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화가 손부남의 집
멋을 아는 작가·재활용의 대가가 보여주는 독특한 공간···사랑채에서는 장작불도 때고

서양화가 손부남 씨.

집을 한 채 지어보면 인생을 안다고 했다. 집을 짓는 일이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느낄 수 있을 만 큼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본지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주인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작가의 집, 학자의 집, 시인의 집, 농부의 집···독자들은 아마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간직한 집들을 보며 ‘아, 나도 집 한 채 짓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때부터 준비하면 된다. 미래의 나의 집을.

재미있는 미술실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작업실.

서양화가 손부남 씨는 집 한 채를 10여년 동안 지었다. 왠 집을 그렇게 오래 지었을까. 그 기간동안
작가는 건축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건축자재를 사러 다녔으며, 나무를 심었다. 건축가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전달하고, 마음에 드는 건축자재를 사기 위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집주변 조경을 위해 아름다운 나무를 심었다.

오랜시간 준비한 끝에 작가의 집은 탄생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진천공예마을. 이 곳에는
도자기·한지·원목·금속·천연염색 등 공예전분야 예술인 33명이 모여 살고 있다. 전국 유일의 공
예촌으로 작가들이 조합을 만들고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지난 98년 공예인들이 모여 처음으로 집
짓자는 얘기가 나왔으니 10년을 훌쩍 넘은 셈이다.

손 씨의 집은 공예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우회전해서 약간 올라가면 보인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집
만 찾으면 된다. 외관은 단순하지만 안에는 많은 얘깃거리들이 숨어있었다. 대지 700평, 건평 120평.
작업실과 살림집이 있는 본 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책도 보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랑채가 나
온다. 사랑채에는 특히 장작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어 요즘같은 겨울철에 제격이다.

건물 외관. 노출 콘크리트기법으로 지어졌다.

노출 콘크리트집에 숨은 이야기들

건축비가 모자라 중단했다 돈이 모아지면 다시 짓기를 4년 동안 반복하다 지난해 4월 입주한 손 씨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먼저 생각하고 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자가 짓는 집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나답게 지었다. 내가 가도 집은 남을 것이다. 아마 집을 투기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집은 상품가치나 호환성은 전혀 없다”면서 웃었다. 손 씨는 작가의 집은 그
래도 남들의 집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듯, 집 역시 작가의 삶을 가
장 뚜렷하게 반추해줄 것이다.

손 씨를 따라 본채에 들어서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학창시절, 미술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
을 불러일으켰다. 천장은 6m에 달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각종 미술재료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고
개를 들어 천장쪽을 바라보니 한 쪽에는 나무로 짠 책꽂이가 있었고, 한 쪽에는 노출 콘크리트벽에
재미있는 물건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이 것 자체가 하나의 설치미술 같았다. 한 구석도 의미없는 공
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차 보였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느라 작가도 무척 바빴다.

작업실 한 쪽에는 운치있는 무쇠난로가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는 두꺼운 무쇠주전자가 놓여있었다.
난로속에 들어가는 주재료는 액자집에서 액자 만들고 남는 나무라고 했다. 작가는 난로에 고구마를 굽고 원두커피를 내려 손님을 대접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집을 지으려면 최소 5년 이상 준비해야 한다. 나도 관련 책을 보고, 좋은 집을 찾아다니면서 연구했다. 그래도 아직 미완성이다. 앞으로도 뭔가를 버리고 채우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그는 “저 벽에 꽂힌 핀도 공사 끝나면 제거해야 되는데 그대로 두었다. 아랍쪽에 가면 건물벽에 물건을 주렁주렁 걸어놓는다. 그 게 생각나서 핀을 그대로 두고 장날 사 모은 것들을 걸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에도 없는 ‘손부남표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살림집은 어디 있을까. 2층 한쪽에 있었다. 출입문을 달아 작업실과 구별됐다.

미술재료들.

손 씨는 ‘재활용의 대가’로 유명하다. 쓸 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모으는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 집을 장식하는 많은 물건들이 남들로부터 얻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
이 건 남양주시의 한 사찰에서 가져온 단청이고, 이 건 수출용 박스를 해체한 나무이고, 이 건 주성
중학교 강당 뜯은 것이고···이 건 진해, 이 건 보령, 이 건 서천에서 가져온 거다.” 작가의 설명
을 들으며 이 대목에서 깔깔거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알록달록 단청 색깔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와 중학교 아이들이 한 때 뛰어 놀았을 강당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아궁이가 딸린 사랑채.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인기최고다.

전시실·작업실, 그리고 사랑채
손 씨의 집에는 또 하나 귀한 공간이 있다. 바로 전시실이다. 자신의 작품을 보관하는 동시에 그림
몇 점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난 75년 고3 때부터 그림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35년 동안이
나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개인전만도 20번을 했다. 충북의 대표적인 전업작가로 명성도 얻었다. 손
씨는 충북대 사범대 미술교육과 출신으로 미술교사 발령을 받았으나 7개월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화실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그림만 그렸다. 그의 ‘상생’ 시리즈는 전국 어디서고 만날 수 있다. 그런 만큼 전시실에 많은 작품들이 보관돼 있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사랑채로 건너가자 방바닥이 따끈따끈했다. 손님이 온다고 해서 일찌감치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땠다고..사랑방 마루에 앉아 보이차 한 잔 마시며 밖을 내다보니 앞에 바로 산이 있었다. 비록 나뭇잎들은 간데없이 날아가고 휑하니 바람만 스쳐가지만, 산이 문앞에 와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작가는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주말에 놀러오면 마당에서 삼겹살 굽고, 온돌방에서 찜질하고 간다. 이 방이 제일 인기가 좋다. 여기 앉아 있으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한참 자랑을 했다. 손 씨에게는 마침 미술을 전공한 딸이 있다. 그래서 다행히도 이 집은 작가의 집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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