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음성 수레의산

충북 음성은 야산과 구릉지가 많고 수원이 풍부해 예로부터 기름진 옥토로 농사가 잘되는 풍요로운 고장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은 없지만 생태계가 잘 보존된 낮은 산은 제법 많다. 그중 수레의산(679m)은 숲이 울창하고, 휴양림을 끼고 있어 호젓한 가족 나들이로 좋다.

▲ 수레의산이 명물 상여바위에서 본 음성의 낮고 부드러운 산과 구릉.
권근의 묏자리와 전설의 샘

음성군 생극면 생리와 차곡리에 걸쳐 있는 수레의산은 숨은 보석 같은 산이다. 그동안 찾는 사람이 뜸했지만, 2007년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수레의산은 활엽수가 울창한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상여바위에서 조망이 시원하게 열리고 전설의 샘 등을 품고 있어 신비롭다.

산행 들머리는 수레의산 기슭 300m 고지에 자리한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은 다양한 시설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숙박 시설이 깨끗하고 이용료가 저렴해 인기가 좋다. 휴양림에서 시작해 전설의 샘, 상여바위, 정상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코스(휴양림 이정표 A~C 코스)는 약 7㎞, 3시간쯤 걸린다.

생곡면 차곡리 수레울 마을로 들어서면 논밭 뒤로 수레의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인근의 3번 국도(이천~충주)나 38번 국도(평택~장호원~제천)에서 전혀 보이질 않았다. 산세가 부드러우면서 봉우리들의 형세는 기운차다. 청소년수련원을 지나면 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차는 이곳에 두고 산행을 시작한다. 화장실 옆으로 이어진 휴양림 도로를 따르면 곧 임도가 나온다. 한 구비를 돌면 포장도로는 흙길로 바뀌고 10여 분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등산안내판이 서 있는 곳이 갈림길이다. 계속 임도를 따르면 전설의 샘, 오른쪽 나무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을 거쳐 정상으로 향한다. 산행 코스는 전설의 샘을 먼저 들렀다가 이곳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게 된다.
사각 정자를 지나 구불구불 임도를 타고 돌면 다시 갈림길. 계속 임도를 따르면 월정리, 오른쪽 계곡으로 이어진 길을 따른다. 계곡은 작지만 이끼가 가득해 원시적인 맛이 있고 수량도 제법 풍부하다. 물가에 군락을 핀 물봉선을 쓰다듬으며 15분쯤 오르면 계곡을 벗어나 수레의산 깊은 품속을 걷게 된다. 길섶에는 유독 단풍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빛 받는 단풍의 눈부신 초록빛도 시나브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능선을 만나는 지점에 전설의 샘이 자리 잡고 있다. 물이 고일 수 없는 능선 바로 앞에 25평쯤 되는 제법 넓은 연못이라 더욱 신비롭다. 이 연못에는 양촌 권근의 묘소와 연관된 전설이 내려온다. 수레의산은 수리산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은 전설의 샘과 관련이 있다.

권근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조 초에 걸쳐 살았던 이름난 학자이자 문신이다. 1409년(태종 9)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내던 권근이 죽자 유명한 지관들이 총동원되어 지금이 수레의산 자락인 생극면 방축리 능안이라는 곳에 산소 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지나던 한 노승이 산세를 두루 살피더니 산소자리에서 물이 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면서 산 정상 샘터에 연못을 파면 산소자리의 물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산소에는 물이 났고, 산에 연못을 파자 정말로 산소의 물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물이 옮겨졌다고 하여 산 이름을 ‘수이산(水移山)’이라 불렀으나, ‘수리산’ 또는 ‘수레의산’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상여바위에서 본 감곡면 일대의 너른 들판. 상여바위는 수레의산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상여바위에서 시원한 조망 즐길 수 있어

전설의 샘부터는 능선길이다. 능선에는 신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그득하고, 길에는 며느리밥풀꽃, 고들빼기, 참취꽃 등이 가득 수놓고 있다. 부드러운 두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수려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수레의산의 명물인 상여바위로 노승이 아주 못된 불효자를 타일렀으나 듣지 않자 도술로 불효자의 죽은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그 불효자를 바위가 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바위를 멀리서 보면 하늘로 오르는 상여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차(車)의 산’이라는 뜻으로 차의산(車依山)이라고 하였고 한글로는 수레의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상여바위에 오르자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북쪽으로 차곡저수지와 휴양림 일대를 수레의산 능선들이 부드럽게 감싸는 모습이 보기 좋고, 남쪽 멀리 월악산 영봉이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뾰족 솟았다. 수레의산 정상은 조망이 없으므로 이곳에서 배터지게 풍광을 즐기자.

상여바위를 지나 15분쯤 더 능선을 밟으면 정상에 올라선다. 잡목이 가려 답답한 정상에서 바로 내려서면 점점 고도를 낮추면서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길이 울창한 원시림이다. 이끼가 많이 낀 돌길을 천천히 내려오면 임도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저절로 나오는 휘파람 불며 휴양림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으로 나와 생극 방향을 따르면 휴양림 이정표를 만난다. 청주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음성 나들목으로 나와 무극교차로를 거쳐 휴양림에 이른다. 감곡면 오궁리의 외할머니집(041-881-5122)은 외할머니가 손주에게 차려준 밥상처럼 구수하고 정겨운 맛집이다. 직접 만든 손두부, 도토리묵, 야채무침에 막걸리를 한잔하기 좋고, ‘돌솥 쇠고기 콩나물밥’도 별미다. / 진우석 프리랜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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