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옥천 둔주봉과 금강 걷기

옥천은 ‘향수’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라는 시구처럼 금강이 고을 구석구석을 적시고 대청호로 흘러든다.

금강은 대부분 구간에서 아직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특히 영동을 지나 옥천 땅에 아름다운 정취를 펼쳐놓았다. 최근 인기가 좋은 둔주봉(384m)은 비단처럼 흐르는 금강이 빚은 한반도 지형이 일품이고, 호젓한 강변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 전망대에서 본 금강과 한반도 지형. 한반도는 좌우가 바뀐 모습이다.
금강이 빚은 한반도 지형

최근 옥천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른 곳이 ‘향수 30리’길이다. 그것은 정지용의 생가가 있는 구읍에서 장계리 ‘멋진 신세계’를 잇는 30리 문화 벨트를 말한다. ‘멋진 신세계’는 정지용의 시 19편을 주제로 오래되고 방치되어 사람들에게 잊혀진 장계관광지를 새롭게 꾸미고 붙인 이름이다. ‘향수 30리’길은 예술과 관광이 오묘하게 조합되어 신기하고 볼거리 많지만, 아쉬운 것은 걷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둔주봉 걷기는 이런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어 더욱 돋보인다.

최근에 둔주봉이 알려진 것은 사진 동호인이 올린 한반도 지형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이에 발맞춰 안남면사무소에서도 등산로를 내고 정자를 세웠다. 산길은 안남면 연주리 안남초등학교를 들머리로 전망대와 정상을 거친 후에 피실로 내려와 금강을 따라 걷는 코스가 좋다. 거리는 약 9㎞, 4시간쯤 걸린다.

안남면 버스 종점에 내려면 안남초등학교 앞이다. 그곳 둔주봉 등산안내판 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학교에서 까르르~ 울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학교 건물 뒤로 둔주봉이 봉긋 솟았다. 학교 담벼락에 걸린 ‘안남면 둔주봉 등산을 환영합니다-안남면사무소 직원 일동’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길을 나서면, 옥수수·고추 등이 자라는 편안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 정상에서는 구절양장 흘러가는 금강의 모습이 꼭 동강에 온 기분이다.
안남교회를 지나면 갈림길. 이정표를 따라 왼쪽길로 접어드니 날개에 점이 박힌 부전나비가 길 안내를 한다. 다가서면 포르릉 날아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면 팔랑팔랑 도망간다. 그렇게 15분쯤 숨바꼭질하며 기분 좋게 점촌고개 닿는다.

점촌고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울창한 리기다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은은한 솔 향기 맡으며 20분쯤 가면 시야가 넓게 열리면서 전망대가 나타난다. 정자에 오르니 사진에서 보았던 한반도 지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비단결처럼 고운 금강은 S자를 그리면서 한반도 지형인 갈마골을 부드럽게 품고 있다. 갈마골에는 두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맞으며 조망을 즐기니 신선이 부럽지 않다.

금강을 따라 이어진 호젓한 숲길

다시 길을 나서면 소나무가 참나무로 바뀌면서 둔주봉의 깊은 품으로 들어간다. 갈림길이 나오는 안부에서 가파른 비탈을 100m쯤 오르면 둔주봉 정상. 산호랑나비 한 쌍이 화려한 구애 비행을 펼치고 있다. 가끔 산제비나비도 등장해 허공을 한 바퀴 돌고 간다. 이번 산행 내내 다양한 나비들을 만났다. 그만큼 둔주봉 일대가 청정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 조망은 서쪽으로 열리는데, 구절양장 흘러가는 금강 줄기가 마치 동강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 은은한 녹음을 담고 흐르는 피실 강변길. 피실에서 금정골 일대는 금강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하산은 고성, 금정골, 피실 코스가 있다. 모두 금강을 따라 걷는 길이고 피실 코스가 가장 먼 거리를 걷게 된다. 정상에서 피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면 급경사가 펼쳐진다. 로프가 없기에 천천히 주의해서 내려가야 한다. 15분쯤 내려서면 길이 순해지고 20분쯤 더 가면 강변으로 내려선다.

‘강변 따라 쉬운 길이 펼쳐지겠지’하는 추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길은 강변에 바투 붙은 산비탈로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강물을 보면서 걷는 맛이 기막히다. 강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나무들이 가리고 길이 험해 쉽지 않다. 좀 걷다보니 아름드리 아그배나무들이 펼쳐진 그윽한 숲을 만난다. 이런 강변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

▲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독락정은 산행 끝 지점에 있다.
강변길은 금정골 입구에서 절정을 이룬다. 계곡과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수초가 가득해 강물이 연한 초록빛이다. 인적을 느꼈는지 숨어 있던 오리 가족이 놀라 날아간다. 철새들도 이 부근에 제일 많다. 강변 숲길은 금정골을 좀 지나면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호젓한 숲길은 여기까지다. 40분쯤 더 강변을 따르면 독락정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여기서 포장도로를 15분쯤 더 가면 안남초등학교 앞이다.

가는 길과 맛집

서울역→옥천역은 무궁화호가 06:15~19:40(배차간격 1시간 20분), 2시간 10분 걸린다. 대전역에서는 607번 버스가 옥천까지 다닌다. 청주터미널→옥천은 06:40~20:00(배차간격 30분~1시간), 1시간 걸린다. 옥천역 앞의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안남행 버스는 06:20~19:40(배차간격 40분~1시간). 자가용은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으로 나온다. 옥천은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정지용 생가 앞의 구읍식당(043-733-4848)과 대박집(043-733-5788)이 잘한다. 고풍스러운 고택인 춘추민속관(043-733-4007)은 한옥 체험, 전통혼례, 한옥학교 등을 운영하는데, 고맙게도 이곳에 ‘초밤불’이란 주막이 있다. 회화나무 아래 평상에서 기울이는 막걸리가 일품이다.  / 진우석 프리랜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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