4. 체육계도 프로 대신 실업

6.2지방선거 기간 내내 왕따 당하다시피 했던 도민프로축구단 창단 공약은 이시종 지사 취임 이후에도 큰 힘을 받지 못했다.

도는 민선5기 출범이후 조직개편을 통해 행정국 체육진흥과에 프로축구창단지원팀을 신설해 사업추진에 돌입했다. 하지만 설문조사와 토론회를 통해 드러난 여론은 프로축구단 창단에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말부터 9월초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프로축구단 창단의 실현 가능성을 도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운영비 조달에 대한 대안과 손익계산이 필요하다’, ‘경기장 시설확충에 대한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등의 매우 신중한 응답이 많았다.

이후 진행된 5차례의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나왔으며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팀 대신 실업팀을 창단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창단에만 150억원이 드는 프로팀 대신 30억원 안팎이면 가능한 남자 또는 여자 실업팀을 창단하자는 것. 이같은 주장 이면에는 2012년부터 시행되는 K리그 승강제도 크게 작용했다. 성적에 따라 실업팀도 K리그로 승격할 수 있고 프로팀도 N리그로 내려 앉을 수도 있게 돼 무리하게 프로팀을 창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

심지어 체육계에서도 프로팀 대신 실업팀을 창단하자는 주장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실업팀 창단 후 3~5년 뒤에 프로팀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경기장시설과 우수선수 육성 등 축구 인프라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

한 관계자는 “실업팀을 창단한다면 도내 선수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지만 프로팀의 경우 타지역 선수들을 영입해야 한다. 지역 축구발전을 위해서라도 우선 실업팀을 통해 인프라를 키우고 이후 프로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의지 부족인가 출구 전략인가
기업 후원·도민주 공모 너무 일찍 포기 ‘뒷말’

도민축구단 창단이 프로팀에서 실업팀으로 후퇴가 기정사실화 되는 것과 관련, 충북도가 일찌감치 출구전략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창단과 경기장 시설정비 등 과다한 비용은 물론 체육계에서 까지 프로팀 보다 실업팀에 무게를 싣자 서둘러 결론을 내려 정치적,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도 관계자는 “프로축구단 창단이 민선5기가 출범한지 고작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서둘러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 또한 프로팀 불가 주장의 주요 논리인 기업 후원의 어려움도 너무 빨리 포기하는 느낌이다. (이시종 지사)공약대로 프로축구단이 충북의 자존심과 도민화합 차원의 사업이라면 범도민 운동으로 확대하거나 공론화 과정을 좀 더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업 후원은 경제 여건과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적잖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시종 지사가 프로축구단 창단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업을 만났고 세일즈 행정을 펼쳤는지 모를 일”이라고 덧붙였다.

도민주 공모 또한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너무 서둘러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프로축구단 창단 찬성 입장의 체육계 관계자는 “프로팀 창단을 위해서는 연고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붐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충북도나 체육계 모두 붐 조성 보다 비용과 시설 문제를 먼저 들며 손익계산에 매달렸다. 강원이나 대전 등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거론하는 등 부정적인 요인을 부각했다. 프로팀에서 실업팀으로 기정사실화 된 데에 다양한 판단의 근거가 가감없이 활용됐는지, 또한 이것이 도지사에 정확히 전달됐고 실업팀 창단으로 후퇴하는 결정에 도백의 의중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긍정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민프로축구단 창단 또한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민사회 진영도 섣부fms 프로팀 창단에 우려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충북도가 4대강사업 추진 여부에 대해 지루하게 시간을 끈 것에 비하면 프로축구단 창단 문제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매듭을 짓는 분위기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게 비쳐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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