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초> 1, 2절은 같은 한시(漢詩)의 다른 번역
“김억 시인이 번역 미흡해 내용 바꾼 듯” 학자들 증언

▲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전 CBS 사장
가곡은 시와 음악의 결합이다. 우리 가곡은 민족의 혼과 한, 기쁨과 슬픔을 담고 우리 시에 아름다운 선율이 입혀져 탄생했다. 본지는 이번호부터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의 ‘시인과 노래’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교수는 가곡의 원류인 시와 시인을 찾아가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볼 계획이다. 그리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새롭게 조명하고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을 것이다.         <편집자 주>

가장 널리 알려진 우리 가곡 중 하나인 동심초(同心草). 그 애련한 가사는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1절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2절 :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김억 시인의 옆모습 스케치 [출처: 김억 번역시집 <야광주(夜光珠), 1944년)]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이다. 이 노래의 원전(原典)이 1천년도 훨씬 더 된 중국 당나라 때의 여류시인 설도(薛濤: 770?-830?)의 한시(漢詩)라는 것을 알면 그 느낌이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위치확인까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볼 때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란 구절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엾다. 그러나 그 옛날 한번 만났다 헤어지면 그만, 다시 만날 길이 있었을리 없다. 1절이나 2절이나 그 처연함은 비슷하다.

지금까지 <동심초> 가사 1절은 김억<金億, 호는 안서(岸曙),1896-1950?> 시인이 설도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 <춘망사(春望詞, ‘봄을 기다리는 노래’ 란 뜻)> 4수(首) 가운데 제 3수를 번역한 것이고, 2절은 ‘작곡자 김성태(金聖泰, 1910~)씨가 가필하여 현재와 같이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져왔다. 주요 가곡관련 서적과 일반 자료에 대부분 그렇게 되어있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2절을 ‘작곡자가 가필했다’는 데 대해, 어디에 어느 대목을 가필 했다는 것인지, 노래 부를 때마다 그 점이 늘 궁금했다. 기자노릇한 버릇 때문일까?

▲ 시집 <망우초>(1934년) 표지.
2010년 3월부터 청주대 신문방송학과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수업 준비차 모처럼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엘 가끔씩 들렀는데, 어느날 동심초가 최초로 실렸다는 김억의 한시번역시집 <망우초(忘憂草), 1934년>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일제시대 때 나온 <망우초>의 원본은 없었다. 언젠가 보도되었던 ‘호화판 <망우초>’도 물론 없었다. (주: 2006년 4월, 고서 수집가 전우성씨라는 분이 청전(靑田) 이상범 화백 등 1930년대 당시 우리나라 유명화가들의 그림과 춘원(春園) 이광수의 친필 등이 들어 있는 25부 한정판 ‘호화판 <망우초>’를 공개한 바 있다.)

원문 뛰어넘는 아름다움 발견

마침내 도서관 직원의 도움으로 <한국현대시사자료집성(韓國現代詩史資料集成), 1982년, 태학사> 속에 다른 시집들과 합본되어 있는 <망우초>를 만날 수 있었다. <망우초>는 900쪽에 달하는 이 자료집의 맨 앞부분 200쪽을 차지하고 있다.

<망우초>에 실려있는 번역시는 <동심초> 등 모두 166수. 과연 번역시 <동심초>의 내용은 맞춤법만 현재와 다소 차이가 있을뿐 이 노래 1절 가사와 같았다. 이 시집에 설도의 시는 <동심초> 단 한 수 뿐이었다. <동심초>는 설도의 <춘망사> 원시(原詩) 내용 중에서 따온 제목이다.

▲ 시집 <망우초>(1934년)에 실린 번역시 <동심초> 원본.
이어 관련자료들을 대부분 뒤져 보았는데,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김억의 번역시 <동심초>를 <망우초>에 싣기 전에도 1930년부터 신문, 잡지 등에 실었는데, 그 때마다 번역 내용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 그러다가 1943년에 아예 <동심초>란 이름으로 펴낸 시집에서는 1, 2행의 번역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춘망사> 제 3수의 원문과 이를 번역한 번역시 4종류의 변화를 연도별로 추적해 보면,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춘망사 제 3수 원문>

1.
꽃잎은 하욤업시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업네
서로서로 맘과맘 맺지 못하고
얽나니 풀잎사귀 쓸데잇는고
(중외일보, 1930. 9. 4)

2.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ㅎ다 기약이 없네.
무심ㅎ다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가피의 풀잎만 뭐라 맺는고.
(학등, 1934. 6. 6)

3.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망우초, 1934. 9. 10)

4.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닢만 맺으랴는고.
(동심초, 1943. 12. 31)

당시에 시작(詩作)이나 번역시(?譯詩)에 있어서 이러한 개작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부르는 가곡 <동심초>의 2절 가사는 <춘망사> 제 3수의 같은 구절을 다르게 번역한 것일 뿐이다. 나는 이 번역시들을 가지고 한문학자들을 만나보았다.

그 분들은, “나중 번역인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가 그 앞의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보다 원 뜻에 가깝다”고 하면서, “김억 시인이 앞서의 번역이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후일에 또 다른 번역시집 <동심초>를 낼 때 이 시를 다시 실으면서 번역 내용을 바꾼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억의 한시 번역이 참으로 뛰어남을 새삼 느낀다”고들 했다.

김억은 그의 여러 글에서 “시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며, 역시(譯詩)는 역자 그 사람의 예술품”이라고 강조한다. 가곡 <동심초> 1절뿐 아니라 2절로 불리우는 ‘바람에 꽃이지니---’ 역시 역자의 오랜 고뇌 끝에 나온, 원문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는 또 다른 예술품이었던 것이다. 비밀 아닌 비밀, 오랜 궁금증이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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