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혁 규 (청주교대 사회학과 교수)

시간에는 매듭이나 마디가 없다. 예를 들어, 2004년 1월 1일은 2003년 12월 31일과 특별히 구별되는 날이 아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줄을 긋고 숫자를 붙인다.

그럼 사람들은 왜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 속에는 던져진 삶을 그저 그렇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 기획하고 개척하겠다는 인간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미래의 비전에 비추어서 삶의 궤적을 재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다르다! 아니 사람들의 뜨거운 염원이 신새벽의 태양을 새로운 그 무엇으로 시뻘겋게 담금질 해 낸다! 민초들 한사람 한사람의 희망이 담긴 불화살을 쏘아서!

첫째, 정치 개혁의 불화살을 쏘자. 새로운 리더쉽의 부재와 끝도 없는 정치 혼란,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갈등과 상극의 정치, 방탄 국회로 불체포 특권을 남용하는 파렴치한 정치인들…. 이것들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정치의 신천지를 향해!

그래서, 2004년 4월이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달력으로 자리 매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새날을 위해, 과거의 인습을 벗어 던지자. 정치인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그런 정치인이 기생할 수 있는 숙주를 제공했다는 점을 깊이 자각하자. 정치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주의의 사슬을 끊자. 모든 정치인이 똑같다는 맹목적 피해의식과 부정적 사고를 넘어서서 돌다리를 두드리고 옥석을 가리는 냉철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자. 4년 내내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을 욕하다가 선거 당일에 다시 인습의 굴레를 뒤집어쓰는 그런 무기력하고 나태한 유권자가 되지 말자.

둘째, 경제 개혁의 불화살을 쏘자. 평범한 서민의 근로 의욕을 한숨에 날려버리는 부동산 투기와 아파트 상승의 신화,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백수’로 표현되는 무자비한 퇴출과 실업의 고통,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로또 복권으로 달래야 하는 고단한 삶의 무게, 카드빚과 신용 위기에 몰려 빈번하게 발생하는 동반자살의 비애…. 이 모든 어두운 현실을 녹여버릴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내며 서민의 삶을 복원할 대동의 연대를 구축하자. 대자본의 횡포를 큰 눈으로 감시하고 가난한 자의 고뇌를 어루만져 줄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하자. 평범한 서민의 성실한 노력이 정당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정과 부패와 불로 소득의 고리를 차단하자. 무엇보다도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거대한 노력은 평범한 우리들의 작은 나눔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셋째, 사회 개혁의 불화살을 쏘자.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성장주의와 적당주의가 올해도 어김없이 남겨놓은 대형 사건과 사고, 제 2의 광주 사태라고까지 불리었던 원전 수거물 처리시설 유치를 둘러싼 갈등, 정보인권을 둘러싸고 숨가쁘게 대립했던 NEIS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 치유되지 못한 지역 갈등과 심화되어 가는 세대간·계층간 갈등,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나락 없이 추락하는 공교육의 위상…. 이 갈등과 분열을 봉합할 정념(情念)의 화살을 쏘자!

성숙한 사회를 위해 우리 삶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결과 보다 과정이 중시되는 문화를 만들자.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시시비비를 가리고 승자와 패자를 엄격하게 구별하기보다는 타협과 양보, 관용과 공생의 문화가 꽃피우게 하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자존과 위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오늘을 생각한다’ 필진이 새롭게 바뀝니다.

오는 6월까지 본란을 이끌어갈 논객들은 이혁규 청주교육대학 사회교육과교수를 비롯해 홍석준 변호사, 장정호 청주대 경제학과교수, 윤홍현 원흥이 시민대책위실행위원장, 이지호 신미굴관디렉터(이상 무순) 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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