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영동중학교 교사

목사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0년, 오늘 당신을 추모하는 10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던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하얗게 쌓이고 칼바람이 차가웠었지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제 세월만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옛 동지들이 조촐하게 자리를 함께 하며 안부와 격려를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남기신 당신의 크신 그늘의 덕일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평생 애쓰셨던 민주화와 조국통일, 그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몇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외신이 선거혁명이라 보도하며 부러워 한 놀라운 민주화의 진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풀뿌리인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지방분권으로 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통일의 물꼬를 트려는 염원으로 방북하신지 10년 남짓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영웅주의, 감상주의로 매도하던 바리사이 언론을 등에 업고 당신을 심판하던 빌라도의 법정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상잔과 반목의 비극이 지속된지 반세기만에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마주잡는 감격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폄하되었던 당신과 김주석의 합의문은 오늘에서야 정상회담 합의문으로 결실을 맺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화·체육 교류뿐 아니라 금강산도 관광하고, 개성공단도 만들고, 철도와 도로도 연결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추모식장에 걸린 사진 속, 두팔 벌려 외치는 당신의 모습, 하나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쩌렁한 외침을 보며, 당신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우리 모습이 부끄러워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부정한 정치자금이 차떼기로 오가는 부패한 금권정치의 한편에선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얼어죽고 있으며, 또 한편에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과, 수입개방 반대,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농민들이 분신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설사 개방과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로인해 큰 이익을 보는 자와 생존을 위협받는 자 간의 부당한 불평등이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만약 당신이 여기 계신다면 어찌하셨을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 민족의 생존 위기로 내몰릴 수도 있는 오늘의 남북관계를 둘러싼 걸림돌들을 보면서, 만약 당신이 여기 계신다면 어찌하셨을까. 우리는 오늘 그분처럼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오늘밤도 강물은 얼어붙고 / 분열과 미움과 불신의 역풍 그치지 않는데, / 나는 이밤 평화의 촛불하나 밝혀 들고 있는 것일까. / … 나는 따듯한 아랫목만 찾고 있지는 않는가.

도종환 님의 추모시 속에서의 성찰이, 비수처럼 감추어둔 부끄러움을 휘저어 놓았습니다. 먼저 걸어 발자국을 남겨 주시고, 먼저 밀알이 되신 당신, 늦은 봄 강산에 푸르게 살아나는 꿈을 남겨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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