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사 사업재검토, 주거환경개선·국민임대 '전망 어둡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부실이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LH공사가 진행중인 사업에 대해 내달 초 중단·축소·연기 등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도내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상당수가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LH공사가 이미 토지보상이 종료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속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지구지정이나 사업자 선정 이후 보상에 들어가지 않은 미착수사업을 중점적으로 취소할 방침으로 알려지면서 이제 첫걸음을 뗀 국민임대주택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 118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LH공사가 진행중인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도내에서는 개선이 시급한 주거환경개선지구와 국민임대주택사업이 중단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사업이 불투명해진 모충동 주거환경개선지구.
LH공사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충북혁신도시 조성사업을 비롯해 청주 동남지구·충주 호암지구·청주 성화2지구·청주 율량2지구·음성 금석지구·충주 안림지구 등 택지개발사업 6곳과 증평 송산지구·제천 강저지구·진천 광혜원2지구·청원 내수2지구·청원 오창지구 등 국민임대주택건설사업 5곳, 충주 모충 2지역 등 주거환경개선사업 3곳, 청원 현도 보금자리주택까지 모두 16곳이다.

문제는 충주 안림지구를 제외한 모든 택지개발지구가 토지 보상을 끝내고 착공에 들어갔거나 예정지역인데 반해 주거환경개선지구 2곳과 국민임대주택 3곳, 보금자리주택 1곳 등 서민들 주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은 추진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LH공사는 통합 10개월만에 부채 규모가 118조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국 총 414개 사업장의 사업성 여부를 검토해 우선 추진·중단·축소·연기 등의 단계로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수익성이 단계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용될 전망이다.

LH공사 충북본부 관계자는 “재검토는 본사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충북본부에서 이렇다 저렇다 전망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사업성이 없는 사업은 전망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결정일 수는 있겠지만 LH공사의 설립 목적이 국민주거생활의 안정과 향상이라는 점에서 공익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청주와 인근지역에 미분양아파트가 넘쳐나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국민임대와 보금자리주택은 사업성을 담보할 수는 없지만 국민 주거생활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LH공사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통합 LH공사 희생양 ‘돌파구가 없다’

영운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 지난 1월 LH공사가 중단을 선언한 영운동 주거지역
통합 LH공사 출범과 함께 도내에서 처음으로 사업이 중단된 곳이 영운동이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영운동 주민들에게 LH공사는 말 그대로 구세주였다. LH공사는 오래된 가옥들은 부수고 그 자리에 480세대 아파트 건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통합 후 LH공사는 1000억원대의 토지매입비와 사업비 회수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들어 지난 1월 12일 청주시에 사업 포기를 통지했다. 한마디로 사업성이 없다는 논리다. 이로써 2008년 12월 정비구역 지정 신청으로 시작해 1년여 진행돼오던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LH공사가 사업을 포기한 지 7개월이 지난 영운동은 희망을 잃은 모습이다. 폭 1m 남짓한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곧 불어 닥칠 태풍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낡아있었다. 주민 김동민 씨는 “올 연말에는 보상이 이뤄질 줄 알고 빚을 내어 이사 갈 집을 미리 산 사람도 있다”며 “헛바람이나 넣지 말지”라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옥은 새로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다. 주민 박종순 씨는 “진입로가 없는 집이 수두룩하다. 이런 집들은 돈을 들여 새로 집을 짓고 싶어도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이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주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청주시 관계자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해 LH공사 본사도 수차례 방문했고, 국토해양부와 고충처리위원회도 찾았다. 하지만 사업시행자가 못한다고 하니 딱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는 사업시행자가 지자체와 공기업으로 제한돼 있다. LH공사가 하지 못하면 청주시가 직접 진행하거나 충북개발공사가 진행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청주시 관계자는 “기 사업비가 있어 청주시가 시행하는 방법도 모색했다. 우선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토지보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지자체가 채권을 발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충북개발공사와도 협의를 했지만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달에는 공동주택방식이 아닌 현지개량방식으로 전환해 사업을 추진했지만 주민 동의가 44%에 그쳐 현재로써는 현지개량방식도 진행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한 주민은 “현지개량방식은 집주인이 자비로 집을 지어야 하는데 거주민 상당수가 세입자다. 세입자가 그럴 권리도 없지만 집주인이 자비를 들여 집을 새로 지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2의 영운동 될라 ‘노심초사’

모충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 경로당에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충동 주민들
“살아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러.” 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충동 대성주택가는 시대적 향수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양팔을 벌리면 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길 사이로 양철대문과 길을 향한 작은 창, 대성주택가는 그렇게 비슷한 집들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다.

본의 아니게 이미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대성주택 주민들은 취재진의 방문이 영 달갑지 않은 눈치다. 때마침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할머니께 살기에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묻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묻기만 하냐”며 귀찮은 듯 대문을 걸어 잠갔다.

모충동은 2008년 1월 청주시와 도시재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한 이후 일사천리로 사업이 진행돼 오는 12월 보상금 지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7월로 예정됐던 보상계획 공고가 미뤄지고 8월에 구성되기로 했던 보상협의회도 함께 미뤄졌다. 조합사무실에서 만난 김정웅 감사(70)는 불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2월에도 본사를 방문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인해 LH공사의 사업환경이 양호하지 않아 올해 안에 보상금 지급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감사는 “예전 같으면 신이 나 기자들에게 이곳저곳 소개도 시켜주고 함께 둘러보기도 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 어쩌면 영운동처럼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선뜻 소개시켜줄 곳도 없다”고 주민들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동네 어르신들은 대성주택 끝자락에 위치한 경로당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40여년을 살았다는 김영순 씨(72)는 “40년 전 쌀 닷 말 값인 4200원을 매달 부어 얻은 집”이라며 “지금으로 치면 임대아파트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불편한 점이 없냐는 질문에 “고치면서 살기는 하지만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모충2구역이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된 것은 대성주택 때문이다.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던 이곳을 1971년 새롭게 건축해 거주민들에게 20년간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분양한 주택이 대성주택이다. 아직도 많은 집들이 재례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고, 좁은 골목은 화재가 나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로당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은 세상소식이 어두운지 예정대로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영자 씨(70)는 “나라에서 아파트 져 준다고 했잖아. 해줘야지 된다고 써”라고 말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한 할머니는 “해준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안한다고 하면 안 되지”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냐. 살아봐야 불편한 줄 알지”라고 말했다.

대성주택이 유명세를 탔을 뿐이지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내 다른 집들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주민은 “언제 헐릴지 모르니 세도 나가지 않는다. 사업지구라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사업을 중단한다고 하면 이 동네사람들은 어떻게 사냐”고 하소연했다.

 

“기약없이 보류하느니 지구지정을 철회하는 게 낫다”

청원 현도 보금자리주택건설사업지구

▲ 현도보금자리주택사업 주민대책위원장 오낙균 씨
2009년 국민임대주택특별법 고시로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보금자리주택단지로 명칭이 바뀐 현도지구는 2008년 11월에 지구지정이 됐지만 토지보상금이 확보되지 않아 사업이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다. 지연이라기보다 보류에 가깝다. 이를 바라보는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곱지 않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배후지역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계획된 현도지구는 현도면 선동1리, 달계 3리, 매봉리, 시목2리, 일원 170만 5000㎡의 대단위에 8731세대가 건설되는 도내 최대 국민임대주택단지다. 교육시설과 공공청사, 사회복지시설 등 부대시설이 들어오면 최대 2만3574명의 인구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청원군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30일에는 이종윤 군수가 본사를 직접 방문해 지속적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군수는 현도 보금자리주택지구가 고속철도와 경부·중부 고속도로가 경유하는 사통팔달의 요지라는 점과 오송생명과학단지·세종시·오창2사단 등의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점, 청주·대전권과 인접해 다른 지역에 비해 주택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사업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청원군은 이 군수의 본사 방문 외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행정역량을 집중해 사업추진에 필요한 모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LH공사도 보금자리주택사업만큼은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어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토지보상비가 필요한 만큼 사업이 중단되지 않더라도 차질없이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

이 군수와 면담한 LH공사 오두진 이사도 “현도보금자리주택사업 취소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다만 사업시기가 2~3년 늦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원군이 보금자리주택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LH공사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당초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2018년 6월에야 완공되기 때문이다. 오낙균 매봉리 이장(54)는 “지금도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농로가 망가져 위험한 곳이 비일비재한데도 개발계획을 이유로 보수공사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등 원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원군은 보금자리주택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원주민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기약없이 사업이 지연되는 동안 찬성했던 사람들도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렇게 사업을 지연될 바에는 차라리 철회하는 것이 이 곳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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