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국장

단체장 관용차가 또 문제다. 관용차를 바꿀 때마다 언론에 기사화되지 않은 적이 없다싶을 정도다. 행정기관이 하는 일이 대부분 규정과 절차를 지키기 때문에 따지고 들면 문제될 것은 없다. 내구연한과 운행거리를 무시하며 차를 바꾼 전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차를 바꿀 때마다 배기량을 높이니까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기에 사실 주민을 감동시켜야 정치인에게도 유리하다.

기억나는 과거의 기사 중에는 단체장 관용차는 바꾸지 않았지만 교체주기가 된 의전용 차량을 업그레이드해서 단체장이 바꿔 타고 다닌 전례가 있다. 속설에 따르면 대개의 단체장들이 전임 단체장이 타던 차는 타지 않으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번에 충북도와 충북도의회가 관용차 교체 계획과 관련해 질타를 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충북도는 지사 관용차가 아닌 의전용 차량을 바꾼다고 한다. 3200cc체어맨 대신에 가격이 9000만원에 이르는 3800cc 에쿠스 리무진을 들여올 계획이다. 과거에 비춰볼 때 이 리무진이 의전용으로만 차고를 지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교체하는 의전용 차량이 2004년식에, 20만km를 주행한 것만 봐도 중앙정부의 요인이나 외국의 사절들만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1년에 3만km 이상을 의전에 이용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차량운행일지를 들춰볼 것도 없다. 의회 의전용 차량의 경우 의장단이 낀 현지방문 등에 종종 사용되는 것을 실제 목격한 적도 있다.

국무총리 등 요인이 방문할 때 구체적으로 리무진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충북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총리가 에쿠스를 찍었는지 의전담당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도 관계자는 이때마다 인근 대전에서 렌터카를 빌려왔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그러나 단체장 4년 임기 동안 한번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총리의 방문을 고려해 구입하는 리무진이라면 차라리 그때그때 빌려오는 게 낮다. 총리 핑계를 대지 말라는 얘기다.

마침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최규식(민주당) 의원이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관용차 배기량과 관련해 공개한 국감자료가 눈길을 끈다. ‘2010년 전국 기초단체장 관용차량 현황(2010년 7월 기준)’에 따르면 전국 229곳의 기초단체 중 단체장에게 배기량 3000cc이상 대형 관용차를 제공한 지역은 53곳이었다. 또 2000cc 이상 차량을 제공하는 지역은 156곳, 2000cc 미만 차량을 제공하는 지역은 20곳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자치단체 살림살이와 배기량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체장이 3500cc 이상 대형 관용차를 이용하는 지역은 8곳이다. 이 가운데 경북 봉화군과 강원 인제군, 경북 울진군, 인천 부평구 등 4곳은 기초단체 평균 재정자립도인 28.1%에도 미치지 못했다. 봉화군수는 3778cc 베라크루즈를 관용차로 이용하고 있으나 봉화군의 재정자립도는 9.3%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재정자립도가 전국 2위인 서울 서초구(79.8%)는 2493cc급 그랜저를, 3위인 서울 종로구(78.5%)와 5위인 송파구(73.9%)도 각각 2656c급 그랜저TG를 구청장 관용차로 제공하고 있다. 소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하는 곳도 있다. 대구 남구와 경기 과천시는 각각 1399cc 프라이드 하이브리드와 1599cc 아반테 하이브리드를 단체장 관용차로 쓰고 있다. ‘먹고 싶어서 돼지국밥을 먹는 심정과 돈이 없어서 먹는 심정은 천지차이’라더니 그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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