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진실은 한 묶음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진실을 감추려는 모습에 '정의'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하게 한다. 그런 사회 현상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장안의 화제로 만들었다.

정의를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 곳이 있다. 그리스어로 정의와 정도를 뜻하는 '디케'를 기관의 상징으로 하는 법원이 그곳이다. '디케'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이다. 엄중한 처벌을 위해 한 손엔 칼을, 공정한 심판을 위해 한 손엔 저울을 들고 있다. 여기에 외압과 편견에 휩싸이지 않도록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서 있는 형상이 가진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제도적 정의의 최후 보루'를 자처하는 법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와 같은 형상의 디케 상이 외국 여러 법원에 비치되어 있다. 한국의 대법원도 이와 유사하지만,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눈을 가리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법원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청주지법의 일련의 판결이 '정의'가 무엇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촛불 재판 개입 신영철 대법관 임명 사태로 휘청거린 이후 상실한 균형감각을 회복하지 못하는 듯하다.

9명의 선거관리위원 중 호선으로 선출되는 선관위 위원장은 대법관이 겸임하는 것이 관례다. 현재는 양승태 대법관이 지난해부터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충북도 매한가지다. 올 5월부터는 이성보 청주지방법원장이 충청북도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6.2 지방선거를 총괄 관리했으며, 8월부터는 서기석 현 청주지방법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하기에 선관위가 발행한 선거사무안내 책자는 대법관과 지법원장이 보증하는 선거운동 유권해석서라 해도 무방하다. 한데, 이 자료 내용을 바탕으로 한 선거운동에 철퇴가 내려졌다.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선관위의 자료에는 '후보자나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은 별도 신고 없이 공개장소에서 연설 및 대담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 확성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연설이나 대담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거운동을 위해 확성기 등을 사용할 수 없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선관위의 유권해석대로 6.2 지방선거운동을 한 이들에게 청주지법이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무더기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 판결에 앞선 8월에는 '정의'가 실종된 판결이 나왔다. 사건은 방송사의 보도로 불거졌다. 방송에서 집주인은 '오갈 데 없는 할아버지를 지금껏 보살펴 주고, 고기반찬에 남부럽지 않은 끼니를 챙겨주었다'고 언죽번죽 말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사람이 아닌 자동차의 집인 차고였다. 그곳엔 조명시설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다. 얇은 모포 하나를 의존해 산다. '고기반찬'은 썩은 음식물 찌꺼기와 곰팡이 핀 김치, 찬밥으로 둔갑했다. 굳은살이 박힌 손발이 갈라지고, 하지 정맥류 등 온갖 병에 시달리게 한 고된 노동의 대가다. 할아버지의 삶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노예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노예 할아버지'를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집주인에 대해 청주지방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항소심이 예정되어 있다. 물 흐르듯 가는 것이 법(法)이다. 디케를 앞세운 '정의'와 '상식'에 어긋나는 항소심 판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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