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도 아버지 승무원 딸 남편 잃은 희생자 유가족 있어
시민대책위와 ‘KAL기 가족회’ “이대로 덮어둘 수 없다” 주장

KAL 858기 이야기를 해야겠다. 87년 11월 29일 탑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 아부다비-방콕을 경유해 20시 40분 서울 도착 예정이던 KAL 858기는 14시 1분경 방콕과 최후 교신 뒤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다. 정부는 사고 발생 10일만에 블랙박스 수색작업을 중단하고 88년 1월 15일 이 사건은 △88서울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김정일이 김승일, 김현희 두 북한공작원에게 친필 공작지령을 내려 대한항공기를 폭파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계속되는 의문과 의혹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이런 발표에 의문을 갖고 있다. ‘KAL기 가족회’ ‘김현희 KAL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 등이 꾸준히 진상규명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 5월부터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책위의 도움을 받아 수소문 해본 결과 충북에도 희생자 가족이 세 가족 있어 취재를 시작했다. 청주에 살고 있는 김모씨는 아버지를, 또 다른 김모씨는 여승무원이던 딸을 잃었다. 그리고 옥천의 박모씨는 남편을 여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김현희의 실체에 대해 테러리스트가 아닌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사회분위기상 귓속말로만 전해졌을뿐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실종자 가족으로 불러달라며 오늘도 진상규명에 희망을 걸고 있다. 사고기 승객들은 대부분 당시 중동 건설붐을 타고 파견된 건설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에 공문을 보내고 이 사건을 재조사해줄 것을 여러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했으나 역시 말뿐이었다는 것.

유가족들이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유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지품이라도 한 개 나오면 사망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리고 87년 12월 16일이 대통령선거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대목이다. 대선 하루 전날 김현희(마유미)가 안기부 직원들에게 끌려나오는 사진은 선거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폭파아니라 실종, 북의 지령 근거없어”

신성국 대책위 집행부위원장은 “이 사건은 처음부터 짜맞추기 수사, 거짓 조사, 기획 재판으로 끝난 국제적인 대사기극이다. 사고 조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허점투성이 였고 안기부의 수사는 엉터리 내용에 불과하다. 전두환은 5·18 광주학살을 일으켜 수천명의 국민들을 죽이더니 정권 말기에는 KAL기 사건을 이용해 115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다”며 “이 사건으로 실종된 사람들은 대부분 중동 노동자들로 힘없고 빽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사고 초기부터 ‘조사가 너무 허술하다’ ‘재조사하라’ ‘김현희를 사면하지 마라’ 등을 17년간 한결같이 외쳤지만 정부는 모두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KAL기 가족회와 대책위 등에서는 KAL기가 폭파된 게 아니라 실종됐고, 김현희는 음독 사실이 없으며 북한출신 테러리스트가 아닐 가능성이 높고, 북의 지령이라는 증거가 없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더욱이 북에서 88올림픽 방해 목적으로 KAL기를 폭파시켰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 “북한에서는 당시 IOC의 제안을 받아들여 올림픽 공동개최에 합의했다는 말이 있었다”는 게 신 신부 이야기다. KAL 858기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에서는 현재 인터넷 카페(cafe.daum.net/kal858notice)를 만들고 다양한 주장과 글을 올리고 있다.

인터뷰/  신성국 ‘ KAL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집행부위원장

 “안타까운 심정에 시작…역사 바로 세우는 일”

청남대 개방운동, 이라크 반전평화 운동에 이어 신성국 신부를 또 만났다. 이번에는 ‘김현희 KAL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 집행부위원장 자격이다. 전국의 신부 260명과 변호사,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가 참여한 대책위는 지난 2001년 발족한 이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KAL기 사건에 대한 자료조사와 집회, 특검요구, 가족들의 증언수집 등이 여기서 하는 일.

신 신부는 자신이 이 문제에 관심갖게 된 배경에 대해 “KAL기 실종자 가족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안타까운 심정에 신부로서 할 일이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 집행부위원장인 그 역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KAL 858기가 안다만 해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안기부가 북에 의한 폭파로 규정한 것은 ‘말도 안된다’며 의문을 제기한다. 83년 미사일을 맞아 격추된 KAL 007기에서는 잔해가 많이 나왔는데 폭약이 터져 추락했다는 858기는 코코섬 부근에서 구명정 한 개 달랑 발견됐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기부는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법원재판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외면해 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조작 주범의 원조당”

신 신부의 말이다. “현재 한나라당에 주범들이 모두 모여 있다. 최병렬 대표는 노태우 정권 시절 공보처장관으로 김현희를 특별 사면하는 데 앞장섰다. 최대표는 ‘김현희 한 사람에 대해 형을 집행하는 것보다 이 사건의 실질적 주범이 북한 공산집단임을 내외에 입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은 조작 주범의 원조당이다.”

또 그는 최근 희생자들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97년 12월 교통부장관의 지시에 의해 사고 경위가 정정됐으나 여러 명이 각각 다르게 표기된 것을 발견했다는 것. 예를 들어 최모씨는 ‘운항도중 사망’ 유모씨는 ‘대한항공여객기 내에서 사망’ 박모씨는 ‘버마국 벵골만 해역 상공에서 항공기 폭발로 사망’ 등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건 조사와 수사가 허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그는 주장했다. 매주 금요일 ‘KAL 실종자가족회’와 함께 한나라당사 앞에서 집회를 여는 신 신부는 또 한동안 이 일에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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