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켜보다 못해 주택법 시행령 개정
관건은 주민관심 ‘새는 공유재산 막아라’

겉으로는 조용해보이지만 분쟁 없는 곳이 없다. 업무방해, 직무집행정지는 다반사(茶飯事)고 고소·고발에서 비롯된 법정싸움도 부지기수다. 아파트 관리를 둘러싼 입주민 사이의 크고 작은 분쟁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해가 뜨고 지듯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켜보던 국토해양부가 7월6일 주택법 시행령 등 관련규정 개정을 통해 제동을 걸고 나섰고 충북도도 8월31일 공동주택관리규약의 준칙을 개정해 공포했다. 개별 아파트들은 도가 마련한 준칙을 표준삼아 11월6일까지 아파트관리규약을 고쳐야 한다.

▲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상당구의 A아파트는 9월30일 주민대표 선거를 직접선거로 치렀다. 그러나 악순환이 되고 있는 아파트 관련 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대책은 대다수 주민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충북도가 개정한 준칙의 골자는 입후보 없이 주민들의 자필서명을 받아 선출하던 동별 대표자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바꾼 것이다. 또 주택관리에 따른 용역 및 공사업체 선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토해양부 장관이 고시하는 계약방법, 즉 공개경쟁입찰방식을 도입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그들만의 리그

대다수 아파트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해서 무관심하지만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죽기 아니면 살기에 가깝다.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고자하는 봉사자형이나 뭔가 냄새나는 비리를 캐내려는 지사(志士)형도 있지만 시골 동네이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력에 홀린 사람들도 있다. 

아파트 평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0세대만 해도 전기·수도료를 포함한 연간 관리비 총액이 30억원을 넘는다. 최근 들어 청주에도 3000세대가 넘는 초대형 단지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쯤 되면 연 100억원이 넘는 돈이 흘러 다닌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추정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연간 공동주택 관리비는 약 5조2900억원에 달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관리업체를 선정하는 데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실상 관리소장과 직원·경비들에 대한 인사권까지 좌우한다. 

매달 소소하게 이뤄지는 각종 수선유지를 비롯해 마음먹고 벌이는 대규모 보수공사의 경우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게 되는데 입찰을 둘러싼 의혹제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의결권을 가진 대표회의는 주택관리업체와 하자보수에 대한 발주만 맡게 돼있지만 장기수선이나 일반보수는 물론이고 각종 용역 발주에도 관여해 왔다.
 
동대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동대표 임에도 그동안에는 동대표에 뜻을 둔 사람이나 그 측근이 세대를 돌며 일정 비율 이상 자필서명을 받는 것으로 선출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바뀐 시행령 50조에 따르면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에 따라 동대표를 뽑아야 한다. 후보자가 2명 이상이면 다득표, 단독출마일 경우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한다.

회장과 감사 각각 1명은 동대표 중에서 선출하는데 500세대를 기준으로 선출방식이 다르다. 500세대 미만이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회장과 감사를 호선하면 된다. 그러나 500세대가 넘으면 동대표 가운데 회장과 감사 입후보를 받아 다시 주민 전체투표에 부쳐야한다. 후보자가 2명 이상이면 다득표자가 당선되지만 1명일 경우에는 전체 입주자의 10분의 1 이상이 투표해서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임기는 2년이며 1차례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다.

청주시 상당구 A아파트는 9월30일 바뀐 규약에 따라 선거를 치렀다. 500세대 이상이기 때문에 회장과 감사를 주민 전체투표로 뽑았는데 회장에는 2명, 감사에는 1명이 출마했다. 관리사무소 앞에 선관위에서 빌려온 기표소, 투표함까지 설치하고 투표를 적극 독려했으나 투표에는 554세대 중 224세대(40.7%)만 참여했다.

관리비 집행 국토해양부 룰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던 관리비의 집행도 앞으로는 국토해양부의 룰을 따라야 한다. 바뀐 시행령 55조 4항은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가 사업자를 선정하거나 집행할 때 국토해양부장관이 고시하는 계약방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선정, 하자보수공사만 대표회의가 발주하고 기타공사나 용역, 구입, 매각 등 모든 절차는 관리주체, 즉 자치관리가 아닐 경우 관리사무소가 발주하도록 돼 있다. 물론 관리주체가 발주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항에 대해 대표회의의 동의를 얻거나 승인한 사업계획 및 예산에 따라야 한다.

주목할 것은 공사금액이 200만원 이하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경쟁입찰을 하고 낙찰방법은 공히 ‘최저가낙찰’이다. 입찰예정 14일 전까지 언론에 입찰공고를 내고 동일가격이 2인 이상이며 추첨을 하는 등 입찰에 대표회의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도록 규정을 분명히 했다. 이밖에 아파트 내부의 알뜰시장 및 주차장 사용료 수입 등 잡수입도 관리비에 귀속하도록 했다.

주택관리사 Q씨는 “입찰의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끼리 틈만 보이면 물고 늘어지는 악순환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관련공무원의 한마디>

“사유재산엔 벌벌 떨면서 공유재산엔 무관심”
道 문홍렬 주택관리 팀장 & 市 이근복 공동주택 담당

 문홍렬 충북도 건축디자인과 주택관리팀장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생리를 알기 위해 직접 동대표에 출마하는 것도 고려해 봤다”며 말문을 열었다. “대표회의는 입주민을 위해 희생하는 자리가 돼야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모든 게 꼬인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문 팀장은 준칙 개정으로 예전보다는 투명한 관리감독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주민들의 관심이 없으면 허사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내는 건 정상적으로 내는데 쓰는데 관심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나무 한그루 심고 페인트 한 번 칠하는 게 다 돈이다. 사유재산에만 벌벌 떨지 말고 공유재산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근복 청주시 건축과 공동주택 담당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 담당은 “주민들이 만든 규약인 만큼 지키고 운용할 책임도 주민들에게 있다. 주민 간 갈등에 대한 중재나 조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적지 않은데 수사권이 없는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 ‘법의 판단을 받아보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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