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은 일반인보다 고위공직자, 유명인사들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행사장이나 음식점(?)에서 만나면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과장되게 알은 체를 하기도 한다. 반면 재판정이나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모습을 마주한다면 서로 부담스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직업상 ‘현장 스케캄 기사를 쓰기위해 출두하는 사람의 표정 변화와 말씨까지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해당 인사의 중량감에 따라 취재기자들의 노력은 가일층 처절하다. 이같은 극적상황에서 드러난 해당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기자의 뇌리속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고위직 인사로써 자신보다 더한 권위와 권력앞에 어떻게 처신하는지, 나름의 ‘관심법(觀心法)’으로 판단한다.

2004년 총선거의 해를 맞아 선거법에 연루됐던 지역 인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괜한 사설이 길어졌다. 선거법과 악연이 깊은 지역 정치인으로는 우선 한나라당 신경식의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유권자에 대한 금품살포 등의 혐의로 14 15대 총선에서 연속적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다행히(?) 본인이 아닌 부인, 선거운동원이 직접 행위자로 적발돼 두 번 모두 벌금 100만원 이내 판결로 현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96년 15대 총선 때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법원이 상대후보였던 오효진 청원군수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받기도 했다. 말그대로 선거법에 관한 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달인인 셈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지난해말 선거법위반 항소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지옥의 문고리를 잡았다가 살아온’ 한대수 청주시장을 꼽을 수 있다. 1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항소심 결심공판을 숨죽여 지켜보던 측근인사들은 법정밖에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다음으로는 지역 교육계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와 김천호 교육감의 악연을 들 수 있다. 지난 2002년 보궐선거에서 저녁 식사모임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 전임 교육감의 불명예 퇴진으로 치러진 보궐선거가 무효가 되는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김교육감은 작년 11월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같은 고향 출신인 도교육청 6급 직원이 8월부터 청주시내에 방을 얻어 선거운동을 벌였고 선거운동 기간동안 10여차례 통화내역이 확인됐다. 도교육청은 6급 직원의 개인비리 차원으로 치부했고 김교육감 역시 선거와 무관한 ‘일상적인 통화’라고 부인하고 있다.

실례로 거명한 세 사람은 모두 100만원 이내의 벌금형으로 현직을 고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충북만의 예가 아니고,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선거법위반 당선자가 100만원 이내의 ‘턱걸이’ 판결로 살아남았다. 정치개혁이 올해의 화두라면 오는 4월 총선이야말로 그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민주주의는 결국 선거로 완성된다. 선거가 왜곡되면 민주주의가 왜곡된다. 공명선거의 가치는 유권자 모두가 지켜야 마땅한 일이지만 최후의 보루는 역시 사법부다. 이번 16대 총선 선거법위반 당선자에게는 부디 턱걸이 판결이 사라지길 소망한다. 왜냐면, 선거법의 쓴맛은 결국 당선의 단맛에 비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가벼움’이기 때문이다. 벌금 100만원의 판결이 바로 공명선거의 ‘부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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