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승인만 받고 ‘STOP' 9000세대 사업비만 3조원
길게는 5년째 흉물·청소년 우범지대 우려, 市도 골치

청주 도심 곳곳이 방치된 아파트 예정부지로 멍들어 가고 있다.

아파트 시행업체가 사업승인을 받고도 길게는 5년째 착공을 못하고 방치된 곳이 18곳에 이르고 있다. 9000세대에 사업비만 3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 사업을 승인 받고도 5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는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의 한 아파트 예정부지. 휀스로 외부와 차단했다고 하지만 비어 있는 집들이 폐허를 방불케 한다.
에스엔비개발이 북문로3가 옛 삼화물산 터에 추진하는 189세대 아파트는 2006년 4월 사업을 승인 받았지만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당구 금천동에 사업을 추진하는 (주)정인멤버스도 착공을 미루고 있다. 모충동에 166세대 사업을 승인 받은 (주)삼원씨엠과 흥덕구 비하동에 사업승인을 받은 디제이산업, 준영산업개발은 참여가 예정됐던 시공사의 워크아웃으로 3년이 넘도록 공사를 못하고 있다. 흥덕구 복대동 대농3지구에 대단위 사업을 추진하는 신영대농개발도 착공 일정을 정하지 못한 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북문로3가 (주)서주씨엔씨와 우암동 옛 청주MBC 부지에 추진하는 (주)태흥티엔씨, 용정개발지구의 한라건설 정도가 착공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정도다.
아파트 현장이 방치되는 것은 시행업체들이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공사를 구하지 못할 경우 토지비용 등에서 비롯된 시행사의 막대한 금융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아파트 가격 상승이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일부 예정부지는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진행되는 도중에 사업이 중단돼 청소년 우범지대로 전락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막차’ 탄 아파트, 남는 건 빚더미

청주 도심에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은 사업가 A씨. 하지만 그는 투자금은커녕 3년 만에 자신 소유의 주택마저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아파트 부지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제2금융권으로부터 받은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가 사업을 구상하고 토지매입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시공을 맡겠다는 대형 건설사들이 줄을 섰었다. 하지만 제2금융권의 대출을 받아 1년여에 걸쳐 필요한 토지를 사들이는 동안 주택건설 경기가 얼어붙었고 미국발 금융위기 마저 닥쳐 건설사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A씨가 받은 대출은 브릿지 자금. 제2금융권이 취급하는 브릿지 자금은 사업승인 뒤 시공사의 보증으로 시중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을 받기 까지 3~4개월만 사용하기 위한 단기자금. 하지만 시공사를 선정 못해 3년 이상 상환이 연기됐고 10%가 넘는 금리 외에 별도의 취급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해 A씨의 자금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심지어 투자한 원금만 돌려준다면 사업권을 포기하겠다며 인수자를 찾아 나섰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3년 만에 대출 원금의 두 배가 넘는 부채만 안게 됐고 A씨는 자택을 포함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속칭 아파트 시행의 ‘막차’를 탄 사업가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수백억원이 드는 아파트 사업은 시공사의 지급보증을 전제로 금융권의 PF대출을 통해 추진된다. 결국 시공사가 사업의 열쇠를 쥐게 되며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할 경우 토지매입과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지역에도 아쉬운 3조원

아파트 예정 부지가 방치되는 것은 시행업체 뿐 아니라 건설 분야 의존도가 높은 지역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지역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업승인을 받고도 착공하지 못하고 있는 청주지역 18개 단지에서 예정된 물량은 민간 아파트 5326세대 주공아파트 3643세대 등 8969세대며 이들의 사업비 총액은 2조9761억8600만원에 이른다.

3조원에 달하는 사업비의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공사가 미뤄지면서 지역에 풀릴 어마어마한 자금이 묶여 경기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공공주택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율량2지구에 분양아파트 955세대와 임대아파트 2688세대 공급을 추진하는 LH공사도 3년 가까이 착공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말 사업승인을 받은 2234세대 물량은 당초 올 상반기 착공 예정이었지만 LH공사의 사업조정을 이유로 착공 시기조차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수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관급 공사 물량도 4대강 사업에 밀려 크게 줄어들었고 민간공사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착공 아파트 현장이 경제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될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철거가 진행중에 사업이 중단된 경우 도심의 흉물로 방치되고 있을 뿐 더러 청소년 우범지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 사업장의 경우 휀스를 설치해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있지만 심심찮게 청소년들의 출입이 목격되고 있다.
한 주민은 “인근에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해서 처음에는 기대도 했지만 이제는 몇 년째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어 마치 폐허를 연상케 한다. 특히 철거가 마무리되지 않아 곳곳에 빈집이 방치돼 있어 날이 어두워지면 근처를 지나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사업승인권자인 청주시도 골치를 썩기는 마찬가지다. 착공지연을 이유로 사업승인을 취소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조기 착공을 주문하고 있지만 시공사 선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다. 사업승인 취소 등의 조치도 방치된 현장 관리 등 착공 지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당 동사무소를 통한 관리와 경찰에 순찰강화를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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