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쇄박물관, MOU 체결 불구 박왕자 씨 사건 이후 중단
남북관계 개선으로 급물살 전망, 사업주도권 놓지 말아야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북한에 산재해 있는 고문헌에 대한 연구조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방대한 양의 콘텐츠 확보는 물론 박물관 위상과 브랜드가치 상승이 기대된다.

‘북한소장 고문헌자료 남북공동 조사사업’(이하 남북공동 조사사업)은 지난 2007년부터 추진되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됐지만 늦어도 내년중 재추진될 전망이다. 이 사업을 제안하고 주도적으로 추진한 곳이 바로 청주고인쇄박물관이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등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사건과 천안함 침몰 등으로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최근 이산가족 상봉 등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경문협 관계자는 “최근 변화하고 있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분석된다”며 “특히 남북공동조사사업은 순수한 학술사업이자 민간교류인 만큼 관계 개선에 따라 늦어도 내년 중에는 본격 재추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남북공동 조사사업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북한 인민대학습당을 시작으로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사회과학원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에 대한 목록화(서지학적 정리)와 가치평가(해제)를 통해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인쇄박물관이 앞으로도 사업의 핵심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업 중단 직전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서울대 규장각에 주관을 넘겨주고 고인쇄박물관은 참여기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제안하고 정부지원까지 끌어낸 고인쇄박물관이 자칫 사업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도 있어 지역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 소장 고문헌 최대 150만 점

고인쇄박물관과 경문협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 북 전역에 산재한 고문헌을 모아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사회과학원 등에 분산해 보관하고 있다.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된 1900년 이전 고문헌만 5만~10만 점에 이르며 타 기관 까지 합치면 70만 점에서 최대 150만 점까지 추정된다.

▲ 2008년 6월 12일 개성에서 인민대학습당 관계자와 청주고인쇄박물관 이승철 학예연구사(오른쪽)가 북한 소장 고문헌에 대한 조사사업 의향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고문헌에 대한 무관심과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이에 대한 연구조사 사업에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승철 박사는 “북한은 주체사상을 주창하며 한문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소홀히 해 고문헌을 조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심지어 고문헌 발행 연대와 저자, 내용 등을 정리하는 서지학이라는 학문분야 자체가 없을 정도다. 여기에 심각한 경제상황까지 겹쳐 고문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고서현황을 표시한 북한 자료에는 ‘달구지로 OO차’ 등으로 기록됐을 뿐 체계적인 정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계획대로 남북공동 조사사업이 진행된다면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방대한 물량의 고문헌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 2008년 6월 12일 체결한 의향서.
특히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4000여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물관의 위상과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이 박사는 “규장각의 소장품은 30만점에 이르며 몇몇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도 많게는 10만점에 이르기도 한다. 남북공동 조사사업을 통해 북한 고문헌에 대한 콘텐츠를 확보한다면 청주고인쇄박물관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사업 중단

남북공동 조사사업은 2006년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제안하고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2007년부터 추진됐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남북 문화교류사업을 진행하는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함께 수차례 북한을 방문, 우선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1900년 이전 고문헌에 대한 조사사업을 3년 단위로 남북이 함께 진행한다는 협의를 이끌어냈다.
2008년 6월 12일에는 이같은 내용으로 의향서에 서명까지 했다. 이 의향서에는 고인쇄박물관을 대표해 이승철 박사가 서명했으며 남측에서 경문협, 북축에서 민족화해협의회, 인민대학습당을 대표하는 관계자들이 함께 서명했다.

하지만 한달 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건 이후 사업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같은 해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보수적으로 전환됨에 따라 서울대 규장각을 참여시켜 안정된 사업추진을 도모했다.

또한 당초 전액 국비 지원을 약속받았던 예산도 절반은 고인쇄박물관과 규장각이 나누어 부담키로 하는 등 조건도 악화됐다.
이것이 사업 주관기관을 규장각에 넘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인민대학습당 소장 고문헌 조사 사업비 절반을 규장각과 나눠 부담하기 위해서는 매년 1억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당시 청주시는 출장여비 외에 사업예산은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던 것.

올해부터 2012년까지 국비 8억원을 포함해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북한 인민대학습당 소장 고문헌의 조사사업을 벌이기로 했지만 고인쇄박물관이 부담해야 할 4억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고인쇄박물관이 사업비를 부담할 수 없게 되면서 주관기관의 지위를 규장각에 양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 3월 16일 천안함 침몰로 사업을 구체적으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전면 중단된 것이다. 올해 2억, 내년과 후년에 각각 3억원씩 국비가 지원될 계획이었지만 이미 반영된 올 예산 2억원은 불용처리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합의서 체결, 공동 워크숍 예정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박왕자 씨 사망과 천안함 침몰로 급속히 냉각된 남북관계가 최근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도 빠르면 내년 봄 재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공동 조사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문협 관계자는 “박왕자 씨 사망사건 이후에도 사업재개를 위한 준비를 진행해 왔다. 남북공동 조사사업이 지난 역사를 연구하는 순수 학술교류라는 점에서 반드시 추진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고서현황을 표시한 북한 자료. ‘달구지로 OO차’ 등으로 기록돼 있다.
▲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고서 일부.
실제 지난 2월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뿐 아니라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까지 참여해 사업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남북 공동 워크숍과 공동 조사사업에 관한 협약체결 등 사업 재추진에 나섰다. 특히 예정된 협약은 2008년 체결한 의향서의 본 협약이어서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제안하고 추진한 1차 사업이 결실을 맺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기대대로 남북공동 조사사업이 본격 재추진된다면 인민대학습당 외에 북한이 고문헌을 보관하고 있는 김일성종합대학교 도서관, 사회과학원 등에 대한 2차, 3차 사업도 진행된다는 점이다.

2007년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정부에 전달한 사업계획서에도 이 점이 명시돼 있다. 이 계획서에는 2011년까지 인민대학습당 소장 고문헌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사회과학원 소장 고문헌 조사를 모두 끝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밥 지어 놓고 숟가락만 빨라
고인쇄박물관, 서울대 규장각에 인지도 밀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북한 소장 고문헌 남북공동 조사사업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남북 교류 특성상 공개하거나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고 사업추진 초기여서 사업비 규모도 작아 크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인민대학습당 소장 자료에 대한 공동조사가 확정됐고 전망대로 내년부터 추진이 본격화된다면 박물관의 위상과 브랜드가치 상승에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우선 많게는 150만점에 달하는 북한 소장 고문헌에 대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고 이중 일부는 기증받아 소장할 수도 있다. 또한 귀중본에 대한 순회전시도 가능해져 고문헌과 고인쇄 문화의 메카로서 확실한 입지를 점할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 인쇄문화의 중심지가 개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서는 이 사업을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사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대한 비판중 대표적인 것이 직지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었다. 고문헌 연구를 통한 고인쇄문화라는 큰 틀을 담지 못한 채 직지의 존재와 세계 최고라는 상징성만 부각시켜 왔다는 것이다.

남북공동 조사사업이 남북 학술 교류 이전에 고인쇄박물관의 질적 성장과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이승철 박사는 “고인쇄박물관의 질적 양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도 북한 소장 고문헌에 대한 조사사업을 제안한 배경중 하나였다. 이를 통해 국내 유일의 고인쇄 관련 박물관으로서 위상과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관기관을 서울대 규장각에 넘겨준 상태여서 기대만큼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경문협 관계자는 “북한 소장 고문헌 콘텐츠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규장각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제안한 사업이기는 하지만 어느 기관이 사업의 중심에 서느냐에 따라 이후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연간 1억여원의 예산을 확보 못해 의미있는 사업에 차질을 빚는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청주가 기획하고 제안해 추진된 사업인 만큼 끝까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인민대학습당

평양에 있는 국가도서관으로 1982년 4월 중앙도서관을 모체로 창립됐다. 1945년 1월 5일에 평양시립도서관으로 개관, 1946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 1973년부터 중앙도서관으로 이름을 고쳤다.

1970년대 연면적 1만8000㎡에 2000석의 열람석, 7층으로 된 서고, 대회의실과 문헌복사실, 휴게실, 식당을 갖춘 현대적인 문화교양 기관으로 도서관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의 인민대학습당은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의하여 1979년 12월 착공하여 1년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연면적 10만㎡에 길이 190.4m, 너비 150.8m, 높이 63.6m로 된 10층 짜리 조선식 건물로 완공됐다.

10개의 동으로 구분되고 크고 작은 조선식 지붕이 34개, 방수가 600여 칸에 이르며 3000만 권의 장서능력을 가진 서고를 중심으로 6000석의 좌석을 가진 23개의 열람실들과 14개의 강의실들, 여러 개의 통보실들과 문답실, 음악감상실들이 배치돼 있다.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6·15남북공동선언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간교류의 저변확대로 화해와 협력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사단법인. 경제·문화협력, 북측 저작권 관리, 인도적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재단 이사장은 임종석 전 국회의원, 명예이사장은 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이다. 또 이미경 국회의원,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우상호 전 의원,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배우 권해효 씨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제안한 ‘북한소장 고문헌자료 남북공동 조사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문화재청의 지원을 관철시키는 등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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