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듣기 어렵지만 지난 시절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명예로운 국민의 대변자라고해서 덕담으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지역구에 따라 ‘10만 선량’이니, ‘20만 선량’이니 상대를 호칭하면 의원들은 몹시 흡족해하며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처럼 명예스러운 선량들이 요즘 큰 수난을 맞고 있습니다. 의원들이 부정 비리 뇌물사건의 주인공이 돼 연일 뉴스의 톱을 장식하면서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가고 여론에 떠밀려 자의반 타의반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이 줄을 잇고 있는 위기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량은커녕 ‘도둑×들’이라고 한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게 작금의 분위기입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건 전혀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태도입니다. 혐의 의원들을 검찰이 원칙대로 수사한다하여 ‘독재정권’운운 목소리를 높이는 엉뚱한 작태 말입니다. 석고대죄도 모자랄 처지에 웬, 독재?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야 말로 똥 뀐 놈이 성내는 완전 블랙코미디입니다.

하기야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증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몇 해전인가, 이런 수수께끼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지요. 천주교신부와 예쁜 여자와 국회의원이 물에 빠져 한강을 떠내려가는데 누구를 먼저 구해줘야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미녀 먼저? 신부? 국회의원? 아니었습니다. 국회의원을 가장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일까. 권력자라서?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썩고 썩어 늦게 구할수록 강물이 오염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 개그였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힘깨나 쓰는 실세들은 남의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도 한몫 챙기는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과거 공화당정권 때 도내 어느 지역구 의원은 선거 때면 줄을 서다시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느라 즐거운 비명을 연발하곤 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소문이 났을 만큼 워낙 뒤가 막강했던 터라 다투어 줄을 대려는 고위 공직자, 기업인들이 ‘눈 도장’을 찍기 위해 몰려왔기에 ‘봉투’를 받는 일이 선거운동 못지 않은 중요한 일 이었던 것입니다.

또 어떤 의원은 선거 때 걷어들인 수표가 남아 몇 년이 지난 뒤까지 쓰고 다녀 입방아에 올랐고 어떤 이는 수십 억의 빌딩을 가진 재력가임에도 선거 때마다 기업인들에게 손을 벌려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엊그제 어느 신문만평에는 부부가 잠자리에서 소곤소곤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실렸습니다. 아내가 걱정스럽게 “여보, 당신은 괜찮을까?”하고 묻자 풀이 죽은 남편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합니다. “글쎄, 봐야 알지….”  

요즘 국회의원들의 공통된 고민을 재치있게 그린 패러디였습니다. 지금 국회의원들 가운데 단 한사람이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는 원래 선비의 나라입니다. 청렴한 삶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민족이었습니다. 쌀독이 비어 끼니를 걸러도 남의 것 탐 내는 것을 죄악으로 알고 살던 백성들이었습니다. 당쟁으로 얼룩졌어도 그런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조선조 500년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정치인과 재벌들이 야밤에 ‘차 떼기’로 부정한 돈을 주고받고 국회의원들이 떼를 지어 감옥으로 가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이게 ‘도둑의 나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늘도 혹한이 몰아치는 석교동 육거리에는 가난한 할머니들이 좌판을 펴놓고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팔고있습니다. 몸은 얼고 해는 지는데 사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의원님들, 이들이 당신들의 부모입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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