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런티어… 극지와 첨단을 산다
나노(10억분의 1m)의 시계에 산다
“회사 운명 우리가 짊어지고 나간다”
하이닉스 반도체 연구개발팀

 우리 주변에는 첨단 또는 극지의 세계인 경계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과학자(연구원)들을 비롯, 하늘 길의 관문인 국제공항이나 통신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는 위성지구국 요원들, 충북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소백산 천문대 대원 등은 뉴 프런티어를 개척하며 첨단 경계지역을 넘나드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엘리트 체육인이나 인간의 이기를 위해 사용되다가 용도폐기돼 매립장으로 향하는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감시하는 이들도 우리 사회의 첨단과 변경지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중한 이웃들이다. 충청리뷰는 극지와 첨단·변경지대의 세계에서 인류의 지식 및 삶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선도자들을 만나 그들이 성취하고 있는 성과와 그 이면에 녹아있는 일상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에 나선다.
(편집자 주)

반도체 산업은 전형적인 대규모 장치 산업의 전형으로 꼽힌다. FAB(생산공장) 1개를 건설하는 데 무려 1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이같은 자본 및 설비 집약적 특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기술 주기(사이클)가 짧아 도박성 산업-역으로 대박성 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엄청난 돈이 쉼없이 소요되는 반면에 반도체 가격이 1달러 2달러 오를 때마다 수익도 엄청나게 불어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창립이후 10여년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가 80년대 단 한해의 흑자로 누적 적자를 상쇄하고도 엄청난 이익을 남길 정도였다.

지난해 3/4분기때 하이닉스 반도체가 오랜만에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꾸준히 다져 온 기술개발 노력의 덕분도 있었지만 일부나마 회복한 반도체 가격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이닉스가 생산해내는 반도체는 월 평균 6000만개. 최전성기 때에 비하면 아직 형편없지만 만약 앞으로 가격이 개당 1달러만 오른다고 해도 하이닉스가 거둬들일 수 있는 이익은 월 6000만달러, 연평균 7억 2000만 달러(8500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현재 하이닉스가 지고 있는 부채규모가 총 4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2∼3달러만 올라도 짧은 시일내 빚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은 항상 갖춰져 있는 셈이다.

청주에만 600명...전체 1700명
1999년 10월 당시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간 빅딜로 탄생한 하이닉스 반도체는 통합직후 현대전자 자체 부채에다 LG반도체가 지고 있던 6조원 가량의 부채, 거기에다 2조 5000억원에 달하는 인수대금까지 합쳐 총 15조원이 넘는 거대 빚더미로 출범 초부터 휘청댔다. 게다가 반도체 가격마저 10분의 1정도로 폭락하면서 생사기로에서 헤매는 등 지금껏 온갖 풍상을 겪어오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면서 회사의 소유권은 사실상 채권은행단에 넘어갔고, 미국 마이크론사의 인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국내에선 자유주의 경제논리와 국가 기간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자존심이 충돌하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과 EU의 상계관세 제소에 부닥쳐 삼중고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꿋꿋하게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 하이닉스는 채권은행단의 채무재조정 조치로 2005년까지 4조원에 달하는 잔존부채의 원리금 상환 유예조치 속에 한숨 돌린 가운데 2004년 새해를 경영주권 독립의 해로 삼겠다는 의지가 넘쳐흐르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들어 무려 6분기, 즉 1년 6개월만에 분기흑자 기록을 달성한 데 이어 4/4분기에도 연속 흑자를 이룩한 하이닉스는 “2004년도 반도체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건으로 남아 있지만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다.

그렇다고 하이닉스가 근거없이 반도체 가격의 상승이라는 도박형 행운만을 기대하며 낙관 무드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 아무리 회복된다고 해도 시장의 반응을 얻지 못하는 기술과 제품으로는 처음부터 생존게임을 벌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 연구개발팀에 거는 회사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절대적이다. 그리고 반도체 연구원들 역시 그들이 회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최첨병 산업역군이란 무거운 소명의식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이닉스의 두뇌들인 연구원은 청주 이천 서울연구소를 포함해 1721명에 달하는데 이중 박사급만 169명, 석사는 651명에 달한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체 직원수가 1만 3000여명인 점을 감안할 때 10%가 훨씬 넘는 연구원의 비중은 분명 놀랄만한 것이다.

큰 투자 없이 기술혁명 이뤄내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가 뒷받침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빅딜 이후 한때 LG반도체 출신 연구원들이 동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젠 다 옛일입니다. 지금은 사느냐 죽느냐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를 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재 회사와 R&D(연구개발)팀에서는 반도체 제조 핵심공정인 회로선폭 미세화 작업에 승부수를 띄워 놓은 상태다. 회사가 한창 어려울 때에도 이들의 ‘기술 진군’은 쉼이 없었다.

0.15 미크론급 기술제품인 블루칩을 시작으로 한 일명 ‘칩 시리즈 개발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연구원들은 블루칩에서 ‘0.02’ 미크론(100만분의 1m)을 줄인 프라임 칩(0.13미크론급)을 자체 개발해 낸 데 이어 마침내 지난해 5월 0.10 미크론 급인 골든칩의 양산기술 확보에 성공해 낸 것이다. 이로써 하이닉스가 기술경쟁력의 핵심을 확보한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하이닉스가 칩 시리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의미있는 ‘큰 기록’을 달성해 냈는데, 그것은 청주와 이천의 우위 기술을 통합해 경쟁사 대비 1/3 이하의 투자로 기술혁신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프라임 칩 개발에 사용했던 장비와 공정기술을 이용, 추가투자 없이 0.10 미크론급의 골든칩 양산 기술을 개발해 낸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 특기할 만한 쾌거로 회자되고 있다. 더구나 웨이퍼당 칩 개수도 40%이상 높여 기술 및 원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대단한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노급 ‘노바 칩’ 구동에 성공
기술개발 기획을 담당하는 박춘선 책임연구원은 “놀랄만한 연구성과에 힘입어 회사에서는 이내 1G(기가) DDR SD램의 제품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지난해 3월에는 차세대 이동통신용 및 SoC(System on Chip)용 메모리로서 가장 적합한 고집적 강유전체 메모리(Fe램)의 상용화 기술개발에도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하이닉스는 이같은 핵심공정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 초고속 256메가 DDR 500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데 이어 8월에는 골든칩 기술을 적용한 1G DDR 2D램 개발을 역시 세계최초로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 하이닉스가 양산하고 있는 256메가 DDR SD램 칩 하나의 메모리 용량은 신문지 2000장(원고지 8만장, 음성 1시간, 동화상 4분)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 연구개발팀은 현재 반도체 세계에서 나노급(1나노는 10억분의 1m) 기술제품인 골든칩에 이어 다이아몬드 칩과 노바 칩을 연구실 환경에서 구동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나노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 청주사업장 노화욱 상무는 “회사에서는 향후 나노급 기술의 상용화와 부가가치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높은 비메모리 부문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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