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용품 80여가지 “유통과정 축소"
재료 아끼지 않고 만들어
최고급 시설에 최저가격으로 영화감상
웬만한 소기업 부럽지 않은 김밥집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지폐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펜 한 자루, 신문 한 부 살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물도 돈 내고 사먹어야 하는 요즘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짜장면 한 그릇에 1000원 하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돼 버렸다. 그만큼  지금 1000원짜리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드물다.

이런 가운데 1000원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는 상품이 있다.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고 어두운 생활 경제에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1000원짜리 알짜배기 상품들을 소개한다.

/ 편집자

  
100여종의 ‘만물상’
청주의 중심 상권이 모여 있는 성안길 조흥은행 앞에 자리를 잡은 김춘수(52)씨는 같은 자리에서 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노점이지만 든든한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김씨는 성안길 내 ‘만물상 아저씨’로 불린다. 판매하고 있는 상품만 100여 가지로 이 중 80여 가지는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10년 동안 꽃장사를 했던 김씨는 “꽃은 특정 시즌에만 장사가 된다. 또 IMF가 터지자 꽃은 사치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유통구조를 대폭 축소한 만물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물건이 턱없이 비싼 것이라고 지적한 그는 “하나의 유통과정만 생략해도 물건값이 30%는 저렴해질 수 있다”는 것.

김씨의 만물상에는 칫솔, 수건과 같은 생필품을 비롯해 실내용 슬리퍼, 면봉, 세탁봉, 방향제, 빗, 옷걸이와 같은 생활용품, 편지봉투, 파일케이스와 같은 문구용품 등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단돈 1000원짜리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는 김씨는 “가격이 저렴하고 사두면 쓸 수 있는 생활용품이 많기 때문에 5000∼6000원, 때로는 한 보따리씩 사간다”며 흐뭇해했다. 주말에는 오창, 진천, 음성에서 단골 고객이 찾아오고 봄이 되면 학원이나 유아원에서 단체로 아이들 선물을 사러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평일에는 은행 폐점시간에 맞춰 4∼5시, 주말에는 12시에 개점해 오후 10시에 접는다.

노점이지만 일기의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아 큰 애로사항이 없다는 김춘수씨는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상품을 펴고 정리하는 것은 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피자가 한 판에 1000원’
‘피자 한 판에 단돈 1000원’이라는 상호는 유동인구가 많은 성안길 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흥업백화점 옆 골목에 자리한 이 피자집은 한때 ‘피자집에 불났네’라는 말을 연상케 했다. 옆에서 꽃집을 함께 운영하는 사장 우영자(58)씨는 “25년 간 꽃집을 하다가 부업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대박이 났다”고 밝혔다. 25년 간 꽃집을 하다가 매출이 떨어져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 주업이 됐다는 것.

“특히 중·고생이나 20대가 즐겨 먹는다. 우선 가격이 저렴하고 피자의 생명인 치즈를 듬뿍 넣는다.” 실제 피자전문점에서 판매하는 1여 만원에서 3여 만원까지 하는 피자보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얇은 피자빵과 두꺼운 피자치즈로 인해 더욱 부드럽기 때문이다. 또 피자의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오이 피클과 양파, 피망 등 야채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3∼4인분 하는 피자전문점 피자보다 아이들이 1000원짜리 피자를 좋아해 자주 들른다는 이지숙(청주시 우암동·42)씨는 “적당한 크기에 가격이 저렴해서 올 때마다 5∼6개씩 사간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것 같다”며 “낱개 포장이 가능해서 냉동보관 했다가 전자레인지에 해동해서 먹어도 맛이 변함 없다”고 칭찬했다.

현재 딸은 꽃집을 운영하고 피자집에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있는 우씨는 2002년 가을 꽃가게 매출 감소로 자그만 피자집을 내게 됐다. 처음에는 하루 400여 개를 팔 정도로 인기였지만 1000원짜리 피자집이 2∼3집 더 생기고 중·고·대학생이 방학중이라 매출이 감소했다.
개학을 하면 금세 매출이 오를 것이라며 우씨는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노점의 이미지를 탈출하고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우리집만의 노하우”라고 밝혔다.

“최고급 시설에서 영화를 즐긴다”
10년 동안 충북대 근처에서 비디오 감상실을 운영한 정동교(42)씨는 충북대 중문거리인 사창동에 1인당 1000원이면 영화 한편을 감상할 수 있는 ‘시네마 천국’을 오픈했다. 이미 충북대 근처에 4개의 비디오 감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학생들이 주고객이다 보니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저렴한 가격에 최신시설을 구비해 박리다매를 추구하면 좋겠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엔 박리다매도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4개의 비디오 감상실 운영과 10년 동안 쌓은 노하우로 인테리어를 직접한 정씨는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추려면 이익금의 70%를 재투자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형 스크린에 최신식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으므로 방학기간에는 1인당 1500원씩 받는다는 그는 “단골 고객한테는 방학도 없이 무조건 1000원을 받는다”는 것.

“날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건비를 줄이는 것과 같은 자구책이 필요하다. 주변에 같은 가격의 비디오 감상실이 있지만 스크린을 사용하는 곳은 없다. 즉 ‘최신식 시설에 저렴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라는 것이 정씨의 대답이다.

불건전한 장소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미성년자 출입금지, 조도(照度)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정씨는 “1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을 확보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2년째 꾸준한 매출 올리는 즉석김밥
IMF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집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밥○○, ○○김밥과 같이 체인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주시 분평동에서 ‘어머머 즉석김밥’을 운영하고 있는 박영재(37)씨는 24시간 영업으로 ‘언제든지 문이 열려 있는 집’을 고수하고 있다. 새벽에 등산을 가면서 혹은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곳을 들른다는 것.
“봄·가을에는 소풍이나 야유회가 많아 단체주문으로 눈 코 뜰 새 없다. 24시간 김밥을 말아도 일손이 부족하다.” 저렴한 가격에 단체주문을 주로 받지만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김밥처럼 정성을 다한다는 것.

‘어머머 즉석김밥’은 2년이 넘었지만 매출이 꾸준하다. 절친한 선배가 운영하다가 작년 6월 박씨가 인수한 후 서울에 맛있다는 김밥집을 모두 순회했다는 것. 또한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심한 손님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음식점도 찾아다녔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박이 난 음식점도 있지만 꾸준한 맛과 정성으로 아파트 단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밥의 맛을 결정하는 쌀은 전자상거래를 통해 판매되는 품질이 검증된 최고급 쌀만 사용하고 있다.”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김밥을 만드는 직원이 바뀐다. 하지만 박씨가 구입한 재료로 똑같은 맛을 낸다는 것. 모든 직원이 사장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을 포함한 전 직원이 가족이 먹을 김밥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6평 남짓한 가게 직원만 해도 5명,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봄·가을 한 달 매출이 웬만한 소기업을 능가한다. 양질의 재료만 사용한다는 박영태씨는 2년 넘게 ‘대박집’으로 불리지만 “우리만의 비법과 정성으로 꾸준한 맛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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