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가구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가구는 5곳 뿐
지붕 파손·공중화장실·골목길 보수 시급해

피난민촌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생활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에는 면적이 좁은데다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이 없는 주민들이 정착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운천동 무심천변에 위치한 피난민촌은 일심아파트에 가려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무신경하게 살아간 세월동안 그 곳은 외부의 손길 없이 홀로 6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떨어져 나간 지붕이며, 움푹 들어간 골목길, 화장실 등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진은 50여년간 사용해온 공동화장실.
30년째 살고 있는 구응회 씨(73)는 “무심천보다도 지대가 낮다. 장마철에 물이 차는 것은 예사다. 낡고 건물밖에 뒤엉켜 있는 전선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 불이 나도 나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지붕은 곳곳이 무너져 방수천막으로 간신히 비만 새지 않게 덮고 산다”고 말했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뒤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진 박재춘 씨(가명·62)는 집을 나서다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20년 전 마을 앞 도로 상하수도 공사가 진행될 때 앉힌 골목길 보도블럭은 곳곳이 파손된 데다 지반이 내려앉아 울퉁불퉁하다.

수도계량기 하나로 마을 주민 전체가 사용할 때는 누진세가 적용돼 가구당 2만원 이상의 수도요금을 내며 살았다. 5년 전 주민들이 가구당 60만원의 거금을 들여 개별 계량기를 달고서야 2000원 안팎으로 요금이 줄었다.

50년 넘게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동화장실은 추운 겨울, 늦은 밤, 여름날에는 더욱 곤욕스럽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별도의 화장실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지만 미처 설치하지 못한 5가구는 지금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공동화장실 개선을 위해 예산 2억원이 배정됐지만 지금의 자리에 도로계획이 돼있어 신설할 수가 없었다. 청주시 관계자는 “현재 위치도 되지 않고, 마을 내에서는 설치 할 공간이 없다. 인근 사유지를 임대하거나 해야 하는데 당시에도 토지주가 반대해 안타깝지만 예산을 반납했다”고 말했다.

서주황 씨(가명·60)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문제다. 막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기초생활수급 신청은 매번 퇴짜를 맞는다”고 말했다. 서 씨가 소유하고 있는 1톤 트럭이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차편도 마땅치 않은 공사현장을 가면서 차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거노인인 진영자 씨(가명·87)는 벌이가 전무한 상태다. 월세 6만원도 제때 내지 못하는 형편인데도 수급자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형편이지만 아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논란은 끊이지 않고 일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할 것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개정안을 앞 다퉈 입법 발의했지만 통과는커녕 상정도 못하고 있다.

피난민촌 주민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일심아파트가 건축된 뒤에는 아파트에 가려져 피난민촌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살고 있다.

일심아파트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주 방문을 앞두고 ‘지저분한 곳이 각하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지시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낭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자체와 정부가 일심아파트에 가려진 피난민촌의 문제점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박소영·오옥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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