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을 잃은 인간에 대한 경고

지난 100여 년 동안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하는 다윈이즘은 인간사회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확고부동한 자리를 지켜왔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과 인류의 시스템이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에 대해 모독을 느껴야 하는 것은 인간일까? 도종환 시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오히려 정글보다 치열한 인간사회의 논리라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비투스 B. 드뢰셔의 책 <휴머니즘의 동물학>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 책은 또 도 시인이 읽었을 몇 수레 분량의 책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픈 한 권이다.

도 시인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등 현장에서 수십 년씩 연구해 온 동물학자들의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사바나개코원숭이는 강한 수컷이 리더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암컷들이 공동으로 조직을 이끈다. 동물의 세계는 야만과 포악, 잔인, 살육 등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오히려 공존공생을 위한 세련된 평화전략이 몸에 배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휴머니즘의 동물학>을 추천했다. 

개코원숭이에 대한 기존학설은 우두머리나 소수의 수컷들이 결성한 동맹체가 무리의 지배층을 이루고 암컷과 새끼들이 무질서한 피지배층을 구성하며, 특히 암컷들이 수컷지배자의 성적노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뢰셔는 이 같은 남존여비를 부정한다. “이 원숭이 사회에서 가장 공격적인 수컷은 무리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패배자들이다. 또 암컷들은 수컷들의 폭력이나 횡포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고 그들을 훈련시켜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도 시인은 왜 동물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도 시인은 이에 대해 “숲에 들어와 살면서 자연에 대한 관심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시인의 집은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363번지, 심심산골에 있으며 구구산방(龜龜山房)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거북 구(龜)자를 두 개나 붙인 것은 느리게 살고자하는 다짐 때문이 아닐까?

“뱀은 동족 간의 싸움에서 승패가 갈리면 죽이지 않는다. 서로 치명적인 무기인 독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전쟁은 그렇지 않다…” 책의 내용을 인용한 도 시인의 말을 듣자니 세상에 가장 모질고 악한 동물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간도 동물인데 동물만도 못하다는 얘기인가? 도 시인은 “경쟁에서 낙오하면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본질을 보지 못한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적자생존도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은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그래서 “늑대의 무리도 지도자가 옹립되고 내려오는 과정이 인간보다 민주적이다. 지혜를 가진 늙은 코끼리는 무리 속에서 용도 폐기되지 않는다”는 도 시인의 말은 가슴에 깊이 남았다.

아쉬운 얘기를 덧붙이자면 <휴머니즘의 동물학>을 소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03년에 출판된 이 책은 4년여 전에 절판돼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모두 품절이 된 상황이다. 시립도서관 가운데는 시립정보도서관에만 이 책이 있다.

도서출판 이마고 관계자는 “절판된 책이지만 좋은 책으로 추천돼 기쁘다. 드뢰셔의 책 가운데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를 유사한 내용의 책으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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