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조변호사

얼마전 모인사가 국회에 출석해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코메디야, 코메디’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 카메라에 잡혀 보도된 적이 있다. 하긴 정치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더 이상 분노심조차 들지 않을 지경이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던 자들의 추악함이 밝혀진 것 이상으로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한답시며 보여주는 당당한 태도였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오히려 목소리에 힘을 주고 되려 흰소리를 지껄이다니. 상식적인 판단이나 보통사람들의 도덕성으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후안무치하게도 동료의원들 앞이랍시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이다. 그렇게 국회의원체포동의안은 부결되어버렸다. 법을 만드는 그곳에서 법이 난도질을 당한 꼴이다. 그러면서도 정치는 계속 하겠다고 자기 밥그릇만큼은 꼭 챙기고,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온갖 정치적 쇼맨쉽까지. 더 이상 구구하게 늘어놓을 것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현역의원들이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권의 자정노력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구태한 의원들은 공천 불안과 당선 위기감 때문에 마지못한 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례없이 20여명의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에 동참한 것은 체포동의안 부결에 허탈했던 국민감정을 다소나마 위안해 준 것이었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갑신년 새해. 신년타종을 하고 신년 첫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마음깊이 소원을 빌면서 여느날 아침과는 다른 새아침을 맞았다. 그것이 오직 하루의 차이이긴 해도 지난해와 새해로 분명하게 구분짓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각기 특별한 소망을 품고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어본다. 인간이 지닌 덕목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총선준비가 한창이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도 정치신인들의 등장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그러나 후목분장(朽木糞牆)이라 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벽에는 칠을 할 수 없다. 새 얼굴만을 앞세우고 지기(志氣)가 썩어 있다면 결국 무엇하겠는가. 필요한 것은 새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실현의 뜻이다.

정치란 곧 정책의 문제일 터인데도 정책은 실종된지 이미 오래다. 개혁이건 물갈이건 오로지 표밭을 관리하는 문제로 전락했다. 사실 선택은 우리가 했으므로 우리 역시 정치판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밖에 없다. 현실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완성된다.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 결정된다. 우리나라 선거의 오랜 불치병이었던 혈연, 지연, 학연에 대한 ‘해바라기성’ 투표는 우리 정치를 헌정 50년이 넘도록 ‘4류’에 머물도록 한 주범이다. 물론 충청권에도 자민련이라는 지역당이 존재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몰아주기’ 투표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지 충청권의 표심이 대통령을 만들고, 총선 다수당을 구축하는 바로미터처럼 인식되고 있다.

반대로 충청권마저 지역구도 투표성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정치의 미래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물과 정책을 보고 투표하자는 단순한 구호 한마디가 4류 정치를 1류 정치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는 비방이다. 4월 그날이 지나기 전에는 필자 또한 맹목적인 동문회나 종친회의 참가를 자제할 생각이다. 참신한 나무, 지기가 서린 나무를 제대로 찾기위해 눈과 귀를 깨끗이 간수하기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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