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중국 신문 기고문 119편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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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중국 신문 기고문 119편 추적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0.08.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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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교수 ‘홍범식․신채호 선생’ 학술대회에서 밝혀
‘박’이라는 필명으로 중화신보에 쓴 사설 발굴돼
단재 신채호는 중국에서 중화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김주현 경북대 교수가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12일 개신문화관에서 주최한 독립운동가 ‘홍범식과 신채호의 민족운동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주현 경북대 교수가 중국신문을 소재로 신채호 논설의 발굴 연구를 발표한 것이다.

▲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12일 개신문화관에서 주최한 독립운동가 ‘홍범식과 신채호의 민족운동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단재가 중국신문 기자로 활동했다는 내용을 중국신문과 증언을 바탕으로 추론했다.
그동안 단재가 ‘중화보’와 ‘북경일보’에 글을 썼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김주현 교수는 먼저 신석우, 원세훈, 정인보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중화보’의 실체를 역추적했다. 김 교수는 “여기서 중화보는 중화신보를 일컫는다. 중화보는 북경에서 발간된 장계란이 창간한 북경중화신보를 말하는 것이며, 단재는 상해에서 낸 상해중화신보에도 글을 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단재가 1917년 7월부터 1918년 10월까지 북경에서 발간된 ‘북경중화신보’에 쓴 사설 격인 논설과 시평 119편을 찾아냈다. 김주현 교수는 ‘박’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필명으로 쓴 119편의 글이 단재의 것이라며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의(矣)자 논란이다. 1918년 5월 20일자 북경중화신보에 정정보도문이 실린다. 전날 단재의 서평에서 ‘大可安念矣’가 옳은 데 그만 ‘大可安念一矣’로 두 글자를 잘못 배열하여 특별히 이를 고친다는 내용이었다. ‘矣’를 ‘一矣’로 바뀐다고 해서 문맥상이 바뀌지는 것이 아니었다. ‘크게 안심이 된다는 것’과, ‘크게 안심이 되지만’이란 뜻이다.

▲ 단재 신채호
신문사는 정정보도문을 냈고, 이는 단재가 이 신문에 논설을 썼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시기다. 따라서 ‘矣’논란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김 교수는 단재의 문체적 특징이 필명으로 쓴 논설과 시평에서 드러나며, 당시 상해에 지식인들이 신채호학사를 건립하려고 했던 이유도 설명된다고 했다. 당대 지식인들과 군벌 등이 단재의 글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신채호 학사 건립은 추진위원회만 꾸려진 채 당시 시대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중단됐다.

조선인 기자 활동 기록은 못 찾아

김 교수는 “단재의 글이 정말 맞는가에 대해 이 글을 발표하면서까지 고민했다. 세 가지 근거를 통해 합리적으로 추론했다. 다만 ‘아 중국’, ‘오 중국’ 등의 중국을 높이는 표현이 등장한다. 저자는 분명하지만 왜 이러한 글을 썼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단재의 글로 결정짓기 위해서는 중화신보에서 당시 조선인 기자가 활동했다는 기록이 나와야 하지만 아직 국내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인 허원 서원대 교수는 “그동안 단재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고착화돼있다. 편협하고 독불장군 이미지다. 단재 선생에 대한 이전과는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봤을 때 ‘오 중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무리가 없다. 중국에 항일전쟁의 명분을 제시하는 것 또한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발표는 단재가 중국지식인 뿐만 아니라 중국 군벌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신채호 학사 건립은 단재의 글을 중국어, 영어로 번역해서 알리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향후 “한문학자, 중국학자, 역사학자 등이 모여 중국자료를 토대로 단재에 관한 논의를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홍범식 순국 100주년과 신채호 탄신 130주년 기념해 ‘홍범식과 신채호의 민족운동 재조명’을 대주제로 열렸다. △홍범식의 자결 순국과 그 유훈(발표:박걸순 충북대 교수, 토론:김용달 국민대 교수) △신채호의 역사 인식(김기승 순천향대 교수, 한시준 단국대 교수) △중국신문 소재 신채호 논설의 발굴 연구(김주현 경북대 교수, 정연정 충북학연구소 박사) △신채호와 홍명희 문학 비교(김승환 충북대 교수, 이재호 국가보훈처 연구원) 등으로 진행됐다.

▲ 일완 홍범식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최초로 자결 순국한 홍범식 선생에 대해 그가 남긴 ‘유서’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박걸순 교수는 “홍범식의 자결은 여러 사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밝혔다. 동생 홍용식과 아들 홍명희, 홍성희는 물론 손자 홍기민까지 3대가 3?운동과 신간회 주도 등 민족운동에 나섰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유서를 비밀리에 맡았다가 홍명희에게 전한 김지섭, 자결을 직접 목도한 송철, 당시 군수였던 조용하 등도 망명하여 독립투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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