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명 빈곤시대, 영성회복 운동 기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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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명 빈곤시대, 영성회복 운동 기치들어
  • 충북인뉴스
  • 승인 2010.11.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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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모순·남녀차별 넘어선 도덕개화·도성덕립 목표
경천지(敬天地)로 환경생태 복원·교육문화사업 계획

남천포덕 10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이법산 대종법사

▲ 금강대도 제4대 용화교주대종법사 ▲대종덕사

1.금강대도가 개도 137년을 맞는 민족종교인데, 기존의 민족종교와 금강대도 교리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비교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다른 민족종교와 차별성은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19세기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출발한 신종교들이 이상세계로서 지향하는 개벽(開闢) 사상이 금강대도에는 없습니다.

개벽은 이른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확하게는 후천(後天) 개벽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천(先天) 개벽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천지의 탄생을 가리키고, 후천 개벽은 변화를 통하여 질과 양이 다른 세계의 출현을 가리킵니다.

종말론의 한국적 전개가 곧 개벽론인 것입니다.
1860년 동학을 시발점으로 탄생된 민족종교의 특징은 시대관에 힘입어 극도의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 위기의식이 개벽사상으로 나타났고 그 위기의식은 외적변화의 각성과 내적변화의 요청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강대도를 창도한 토암(土庵)은 자암(慈庵)과 더불어 건곤부모(乾坤父母)로 정위하여 유불선(儒佛仙)삼종합일(三宗合一)과 천지인(天地人)삼재응합(三才應合)과 심성신(心性身)이 합일(合一)되는 사상적 교리의 바탕위에서, 도덕성 타락으로 인한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도덕(道德)으로 세상을 개화(開化)하여 현실세계와 유리된 신비의 개벽시대가 아닌 현실 생활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실천하고 수행함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삶을 영위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벽을 지향하지 않고 현실세계 내에서의 도덕개화를 통한 이상사회의 건설인 ‘도성덕립’(道成德立)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신종교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대도 교리는 현실생활 속에서 실천을 강조하고 후천시대의 시간관에 힘입어 내실을 강조해오다 보니 타종교에 비해 대중화에는 한발 늦은 감이 있습니다.

▲ 남천포덕일백주년기념치성의식

2.금강대도와 창도시점이 비슷한 원불교, 증산도와 같은 신종교는 적극적인 대중적 포교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상대적으로 금강대도가 은도 수행에 치중해 온 배경은 무엇인가요.

토암은 오중시대(午中時代)라는 시간관을 내세워 세계사적인 배경을 통찰하고 나아가 도덕사회구현이라는 이상사회 실현을 종교 이념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였습니다. 토암의 이러한 사상은 한반도가 다가 올 세상인 오중시대에는 세계의 중심이며, 한국민족은 세계의 주역이라는 사상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암의 오중운도 시간관은 선후천의 교역은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인 개벽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시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현재의 시점은 우주 개벽 일원(一元) 도수 상 오회(午會)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마치 하루 중의 한 낮, 즉 정오와도 같으니 그림자가 지지 않는 가장 광명한 시기이고,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하나로 합하듯이 가장 평등한 시기인 것입니다.

즉 과거 선천시대는 양(陽)의 시대이니 분열과 갈등, 즉 상극(相剋)의 시대요, 다가오는 후천시대는 음(陰)의 시대이니 조화와 성숙, 즉 상생(相生)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변화의 과도기가 오중시대(午中時代)인 것입니다. 금강대도도 이런 시대적 배경아래 민족주의적 이념을 띠고 있었고, 교리 자체가 일제의 요시찰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은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유사종교란 시각 하에 일제의 관변학자들을 동원해 신종교를 연구하였는데. 해방 후 초기에도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아래 이단을 단죄하려는 입장이나 합리적인 요소가 부족한 저급한 종교현상이라는 시각이 위주가 된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는 금강대도에 대해서도 ‘유사종교’로 매도하여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보안법과 집회 체제에 관한 제제를 받도록 하는 가혹한 시련과 고통을 가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을 강점·병탄한 일제는 정치·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신문화에도 큰 관심을 갖고 식민지 정책에 착수하였고, 피지배민족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민족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 남천포덕일백주년봉축공
그런데 이데올로기 문제 중에서도 종교는 그 속성상 전통과 조직성 때문에 가장 핵심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 종교정책의 기본방향은 한국종교에 대한 탄압과 어용화(御用化)와 분열을 획책하면서 일본종교를 전파시킴으로써 주지하다시피 궁극적으로 한국인을 식민지인 또는 일본인으로 창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종교정책에 있어 불교는 사찰령, 유교는 경학원 규정에 의해 완전히 통제 하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으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토암은 ‘도덕성 타락’을 일깨워 구제중생에 주력 하였는데, 남천포덕 원년에는 입도하는 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토암은 선도포덕에 있어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구제중생에 힘썼는데 경전을 통한 사상적 포교와 의술을 통한 방편적 교화로 사회현상을 환원시켜 민심을 격려하였으며 특히 반·상의 신분제도를 부정했으며 남·여차별의 제도적 모순을 타파하여 양반과 상인, 남과 여를 구분하지 않는 평등의 논리로 설법하였습니다.

즉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에 대한 대응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어 금강대도의 무극적 은도사상이 발생했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남천포덕 100주년을 맞아 '남천백년, 그리고 또 백년포덕'의 기치를 내걸었는데요, 신세대까지 껴안을 수 있는 구체적인 포교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남천포덕 일백주년을 맞이하여 태극적 개화시대라는 커다란 슬로건 안에서 “백년포덕”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세워서 광화중생(廣化衆生)과 오만성업(五萬聖業)이라는 창도정신으로 돌아가 21세기에 나타나는 전 지구적인 인간성 상실위기와 생태학적인 재앙에 대하여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인간관의 모색으로 새로운 사고전환의 대안으로 물질문명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덕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도덕개화(道德開化)를 이루어 나가고자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 한다면, 한국 근대화의 시작과 발전을 같이했던 한국사회의 시대배경이 이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입으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특히 신세대를 아우르는 포교는 물질문명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정신문명의 빈곤으로 오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립’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심성배합(心性配合)의 수양’에 중점을 두어 본성(本性) 자각(自覺) 운동으로 모든 문제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맞는 다양한 체험과 영상 교육을 개발하여 특히 현대인들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개발에 중점을 두어 ‘본성회복’ 운동으로 탈근대시대에 금강대도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영성(靈性) 회복운동으로 포교의 근간을 세워 나가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4.국제 포교활동 계획과 종교의 사회참여를 위한 부대사업에 대한 계획은?

21C는 문화전쟁시대, 문화상품시대, 문화제국주의시대 또는 다문화주의시대라고도 합니다.
요즘문화는 세계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문화제국과, 정신적 식민지 등 다양한 양태로 공전하고 있지요. 즉 현대는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포스트모던시대이기 때문에 영토가 아닌 문화로 제국과 식민지가 구분되는 문화제국주의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금강대도에서는 다양한 교육문화사업으로 종교의 사회참여를 유도해 나갈 것이며, 전 세계인류와 삼라만상이 본연적으로 같은 생명의 근원을 지닌 동포라는 자각을 일깨워 우주적 차원에서 포교계획을 세워 지금 추진 중인 해외포교 사업에 박차를 가해 현실적인 대안을 금강대도 교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즉 실천운동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 남천포덕일백주년기념봉축공연(할머니 합창단)
본성자각운동이 정신적인 영성운동이라면 생태환경이나 생명사상이라든지 상생운동이라든지는 우리 모두가 직접 실천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문제나 육체적인 문제나 합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은 금강대도의 심성배합(心性配合)의 수양론에 근간을 두고 사회참여를 목적으로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 구상 중인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여름, 겨울 심성공부를 좀 더 개발하여 다양한 영성회복 프로그램으로 참여 유도, 연꽃음악회와 미술전시회 등으로 대중문화모색, 채식문화를 보급하여 유기농재배로서 먹거리 문화체험(전통장류, 다양한 발효식품개발, 연잎 차 개발 등), 경천지(敬天地) 사상에 근거한 환경생태 복원운동, 자경보양원을 통한 아동복지, 노인복지문제 등 다양한 복지, 문화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다가오는 문화시대에 대비하여 더욱 구체적인 대안을 세워 금강대도의 독창적인 교리를 포교하기위해서는 종교문화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그 종교문화이론이 한국의 독특한 종교문화이론이 되고 세계의 독특한 종교문화이론으로 창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 음악, 만화, 영상, 인터넷 등의 문화매체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육문화사업의 계획으로는 도사(道史)편찬위원회에 영상(映像)사업을 확장하여 교리의 대중화를 추진하기 위해 인터넷방송의 신설과, 노성본원에 영상수련원, 총본원에 심성수련관건립과 동양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술재단으로 철학사상연구소설립, 삼종대학 대학원 설립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자경보양원을 재단으로 설립하여 노인복지를 체계화, 현대화하는 등을 우선 사안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위기라고 말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해나가는 일에 주력할 것입니다. 즉 금강대도 ‘백년개화(百年開化)’는 수동적인 은도시대가 아닌 적극적인 개화시대를 맞이하는 포교대중화의 시발점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동안 금강대도를 객관적으로 보편화하여 대중에 알리고자 7개월 동안 논고를 해주신 충청리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배려는 금강대도 자체의 홍보를 넘어서 현대인들에게 금강대도의 사상을 언론매체를 통해 알림으로 해서 금강대도가 세상에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을 전파하여 인간본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지고한 역할을 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남천포덕100주년을 맞이하여 대도사적으로 커다란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남천포덕의 불씨로 백년개화 운동 횃불 지펴>

금강대도 창도주 토암 이승여는 1874년 5월 19일 외금강 유역인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났다. 금강대도는 창도주가 탄생한 해를 개도 시점으로 삼아 올해로 개도 137년을 맞게 됐다. 토암은 33세 되던 1906년 금강산에서 신묘한 종교적 체험과 계시를 받게 된다. 이때 계시의 내용이 건곤부모로서 새로운 우주를 여는 사명을 부여받았고 이를 위해 남쪽 충청도로 거처를 옮겨 도덕문명을 알리는 만인의 스승이 되라는 예언이었다.

이후 토암은 금강대도 포교를 시작했고 마침내 4년 뒤인 1910년 가족과 제자 30여명을 이끌고 충남 계룡산 신도안에 도착하게 된다. 금강대도는 이같이 포덕의 거점을 옮긴 역사적인 사건을 '남천포덕'으로 명명했고 올해 100주년을 맞게 된 것이다. 금강대도가 남으로 내려와 덕을 베푼 지 백년, 남천포덕 100주년을 맞아 정세근 교수(충북대 철학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첫째, 남천의 용단(勇斷)이다. 남으로의 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북에서 남에로의 이주, 강원도에서 충청도에로의 이주, 금강산에서 계룡산에로의 이주는 상당한 결단을 필요로 했다. 크게는 남북을 아우르는 것이고, 작게는 동서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금강산은 옛 산이고 계룡산은 새 산이기 고금(古今)을 아우르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동서남북을 사방(四方)이라 하고 여기에 상하를 합쳐 육합(六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금강산에서 계룡산에로의 이주는 남천이고 동천이었는데, 거기에 금강의 전통과 계룡의 현대라는 고금을 아우르며 신육합(新六合)을 창도한다.

거기에 남녀평등이라는 상하(上下)의 틀도 바꾸고자 했으니, 남천은 ‘동서남북상하고금’(東西南北上下古今)의 팔도(八道)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팔도는 삼천리 금수강산 8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남천은 팔도를 하나의 집으로 삼는 팔도위가(八道爲家) 사상이다.

둘째, 백년의 위업(偉業)이다. 백년은 삼대를 넘어선다. 1대 30년하고도 10년이 남는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하고도 십년이 지나간다. 열 살 아이를 둔 마흔의 내가 일흔의 아버지와 백세의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형국이다.

스무 살에 애를 두었다면, 한 살의 아이를 둔 내가 마흔의 아버지, 예순의 할아버지, 팔순의 증조할아버지를 모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백년은 쉬운 세월이 아니다. 천년을 천재(千載)라고 부른다. 십년은 데케이드(decade)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100년은 삼대이다.

정확히는 삼대하고도 십년(三代有十)이기에, 삼대백년 또는 삼대백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1세대 부모, 2세대 부모, 3세대 부모가 떠난 지 약 10년이 되어, 남천포덕 100주년이 되는 2010년에 제4세대 부모가 취위(就位)를 하였다. 따라서 남천은 삼대백년을 하나의 치세(治世)나 성대(聖代)로 삼는 삼세백재(三世百載) 사상이다.

셋째, 새로운 백년의 포부(抱負)이다. 남천 이후 백년이 지난 이제, 우리 앞에 남은 것은 새로 다가올 백년이다. 백년의 계획, 백년의 약속, 백년의 희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사회의 100년은 과거의 1,000년과 맞먹을 속도를 갖고 변화하고 있다.

인구의 증가에서도 그렇지만, 지식의 발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식은 인터넷과 같은 통신망의 발달에 힘입은 무한한 정보교환으로 독점이 불가능해지고, 결국 지식의 권력화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글을 알거나 아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권력을 잡았다면 이제 그것은 누구나의 것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남천백년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백년에로의 전환점이 된다. 매우 귀중한 전기(轉機)인 것이다.

이 때 밑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경우, 등소평(鄧小平)이 남순강화(南巡講話: 남부지방을 돌면서 이야기를 한 일)를 통해 현대화를 이루었듯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남천 후 백 년 동안 가꿔온 나무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무극적(無極的) 은도(隱道)에서 태극적(太極的) 개화(開化)에로의 전환이고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천은 오랜 동안 자기 배양을 거쳐 충분한 자양분 위에서 피어난 꽃이 새 백년을 꿈꾸는 백년개화(百年開化) 사상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은 꽃이라 불러주지 않으면 꽃이 되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기까지는 꽃이 아니라는 것은 진리라는 이름을 부여하기 전까지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꽃은 가꾸지 않으면 백년을 가지 못한다.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고, 저 꽃이 지면 이 꽃이 피는, 영원개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토론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궁구(窮究)하고 실행(實行)하여 백년화(百年花)를 피워야 한다. ‘남천백년, 그리고 또 백년포덕’, 이것이 새백년을 위해, 새백년포덕을 위해 금강대도 앞에 놓인 표어인 것이다. <정세근 교수 ‘남천포덕의 의미와 백년개화운동’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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