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위기 극복한 조현․세월초 일본 니시스가모 창조건물
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학교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다

문화예술교육은 일상을 풍부하게 가꿀 수 있는 도구다. 기능위주의 예술교육에서 삶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노인과 어른들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동시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 문화예술교육은 개인과 지역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한 때 폐교 대상이었던 경기도 양평의 조현․세월 초등학교는 문화예술교육을 한 결과 이제 도시에서 전학을 오겠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일본은 지자체, 예술단체, 시민들이 하나 된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낙후된 지역을 문화도시로 변모시켰다.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동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경기도 양평과 일본 도쿄, 토리데, 요코하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폐교의 부활
①양평 조현․세현 초등학교
②일본 니시스가모 창조건물

2. 일본 공민관, 세타가야 문화재단
3. 토리데시 아트 프로젝트
4. 창조도시 요코하마의 비전
5. 충북 문화예술교육 현주소 

“일주일 사이에 4명이 전학 왔어요”
경기도 양평 조현초, 문화예술교육 통합 수업
이중현 교장 “삶의 마디마디에 인상남기는 교육”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정문희 씨는 올해 아이를 조현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양평군까지 이사를 왔다. 일산에서 부부교사였지만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집을 신축했고, 정씨는 1년간 휴직계를 냈다. 그는 “공동육아를 하면서 이곳의 소문을 많이 들었다. 자연환경과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그리고 선생님들의 마인드 때문에 집을 지어서라도 가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군 조현리 조현초를 찾아가는 길에는 눈에 띄는 건물이나 이정표도 쉽게 눈에 띠지 않았다. 그동안 작은 시골학교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길래, 폐교위기였던 이곳이 도시에서 오고 싶어하는 인기학교가 됐을까. 조현초등학교 때문에 인근 땅값도 1.5배나 올랐다고 한다.

▲ 이중현 조현초 교장.
학교 입구 게시판에 등록된 학생 수는 182명. 안내를 맡았던 조경남 교사는 “현재는 학생수가 186명이다. 일주일 사이에 4명이 늘었다. 양평군보다는 서울, 경기도에서 전학을 온다. 교육과정이 소문이 나면서 한 세대가 오기도 하고, 왕복 4시간을 불사하고 출퇴근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거주지 이전 확인서를 첨부하고, 상담을 거쳐야만 이곳에 입학할 수 있다고.

조현초에 문화예술교육 바람이 분 것은 내부 공모제 출신의 이중현 교장이 이곳에 오면서부터다. 이중현 교장은 전교조 출신교사. 조현초의 교사들도 전교조 소속이 대부분이다. 폐교위기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자신들의 추구하는 참교육을 실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한국의 공교육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사례’를 탄생시킨 것이다. 2008년 이 교장이 학교에 왔을 때 학생 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3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수업의 1/3은 문화예술교육

이중현 교장은 “문화예술교육은 감동의 교육이다. 별도의 생활지도, 인성지도 프로그램이 의미가 없다. 지식․기능 교육에서 감성의 교육은 삶의 마디마디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말했다.

조현초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이다. 정규 수업 시수 중 1/3을 문화예술교육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국어 수업 가운데 연극 단원이 나오면 아이들이 직접 예술가와 함께 공연을 만들어 올린다. 이렇게 문화예술교육의 관점에서 교과과정을 9가지 형태로 재편성했다.<도표 참조>

▲ 조현초등학교는 문화예술교육의 관점에서 교과과정을 9가지 형태로 재편성했다. 이중현 교장은 9가지 수업 형태가 아이들의 삶을 튼튼하게 만드는 종합비타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2년 동안 학교에서 미술과 음악을 배웠지만 전시회나 음악회를 가본 경험은 몇 번이나 되나”며 “진도표에 맞춘 획일적인 수업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초의 문화예술교육수업은 과연 어떨까. 2학기 첫 수업으로 진행된 ‘영어뮤지컬’수업을 참관했다. 전문예술강사와 교사, 아이들이 함께 영어로 뮤지컬의 기본동작을 익히고 있었다. 반에서 한 친구가 박자를 맞추면 아이들은 함께 구르고, 뛰고 손을 잡으면서 동작을 익혔다. 조현초에서는 연극, 무용, 뮤지컬, 디자인, 생태교육이 통합수업 형태로 진행된다. 수업시수는 각각 12시간이다. 이밖에도 생태학습, 어울마당, 축제, 초청공연 등이 열린다.

▲ 2학기 첫 수업으로 진행된 ‘영어뮤지컬’수업은 전문예술강사와 교사, 아이들이 함께 영어로 뮤지컬의 기본동작을 익히고 있었다. 반에서 한 친구가 박자를 맞추면 아이들은 함께 구르고, 뛰고 손을 잡으면서 동작을 익혔다.
전문예술강사가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려면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야만 한다. 1, 2차 서류, 데모 테잎 시청, 워크숍을 통과해야만 한다. 또한 학부모, 교사로 구성된 교육과정 평가단의 사후 모니터링도 거친다. 수업도 교사가 직접 참관해 문화예술교육수업을 도와준다. 이러한 전문예술강사의 월급은 자체예산과 문화예술진흥원에서 받은 예산을 모아 차시당 7만원과 교통비 1만원을 따로 지급한다. 전문예술강사는 한 달에 12차시를 수업한다.

이 교장은 “기존 교수․학회 중심의 예능 수업도 커리큘럼이 확 바뀌어야 한다. 별도의 예산을 세우는 게 아니라 교과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부가 연계해 전문예술강사를 투입한다면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실현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조현초는 농어촌 지정 학교이자 경기도 혁신학교로 선정됐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통합수업을 펼치는 것이 주된 선정이유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선도학교로 지정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양평군내 3곳을 혁신학교로 선정했으며 중․고등학교와 연계하기 위해 내년에는 유사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학교를 1~2군데 지정할 예정이다.

韓-마을을 배우는 학교, 축제를 개최하다
문화예술교육으로 지역 돌보는 경기도 양평 세월초
1년간 마을 역사․사람․지형 공부해 연극 올려

작은 부채를 든 전문예술강사는 갑자기 ‘닭’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포도주를 먹은 닭, 수영장에 빠진 닭 흉내를 낸다. 이 후 아이들이 손을 잡고 닭장을 연출하고, 아이들은 그렇게 스스로 닭이 되면서 놀이에 빠진다.

이 희한한 수업은 경기도 양평군 세월리에 위치한 세월초등학교의 3학년 연극수업이다.
세월초는 2009년만 해도 54명이 전부였다. 당시 60명 미만인 학교는 폐교대상 리스트에 올랐고, 세월초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인원은 100명. 하루에도 2~3건의 전입학 상담문의가 오고 있다. 오히려 1,2학년의 경우 도시에서 전입해 온 수가 더 많다.

▲ 세월초등학교의 3학년 연극수업은 아이들이 ‘닭장’을 연출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냈다.
세월초의 남궁 역 교사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은 학교를 폐교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새로운 전락을 짰다. 이곳도 전교조 출신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이 코디네이터 담당

매주 월요일마다 교직원 직원협의회 시간에는 추계예술대학 정원춘 교수, 문화코디네이터 김지연 씨가 교사들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수업에 대해 토론한다. 세월초의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세월초의 문화예술교육은 1~2학년은 미술, 3~4학년은 연극, 5~6학년은 영상교육이 펼쳐진다. 기능위주의 예술교육이 아니라 소통과 연대를 중요시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법정시수 내에서 펼친다. 장르 간 통합적인 프로그램을 펼치는 데, 세월초의 경우 ‘마을’을 강조하고, ‘마을’을 배우는 것이 이색적이다.

▲ 남궁 역 세월초 교사
남궁 역 교사는 “2년 전 빈집프로젝트를 벌였다. 오전에 산책을 통해 수집한 빨래판, 세탁기 등에 락카칠을 하니 근사한 미술작품이 됐다. 아이들이 그림을 잘 그리고, 악기를 잘 치는 것보다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버려진 물건을 통해 학교의 꽃밭을 가꾸는 등 작지만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게 세월초의 수업방식이다.

남궁 교사는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알리기 위해 2년 전부터 마을 축제를 기획했다. 일주일 연습해서 학예회 발표하듯이 여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마을과 학교가 함께 고민하는 느린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마을과 학교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이장,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시나리오화해서 아이들과 마을주민이 함께 무대에 섰다. 매년 10월 초 축제가 열리는 데 올해는 학년별로 프로젝트를 달리할 예정이다. 포스터 및 걸개그림 하나까지도 모두 아이들이 손수 제작한다. 학부모도 마을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밴드를 구성해 멋진 연주도 들려준다.

남궁 교사는 “마을 사람들이 학교 오기가 편해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도서관의 경우 사서가 없어서 문을 닫을 뻔 했지만 이제는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학교가 곧 마을의 사랑방이자 날마다 축제의 현장인 것이다. 세월초도 경기도교육청이 올해 혁신학교로 지정했다.

日-폐교에 들어간 예술가들, 지역을 움직이다
소통 이끌어내는 토시마구 니시스가모 창조건물
카모카페․구리구리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 타케다 아트프로젝트 저팬의 기획자.
일본 토시마구 니시스가모 창조건물은 이전에는 중학교였지만 도심공동화현상이 일어나면서 폐교로 방치돼 있었다. 지자체가 건물을 관리하다가 2004년 이곳에 NPO법인 예술가와 어린이들과, 아트네트워크 저팬(Art Network Japan) 두 예술단체가 들어오면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타케다 아트프로젝트 저팬의 기획자는 “2004년 폐교에 법인이 들어올 때 왜 들어오는가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니까 지역주민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드나든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일본도 폐교 활용문제 대두

NPO법인 예술가와 어린이들의 액션(ACTION!) 프로그램은 지난해 아티스트만 41명이 참가해 프로그램을 벌였다. 구리구리 프로젝트(Greating green)는 식물과 아트를 주제로 밭을 일구는 활동을 통해 지역사람들과 교류했다. 창조건물 앞 밭을 아티스트, 지역주민, NPO법인 예술가와 어린이들 직원이 함께 일구는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다.

▲ 츠츠미 야스히코 NPO법인 예술가와 어린이들 대표.
츠츠미 야스히코 NPO법인 예술가와 어린이들 대표는 “이곳은 도시화 되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가 없다. 지역사회의 새로운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구리구리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밭을 일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고령자, 젊은 부부세대들이 교류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시작한 구리구리 프로젝트는 매년 4월이 되면 구리구리 멤버를 모집해 1년간 활동하게 된다. 멤버는 할아버지, 엄마, 아빠, 아이 등 누구나 될 수가 있다. 처음 밭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정말 소규모였지만 25개 그룹 44명이 참여하면서 재배면적도 꽤 늘었다.

아트프로젝트 저팬은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대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 때 열리는 데 인기가 좋아 지역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고. 전문 연출가와 배우들이 이 곳의 체육관 건물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무대를 만든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2500명이 왔다. 이 가운데 어린이들은 절반 가량인 1400명이다.

한편 일본에서도 급격하게 폐교가 늘고 있어 정부에서도 활용방안을 모색 중이다. 현재 토시마구에는 11개 정도의 폐교가 있으며 2000년 2005년 사이 통폐합이 많이 이뤄졌다.

▲ 구리구리 프로젝트는 창조건물의 텃밭을 가꾸면서 지역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프로젝트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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