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버리고 본격 세계경영 위한 고육책?
말없는 경영진…그래서 더 당황스런 경제계

새해 초부터 청주산업단지내 입주기업인 월드텔레콤(대표이사 권대우)의 급작스런 생산설비 철수조치가 지역 경제계를 큰 진폭의 충격파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말 그대로 월드텔레콤의 ‘세계경영’이 일찍이 예고돼 왔다고는 하지만 시기와 방법론이 일반적 상식의 범위와  궤를 한참 벗어난 형태로 드러난 때문이다.

월드텔레콤은 지난 8일 새벽 청주본사 공장  내 생산설비 중 무려 80%에 가까운  기계류를 기습 철거한 이후 보름이 넘도록 사실상 조업중단 상태에 들어가  있다. 또 이 회사 경영진과 지원업무 파트 직원들의 경우 언론을 포함한 모든 외부와의 대화채널을 끊은 상태다. 이 때문에 현재 월드텔레콤의 상황이 어떠하며, 향후 회사측의 대응방안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사항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책임있는 설명 실종된 상태

   
다만 회사구성의 주요 주체인 이 회사의 근로자들, 특히 노조 측의 진술과 청주산업단지 관리공단을 비롯한 주변의 입주기업들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확보한 ‘소문’ 등이 월드텔레콤의 현재와 미래를 부분적으로 투영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생산현장 직원을  중심으로 한 노조마저 회사의 노무 담당자가 경영진을 대신해 필요할 때에만 간간이 연락을 취해 올 뿐이어서 그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신세. 이 회사의 금선아 노조지부장은 “지난해 노사간에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했는데, 주 내용은 400명을 기준으로 향후 3년간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생산물량이 끊기면서 종업원 사이에 불안감이 고조돼 온 상황에서 급기야 12월 20일부터는 거의 일감이 없어 휴게실에서 200여명 이상의 직원들이 놀다시피 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금 지부장은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8일 회사측에서 새벽을  틈타 기습적으로 3분의 2 가량의 생산설비를 아무런 사전 통보없이 생산현장에서 감쪽같이 빼내가 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노조원들도 “마치 기습작전을 펴듯  회사측이 근무조 교대시간인 새벽을 틈타  설비를 빼돌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너무 급작스레 일어난 일인데다  생산설비 철수작업이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된 까닭에 반출된 문제의 설비들이  어디로 실려나가 보관되고 있는 지  등 상황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어이없어 했다.

기습작전에 당황한 노조

이같은 돌발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파견한 진의석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37)은 “일단 조합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 앞으로 취해나갈 법률적 대응방안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선아 노조지부장은 “1월7일 회사측에서 ‘다음날인 8일 오전 10시 30분에 노사협상을 하자’고 제의해 오며 ‘DVDP를 생산하는 DH-2 라인의  생산설비가 삼성전기 소유인데 소유회사에서 설비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급하다. 그러니 노사협상을 하자’고 이유를 설명했다”며 “이처럼 긴급 노사협상을 제의해 놓고 8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설비를 빼내간 것은 신의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난했다.

DH-2라인에서 근무하는 104명의 고용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의 노조로선 회사측에게 뒤통수만 맞았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9일 새벽 회사측에서 생산설비에 이어 제품까지 빼내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노조는 회사안 정문 부근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지만 경영 주체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데다 일거리마저 없는 상황에 막혀 전면적인 대외 투쟁에 나설 ‘이슈 찾기’에 애를 먹는 인상이다.

“주문 급감에 자금난이 결정타” 동정론도

이에 대해 월드텔레콤의 상황을 비교적 많이 파악하고 있는 거래금융기관 및 인근 입주기업체들은 “월드텔레콤으로선 주요 거래기업인  삼성전기가 생산거점을 외국으로 옮기자  이에 발맞춰 필리핀과 중국에 동반진출, 신모델 레이저  픽업헤드 제품은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는 대신 청주본사 공장에서는 구모델만을 만들어  왔다”며 “그런데 구모델의 경우  단종단계에 접어든 데다 최근 들어 삼성전기 등  주요 수요처에서 구모델 제품의 주문량이  급감하면서 월드텔레콤이 선택은 충분히 예견됐다”고 말했다.

월드텔레콤이 ‘청주본사에는  50명만 남기겠다’는 내용의 구조조정방안을 노조에 통보한 것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조업 기반의 해외탈출은 분명 충격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월드텔레콤 사례가 새삼 놀랄만 한 ‘일’도 못된다는 반응이다.

“결국 위로금 협상뿐인가?’

이 때문에 월드텔레콤 사태를 보는 여러 눈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론을 펴는 시각이 관심을 끌고 있다. 노조에서도 우리나라가 임금 부문에서 중국과  필리핀 등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는 점, 따라서 생산기반의 해외탈출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회사가 요구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수용 한 이후 ‘퇴직위로금 협상’에 전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회사의 계획대로 청주본사 직원수를 50명만 남길 경우 회사가 나머지 희망퇴직하는 종업원에게 지급해야 할 위로금은 50억∼60억원 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노조원들로선 어쩔 수 없이 위로금이나마 신경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월드텔레콤에 돈이 없다는 것이다. 자금난 속에서 월드텔레콤은 지난해만 해도 수십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처지다. 그런 만큼 종업원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에서 위로금 문제가 타결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상당한 근거를 토대로 한 듯한 이런 논리적 추론들이 나돌고 있지만 여전히 월드텔레콤의 경영진은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외부와의 채널을 완전히 끊고 있어 이런 내용들을 확인할  수 없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월드텔레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전광석화…짧은 순간에
무거운 설비 어떻게 빼냈을까
“적자 가중에 불가피” 정상론도

한때 종업원이 1200명에 달하고 충북 최대 제조벤처기업이란 ‘명성’까지 누렸던 월드텔레콤.그러나 이 회사는 설 명절 전에야 가까스로 체불임금과  상여금 200%를 지급할 수 있었다. 1월치 월급은 물론 남아 있다.

촉망받던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기술력과 몸집에 비해 내부 경영시스템이 전문화돼 있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삼성전기에만 의존해 온 단선적 매출수익기반의 한계를 벗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란 지적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월드텔레콤이 삼성전기의 ‘수렴청정’에 가까운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

여기에서 삼성전기의 개입설이 그럴듯하게 떠돌고 있다.  무노조 경영원칙을 종교적 신념처럼 고수하고 있는 삼성이 협력업체인 월드텔레콤의 노조결성에 심한 불쾌감과 함께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설명해 줄  편린들이 한때 월드텔레콤  내부에서도 흘러나왔었다. “삼성전기의 협력업체 담당부서 라인에서는 월드텔레콤의 경영위기와 노조사태 등에 대해  온정적이지만 경영수뇌부에서는 ‘문제사업장을 계속 감쌀 필요가 있느냐’는 비우호적인 시각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흘러 나왔던 게 사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노조사업장이 돼 버린 월드텔레콤을 압박하기 위해 주문  물량을 줄인 것 아니냐”는, 검증할 수 없는 추측이 그럴 듯하게 나돌고 있다. 물론 이런 음모론적 추측은 “원래 연초에는 생산물량이 없다”는 반론에 막혀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기는 한다.

어쨌거나 회사측이 지난 8일 새벽 그 많은 생산설비를 단 시간내 감쪽같이 007작전을 연상케 하듯 전격적으로 빼내갈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레이저 픽업헤드를 만드는 생산설비들은 다른 거대한  장치산업 현장의 설비와 달리 크기가 작고 무게도 많이 나가지 않아 건장한 청년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운반할 수 있는 규모”라며 “회사에서 이날 빼내간 설비는  1t 탑차 6∼7대 분량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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