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권위 버리고 사건 수임 위해 세일즈 나서야 할 판
부익부빈익빈 의사·건축사, 각개전투로는 직원 급여도 못줘

▲ 고소득 전문직으로 알려진 변호사, 의사들 중 직원 급여 조차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불황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청주시 산남동 법조타운을 나서는 직원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평일 저녁 6시 30분 변호사와 법무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건물 곳곳에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신사들이 삼삼오오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얼마 뒤 이들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근 식당에 들렀다. 하지만 7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이들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저녁에 손님 만날 일이 별로 없다. 개인적인 약속은 집 근처나 다른 곳으로 옮겨 한다. 회사 근처에서 갖는 술자리는 직원들과의 회식이나 업무적으로 손님을 만날 때가 대부분이다. 업무로 저녁에 술 약속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뢰인이나 친분있는 사람들의 상담이 대부분인데 일과 이후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한 변호사사무소 직원의 말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인근 음식점에서도 묻어난다.
한 식당 주인은 “법원과 검찰청 앞이라 저녁매출이 훨씬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술자리를 찾는 손님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불황을 겪고 있는 변호사 업계의 현주소를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전성시대가 끝났다는 푸념이 터져나오는 직종은 변호사 만이 아니다.
청주시내 개원의 중 직원 급여를 고민하는 의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돼 버렸다. 심지어 병원 임대료 조차 버거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건축사들은 변호사·의사 보다 불황의 역사가 더 깊다고 푸념하고 있다.
특히 건설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 건축사들은 직원과 사무실을 줄여가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쏟아지는 전문직 낮아지는 인기

인구 1000명당 변호사 수가 0.17명으로 OECD국가 평균 0.75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통계가 무색할 정도로 변호사 업계는 포화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률서비스 구조가 외국과 달라 이를 단순한 수치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매년 배출되는 사법시험 합격자는 1000명. 이를 반영하듯 충북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수도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도내 인구가 정체 내지 소폭 증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변호사 업계의 시장 규모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더욱이 시험준비에만 매달려 온 사시합격자들이 별 준비 없이 변호사 개업에 나설 경우 십중팔구 실패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 변호사는 “앉아서 의뢰인을 맞아 사건을 수임하는 시대는 지났다. 능력과 함께 인맥관리가 매우 중요하며 경험이 많지 않은 변호사들은 이 때문에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명문대 출신이라면 대형 로펌 취업이 어렵지 않지만 지방대 출신 변호사들은 이 마저도 힘들어 기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매년 전국의 의대에서 배출되는 의사 수가 3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목 좋은 상권이라면 층마다 의원이 들어서 있다는 게 허툰 소리가 아닐 정도다. 실제 청주도심의 한 교차로에는 6곳의 치과의원이 들어서 있다.
2006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치과의사 A씨. 그는 지금 근무하고 있는 종합병원에 취업하기 까지 우여곡절을 거쳤다. 지방의대를 졸업한 A씨는 개원을 선택했고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금융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게 됐고 결국 적잖은 부채를 안은 채 병원을 정리했다.

A씨는 “현재 많지 않은 급여를 받고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지만 개원의 시절에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매우 행복하다. 앞으로 2년만 더 노력하면 부채도 모두 해결된다. 의료업계의 냉정한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고 전했다.

건축사 B씨는 지난 추석 직원들에게 떡값을 지급하지 못했다. 설계를 의뢰하는 물건 자체가 끊긴데다 몇몇 건축주들은 차일피일 설계비 지급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B씨는 “힘들게 자격증을 취득해 사무소를 열었지만 매월 손에 쥐는 소득은 월급쟁이 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창피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직 은행에서도 이젠 ‘시들’

전문직들의 불황은 이들에 대한 은행들의 대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전문직을 겨냥한 각종 대출상품을 대폭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올 들어 전문직 대출상품 ‘엘리트론’ 한도를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내렸다. 또 의사 신용대출 한도도 대학 교수급을 기준으로 2억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하향조정햇다. 씨티은행도 의사를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 ‘닥터론’ 한도를 5억원에서 3억5000만원으로 1억5000만원 깎았다.

타 은행들도 전문직에 대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등 우대 수준을 낮추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의사나 변호사라는 직업만으로 VIP 대우를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아무리 고소득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한도 등이 정해진다. 전문직 보다 신용이 좋은 급여생활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직에 대한 은행의 대우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은 이들의 연체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 대출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종은 의사로 개원에 따른 의료장비 구입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의 연체율은 보통 0.5% 미만으로 기업대출 연체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 시중은행의 전문직 대출 연체율은 0.74%에 이르렀으며 지난 2월에는 1.14%까지 치솟았다. 4월에는 1.08%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1%를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관계자는 “의사들이 무리하게 병원을 설립하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개원을 위한 대출은 금액이 크기 때문에 전체 연체율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출 한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