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이면 민주당 당혹스럽고
내년 3월이면 100분 토론 뜰 것”

영화배우 문성근, 아니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가 12일 청주를 찾았다. 이날은 문성근 대표가 시민의 힘으로 민주·진보진영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내자며 ‘유쾌한 100만 민란’ 운동을 벌인지 80일째 되는 날이었다.

또 민란의 접주들과 군사들이 우금치에 모여 갖기로 한 민란 콘서트 ‘우금치 다시 살아’를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우금치는 충남 공주시 주미산에 있는 고개로,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전주에서 이기고 서울로 진격하다 패전한 마지막 격전지다.

문 대표는 이날 청주를 찾아 서원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뒤 오후 6시부터 성안길에서 국민의 명령 회원가입 캠페인을 갖기에 앞서 충청리뷰를 방문해 민란운동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의 가장 승리를 이끌어낼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힘줘 말했다.

문성근의 민란은 6.2지방선거 당일에 기획됐다. 고민은 뜻밖에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막걸리집에서 시작됐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개표방송을 보다가 더 이상 술에 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집을 향해 혼자 걷기 시작했고 2012년 대선을 야권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야권단일정당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문성근 대표는 “야4당이 후보연대를 했던 지방선거는 후보의 층계가 4개였다.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등 이렇게 주고받기가 쉬운데도 완벽하게 연대가 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을 돌아보면 민노당이 있기는 했지만 노무현 후보가 야권 단일정당의 단일후보였는데도 중도개혁적인 시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겨우 60만 표를 이겼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에 이기기 위해서는 총선 돌파 밖에 방법이 없다. 총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야권단일정당 뿐인데 지도부들끼리 협상해서 될 수 있겠나. 그래서 ‘시민의 힘으로 명령해보자. 조직화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운을 뗐다.

문 대표는 이 같은 구상을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장관,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등과 토론을 벌여가며 다듬고 또 다듬었다. “처음엔 제3지대 백지신당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권단일정당으로 용어를 조정했다”는 것이 문 대표의 설명이다.

6월 중순부터 쓰기 시작한 제안서는 두 달 정도의 숙성과정을 거쳐 A4용지 4쪽 분량으로 완성됐다. 문 대표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발전과정과 노무현 서거에서 얻은 깨달음을 돌아볼 때 이제는 시민이 주인인 정당이 탄생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됐다. 그런 내용을 정치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핵심세력들을 향해 썼다. 그분들의 논란을 통해 논의가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비민주 방치 말자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이른바 작은 정당들도 어떤 식으로든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의 생각에는 기득권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미 실험했던 후보연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나 야권통합이라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이나 국민참여당에서 수혈을 받는 통합의 상(像)을 그리고 있다.

이에 반해 진보정당 진영에서는 이른바 ‘반한나라 비민주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 대표는 이에 대해 “후보연대만으로도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 모여서 지역구 갈라먹기를 하면 탈락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겠냐. 여론조사나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경선)를 통해 후보를 내도 탈락한 정당에서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상황에서 그런 불리함을 안고 싸워야 되냐”고 반문했다. 문 대표는 그런 실패의 예로 국민참여당 후보(유시민)가 나선 경기도지사 선거를 꼽았다.

문 대표의 가진 더 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한 방식으로는 민주당의 민주화를 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후보는 물론이고 대의원도 당원들이 뽑을 수 없는 민주당 역사상 최악의 당헌·당규를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민주당이 그렇게 비민주적인 상태에서 외부와 합리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겠나. 전국에서 고루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될 수도 없다. 그러다보면 선거 때마다 후보연대를 둘러싼 고통이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서거로 때 무르익어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100만 민란의 적기일까? 민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황은 무르익은 것일까? 문 대표는 현 시점이 전국정당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6.2지방선거 승리를 연대의 결과로 보지만 그 이면에는 노무현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 충격이 있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이를 “국민들이 ‘뭔가 잘못됐다. 불쌍하다’고 느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다’며 슬퍼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앞당겨 돌아가시면서 민주당이 편승했던 지역구도의 실존인물이 사라졌다”고 표현했다.

김두관 경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광역단체장에 당선되고 부산시장 선거에서 김정길 후보가 45%나 득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1971년 대선부터 시작된 지역구도에 1987년 양김 분열로 충청권까지 편입됐다. 20여년 만에 이런 구도가 완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 대표는 다만 “아직까지 대선후보로 유력한 정치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촛불과 같은 전투국면도 아니다. 불리함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3보1배와 같은 형식을 택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물론 추상적인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많다’는 의미이기도하지만 1974년 장준하, 백기완이 벌였던 유신헌법 개헌 100만인 운동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12일 현재 국민의 명령에 가입한 회원은 3만1829명이었다.

진보정당 ‘빛과 소금’이지만

국민의 명령에 동조하는 민주당 정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논의단계부터 가담한 김근태 상임고문과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인영, 천정배, 박주선 등 최고위원 3명이 국민의 명령의 회원이 됐다. 최문순 의원이 거리홍보에 가담했고, 원혜영 의원도 지지를 선언했다. 원외 위원장 다수도 지지를 표명했다. 국민참여당과 창조한국당 관계자들도 민란의 진행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민란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 야권단일정당이 결국 진보정당의 흡수·소멸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 아성인 광주 남구 7.28보선에서 ‘비민주연합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거의 따라잡은 것을 통해서 진보연합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진보정당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온 것은 인정하지만 유일한 분단국가, 명백한 지역구도, 소선거구제도, 비례대표의 비율이 5분의 1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역구까지 외연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진보정당의 정책이 매력적이라도 국민들이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정당 안에서 결선투표를 하는 것이 독자생존보다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작은 정당들이 단일 정당 안에서 각각의 정파로 살아남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확보될 때 가능한 얘기다.     
            

같이 갈 이유는 오직 하나!

국민 100만 명이 정치권에 명령을 내린다는 민란의 주모자는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 거사에 뛰어들었을까? 확신은 성사에 대한 확률보다 당위성에서 나온다. 문 대표는 “MB가 극우를 낳았는데 우리가 갈라져있어야 하나? 같이 갈 이유는 오직 하나다”라고 단언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5당이 국민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이유다.

문 대표는 “한겨레신문 보도를 봤는데, 야권단일정당이 만들어지면 70%가 지지한다고 했고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정당 후보 지지가 55%, 한나라당이 30%가 나오고, 대선에서는 야권단일정당 후보가 52%에 한나라당이 31%였다”며 단일정당에 따른 기대심리를 나타낸 여론조사결과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6월항쟁을 기념하는 모임에 나가 이렇게 역설했다고 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선거제도의 민주화는 이뤘지만 23년이 흘러 민주진영을 대표해야 할 정당이 가장 반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이 사태를 그냥 방치해야 하나. DJ의 민주성만 믿고 그냥 맡겨버렸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너무 나른해졌다”고.

문 대표는 “민주당은 틀렸다고 말할 논리가 없다. 못들은 척 할 수밖에 없다. 내년 3월쯤이면 국민의 명령이 TV 100분 토론의 주제가 될 것이다. 100만이 아니라 10만 정도만 되도 당혹스러워질 것이다. 그 시점이 임계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0만 민란…빅텐트론…진보통합론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당시 ‘빼앗긴 10년’을 거론했듯이 진보·개혁진영에서도 ‘빼앗긴 5년’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범야의 대권잠룡들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어떻게 정권을 탈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측면보다 연대의 본질이다. 집권에 성공할 경우 향후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야권연대론에는 문성근의 ‘100만 민란’ 외에도 빅텐트(Big tent)론, 진보대통합론 등이 있는데 빅텐트는 미국식 양당구조를 일컫는다. 자유주의 중도세력인 민주당과 ‘빵’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의 사회경제민주주의 화두가 ‘복지 동맹’의 기치 아래 보수에 맞서 큰 덩어리로 뭉치자는 것이다.

진보통합론은 원래는 하나였던 양대 진보정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중심으로 진보세력을 결집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당 등 스펙트럼이 넓은 중도정당들이 배제된다. 진보의 외연을 넓혀 2012년 총선에서 선전할 경우 대선정국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는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제안하거나 국민참여당의 유시민까지 진보 대선후보군에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만약에 내가 현실정치를 했더라면…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쏟아내는 문성근 대표의 정치적 식견은 유식한 영화배우 수준은 아니었다. 영화배우로서는 “일거리가 없다”는 답변도 돌아왔다. 알려진 대로 그는 故 문익환 목사의 차남이다.

문 대표는 “문 목사가 1976년 59세의 나이에 처음 감옥에 가신 뒤로 돌아가실 때까지 17년3개월 중에 12년3개월을 감옥에 사셨다. 감옥이 주거지이고 5년만 잠깐 밖에 외출하신 셈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각각 2번씩이다. 그때는 국제정세가 수감기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바깥 언론까지 꼼꼼히 살폈고 그때 영어실력도 키웠다”고 털어놓았다.

문 대표의 현재 활동을 결국 정계입문을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 대표는 이에 대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에는 어떤 식으로든 메모할 수 없는 공판상황을 암기해 외신기자들에게 알렸다. 혹시 DJ를 죽일까봐 발버둥을 쳤던 거다.

나중에 DJ가 미국 망명에서 돌아오자마자 ‘같이 정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80년대 말 90년대에 정치에 참여했다면 2002년에 노무현을 도울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참여정부에 참여했다면 지금 이런 제안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됐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도 정치인 문성근이 되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