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狙擊手)는 은폐·엄폐된 위치에서 일반 보병보다 먼 거리의 목표물을 저격하는 특수한 보병 병사를 말한다. 저격수들은 그들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총을 사용한다. 첩보영화에 나오는 저격수는 바이올린 가방 같은 곳에 숨겨온 총기를 조립한 뒤 조준경을 이용해 타깃의 이마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격수란 용어를 정치판에서 사용하고 있다. 영화 속 저격이 대개 요인을 암살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듯이 주요 선거에서 상대 당 유력후보의 약점을 들춰내 정치적 살인이라는 작전을 수행하는 정치인에게 저격수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다.

실전에서나 전쟁영화의 저격수가 냉철함과 담력, 뛰어난 사격술을 필요로 한다면 정치판의 저격수는 촌철살인의 언변이나 빈틈없는 법리전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실전은 모르겠지만 영화 속의 저격수는 민첩한 행동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바바리코트를 입기도 한다. 홍콩 느와르의 저우룬파(周潤發)는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다녔다.

최근 정치판에서 최고로 뜨고 있는 저격수는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다. 박 대표의 최근 위상은 야당 실세라기보다 킬러에 가깝다. 박 대표가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를 한방에 보낸 건 ‘초호화 결혼식’ 폭로였다.

지난 7월에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을 ‘영포대군’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신한금융 라응찬 회장의 50억 비자금을 영포라인이 봐주고 있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이 수십 건이 더 된다”며 영포게이트를 향해 박격탄을 날렸다. 8.8개각을 초토화시킨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저격수 4명과 함께 김태호 총리내정자를 비롯해 장관후보 2명을 날렸다. 이 같은 내공의 원천은 고기를 먹어 본 경험, 즉 권력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범구 김종률의 대를 잇다
도내 정치인 가운데 저격수로 떴던 인물은 김종률(증평·진천·괴산·음성) 전 의원이다. 율사 출신의 김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BBK 의혹’을 추궁하며 이명박 후보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나 찰과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그래도 정치신인인 김 전 의원의 대담함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김 전 의원의 저격본능은 지난해 9월 정운찬 총리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발휘됐다. 김 전 의원은 9월21일부터 이틀 간 열린 청문회에서 정 내정자의 소득세 및 취득세 탈루 의혹, 다운계약서 작성 등 위법 행위를 집중 추궁해 궁지로 몰았으나 끝내 낙마시키지는 못했다.

문제는 이틀 뒤 대법원이 단국대 교수시절 학교 이전사업과 관련해 S사로부터 돈을 받는 등 배임수재로 기소된 김 의원에 대해 징역 1년,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금배지를 잃게 된 것이다. 김 전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탄핵후폭풍에 힘입어 당선된 뒤 18대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로 인해 날개가 꺾였다.

공교롭게도 김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정범구 의원이 대를 이어 저격수로 부상하고 있다. 김태호 내정자 낙마 이후 현 정권이 청문회 통과용으로 내놓은 김황식 총리내정자를 저격하는 역할이 정 의원에게 부여된 것이다.

김 내정자는 감사원장 임용 등의 과정에서 이미 청문회를 2차례 통과한 실전경험이 있고, 호남출신 총리후보라는 점에서 민주당이 세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엄폐효과’까지 기대하고 자신감 있게 내세운 요원이다. 

그러나 정 의원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검증받은 촌철살인의 언변으로 김 총리 내정자를 청문회 시작 전부터 궁지로 몰고 있다. “그동안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고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필요이상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의 활약은 더 지켜볼 일이다.

핀란드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하이하는 조준경이 없는 총을 사용했다. 조준경이 있으면 렌즈에 빛이 반사될 수 있고 조준경에 눈을 갖다 대면 그만큼 머리의 위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라니 프로는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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