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집단 행방불명 청년 7명 가족들, ‘실미도 부대로 차출된 것 같다’
실미도 사진서 ‘4명 얼굴 확인’ 주장, ‘특정관계 집단차출 불가능’ 반론

지난 71년 실미도 684부대원들의 무장난동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국내 영화사상 처음으로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실미도’의 인기몰이가 거세진 가운데 684부대원들의 신원확인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실미도 특수부대 창설직전인 68년 3월께 집단적으로 행방불명된 옥천출신 청년 7명 가운데 3명이 ‘실미도’ 부대 사진 속의 인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행불자 가족들은 국방부에 신원확인 진정서를 접수했고 언론은 앞다퉈 684부대원들의 신원추적에 나섰다.

이제 실미도 684부대의 진실은 국민적 궁금증을 넘어서 파묻힌 역사의 복원이란 명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동학 농민전쟁과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작업을 벌이는 상황에서 불과 33년전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 행위를 역사속에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2000년 청주에 거주하는 김방일씨(58 ·전 684부대 훈련교관) 인터뷰를 통해 지역언론 최초로 실미도의 진상을 보도했던 <충청리뷰>는 정부의 공식적인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훈련대원들에 대한 신원확인 과정을 재정리해 본다.                                         

실미도 684부대 부대원의 신원확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옥천에 거주는 정기복씨(58) 등은 지난 68년 행방불명된 뒤 36년째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있는 7명의 지역 청년들이 ‘실미도 684부대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씨 등 7명의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지난 2일 국방부를 방문, 실미도 684부대원들의 신원확인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행방불명자들은 초.중학교 동창들이며 당시 한꺼번에 종적을 감춘 뒤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는 것. 정씨는 <연합뉴스>인터뷰에서 “당시 21살이던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사라진 뒤 정보기관원을 자처하는 사람이 한 차례 신원조회를 나왔었다”며 “그 뒤 주변에서 ‘동생 일행이 특수부대에 입대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실미도를 탈출해 자폭한 훈련생 중 자폭 직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시민에게 건넸다는 ‘박기수’는 동생과 함께 행방불명된 동생의 친구이며 동생 일행이 실미도에 끌려가 희생된 게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행방불명자들의 친구였던 현모씨(56)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시절 사복차림에 권총을 찬 낯선 사람으로부터 ‘특수부대에 들어가 정해진 임무만 수행하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는 제의 받았다”며 “고민 끝에 나는 포기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 곳에 입대한 걸로 안다”고 증언해 이들의 특수부대 차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국방부에 진정서를 접수한 실종자 가족들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이 입수해 제시한 684부대원 사진을 통해 4명의 얼굴을 확인했다는 것. 정씨는 “SBS가 보여준 사진을 보니 얼룩무늬 군복입은 기간명 7명이 앞에 서있고 뒤에는 군복 차림의 훈련대원 28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가운데 내 동생 정기성을 포함해 박기수, 김기정, 이광용씨 등 실종된 청년 4명의 얼굴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문제의 사진에 28명의 부대원들이 등장했지만 당초 창설인원이 31명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3명 가운데 옥천 출신 청년들이 더 포함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684부대 훈련초기에 무단이탈한 2명이 붙잡혀 동료대원들에 의해 살해됐고 1명은 수중훈련 중 익사했다. SBS 사진을 통해 확인된 4명 가운데 박기수, 정기성씨 이름은 실화소설 ‘실미도의 증언’ 저자 황상규씨의 진술과 71년 8월 무장난동사건 당시 신문보도를 통해 부대원 실명으로 확인됐다.

저자 황씨는 “4년간 소설집필을 위한 취재과정에서 실미도 출신 기간요원과 무의도 주민등 30여명을 만났다. 이들의 기억을 통해 흘러나온 훈련대원들의 이름이 11명이다. 그중에 정기성씨 이름도 포함됐다”고 증언했다. 또한 ‘박기수’란 이름은 무장난동 사건직후 ‘한국일보’ 기사를 통해 확인됐다. 71년 8월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탈취한 훈련대원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인질로 억류된 일부 버스승객에게 자신의 이름, 주소 등을 적은 쪽지를 전달하며 연락을 당부했다는 것.

‘한국일보’ 기사내용을 보면 버스에 탔던 김모씨(여 당시 25세)에게 “나는 박기수다. 집은 충북 옥천인데, 19살 때 집에서 나왔다. 집에서는 나의 거처를 모르고 있다. 나는 왼쪽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30분 뒤면 죽을 것이다. 우리 집 주소가 있으니 편지를 보내달라”며 주소가 적힌 쪽지를 전해줬다는 것.

71년 8월 무장난동사건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박기수’ 이름 이외에 ‘김종철’ ‘이서천’이란 이름도 등장한다. 당시 경향신문 기자가 자폭현장에서 살아나 병원에 후송된 대원을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김종철씨(29)가 자신을 ‘주동자’로 내세우고 대전 성남동이 고향이라고 대답한 부분이 있다. 경향신문은 대전의 김씨 부모와도 인터뷰를 갖고 “4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어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미친 짓을 하다니”하며 울음을 터뜨린 내용과 함께 “현재 단칸방에서 월 1만원씩의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김의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외에 세 동생이 날품팔이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숨진 김종철씨의 부모 실명까지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SBS 취재팀은 이같은 실명 단서를 근거로 훈련부대원들의 신원확인 취재를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미도 출신 기간병들의 모임인 실미전우회(회장 김방일)는 지난 3일 긴급 모임을 갖고 훈련부대원들에 대한 개인적 신상공개를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언론사의 취재가 집중되면서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해 진술하다보니 사실과 다른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는 것. 회장직을 맡고있는 김씨는 “국방부에 문의한 결과 조만간 실미전우회에 공식적으로 조사 협조의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체 회원들의 생각도 국방부의 공식조사에 응하는 방식으로 훈련대원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훈련대원 단체사진 촬영, 있을 수 없는 일”
  실미전우회 김방일 회장, 옥천 청년 집단차출 부인
실미도 훈련교관 출신인 김방일회장은 “박기수란 이름을 가진 대원이 있었고 출신지역이 옥천인 대원도 있었다. SBS에서 실미도의 단체사진을 입수했다는데, 사진촬영 자체가 예민한 시설인데다 훈련대원들을 찍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실미전우회 회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SBS에 사진을 제공한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사진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옥천지역에서 실종된 7명의 청년에 대해서는 “같은 지역의 친구관계인 대원들이 서너명씩이나 섞여 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다. 청주 옥천출신 대원은 있었지만 4명씩 집단차출됐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실화소설 ‘실미도의 증언’ 저자인 황상규씨도 “서울 경기 충청도에서 주로 차출됐다는 얘긴 들었지만…,특정 지역의 친구관계인 청년들이 모여 있다면 아무래도 기간병들의 눈에 띄지 않았겠는가? 청주 옥천 출신 훈련대원이 각 1명씩 있다는 것은 취재과정에서 확인했지만 서너명이상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