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전 CBS 사장
40년 만에 완성된 <가고파>
가곡 <가고파>를 들으면 문득 너른 바다 푸른 물결이 바라다 보이는 그곳이 그리워진다. 그곳이 어디라도 좋다. 세상 일 모르고 근심 걱정 모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며 모두가 그리운 그곳으로 달려가고픈 안타까운 심정이 되는 것이다.

<가고파>는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이 1932년에 지은 시조다. 선생의 나이 29세 때였다. 김소월의 아름다운 시들이 거의가 소월의 20대 초의 작품이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곡의 가사가 된 노산의 시도 거의가 20대 젊은 시절의 작품이며 그 대부분은 시조로 지어진 것이다. 노래로 된 노산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가고파>이다.

<가고파>는 이은상이 당시 서울에서 살면서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며 읊은 10수의 긴 시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곡 속의 <가고파>는 4수까지이며, 이를 <가고파 전편>이라고 부른다.

40년 후 작곡된 나머지 부분은 <가고파 후편>이라고 부르는데 전·후편 모두 김동진(1913-2009)이 작곡했다. 전편은 김동진이 20세 때인 1933년에, 후편은 60세 때인 1973년에 마무리했다. 일제시대에 작곡된 전편이 다소 애상조라면 해방 후 국가적인 발전기에 작곡된 후편은 전편의 감정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밝고 활기찬 느낌을 준다.

가사의 맞춤법은 요즘 식으로 바꾸었으나 형식은 시조 원본대로 옮긴다.

▲ 노산 이은상
가고파
이은상 작시 김동진 작곡

(전편)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때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동무
지금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후편)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거이랑 다름질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가 알아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녀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 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 마산문학관
▲ 산호공원의 <가고파> 시비
마산문학관과 이은상
2010년 9월 9일, 필자는 <가고파>의 흔적을 찾아 마산을 찾았다. 며칠 전까지 전국을 휘젓던 태풍도 먼 바다로 소멸되어 이날은 매우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지난 7월 1일 부로 마산이 창원, 진해와 더불어 통합 창원시가 됨에 따라 마산은 이제 한도시를 일컫는 이름이 아니었다. 마산문학관의 주소지도 마산시 상남동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북 8길로 바뀌어 있었다.

노비산 그린공원 안에 들어있는 문학관은 마산 시내와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불과 5년 전인 2005년 10월에 개관한 건물이어서 건물 안팎은 깔끔했다. 소박한 전시실 안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문인들의 사진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확, 이윤재, 이극로, 이은상, 이원수, 김춘수, 이석, 천상병 씨 등의 사진과 저작들을 일부나마 볼 수 있었다.

▲ <노산시조집>(1932년)에 들어있는 <가고파> 원본 첫 페이지.
필자는 이번 방문에 <가고파>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노산 이은상 선생 관련 전시물을 눈여겨 보았다.
유명한 <가고파>가 처음 실린 <노산시조집>은 타임 캡슐처럼 생긴 투명 플라스틱 전시대 안에 따로 잘 보관, 전시되어 있었다. <가고파>가 실린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제목은 당시 표기대로 <가곺아>.

<가곺아>는 이 시조집에 5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우리가 노래로 잘 아는 <옛 동산에 올라>, <사랑>, <성불사의 밤>, <금강에 살으리랏다>, <그리움>, <봄처녀> 등도 여기에 들어 있다. 투명 플라스틱 앞에는 ‘이은상 노산시조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37’이라고 이름과 책 제목, 발행처, 발행년도를 검정글씨로 써 놓았는데, <노산시조집>은 소화(昭和)7년 즉 1932년에 출판된 것이다. 아마도 전시실을 만들 때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당일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나중에 마산문학관에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산문학관은 당초 ‘노산문학관’이란 이름으로 건립하려 했을 만큼 노산의 커다란 문학적 비중이 건립 동기가 됐었는데, 그후 반대 여론이 일어 이름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인지 막상 문학관 내에는 전시실에 <노산시조집>의 <가고파> 부분을 따로 펼쳐 놓은 것 외에 노산을 특별 대우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마산 시내 산호공원에 1970년에 세워진 병풍모양의 가고파 시비는 그 후에 세워진 다른 시비들과 나란히 서서 나그네들을 맞고 있었다. 노산의 생가는 마산문학관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노산이 어린 시절 길어 마셨다는 ‘은상이 샘’은 1999년 마산시가 원래의 자리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옛 북마산 파출소 자리에 복원해 놓았는데, 3.15 의거 기념비와 함께 있어 종종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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