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습니다. 마침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지난 해 대선 때 모 기업이 차 떼기로 한나라당에 1백 억을 갖다 바쳤다는 검찰의 대선 자금 속보였습니다. 운전기사는 버럭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런 죽일 놈들! 저 도둑놈들, 다 쳐죽여야 돼.” 기사는 마구 열을 올리면서 악담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주말 있었던 일입니다.

 1980년대 ‘민나도로보데스’라는 일본말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얘기인즉슨 이렇습니다. 80년 전두환소장이 광주에서 피 바람을 일으켜 정권을 빼앗은 지 얼마 안돼 세칭 장영자사기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일제시대 공주갑부 김갑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일제시대 금으로 만든 명함 갑을 일본인에게 뇌물로 바쳐 대전 땅 반을 손에 넣을 정도로 떼돈을 벌었던 김갑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서 주인공 김갑순은 순사에 뜯기고, 세무관리에 뜯기고, 깡패에 뜯기고, 여기 저기서 마구 뜯기기만 하자 말끝마다 “민나도로보데스여!”를 연발합니다.

‘모두다 도둑놈’라는 뜻의 ‘민나도로보데스’는 이내 시중의 유행어가 됐고 자조 어린 푸념으로 술자리의 화두가 됐습니다. 정치인, 공직자들의 부패가 워낙 심했던 데다 전두환정권의 정권찬탈이 도둑질로 인식되던 터라 ‘민나도로보데스’야 말로 당시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꼬집은 패러디가 됐던 것입니다. 결국 드라마는 발이 저린 신 군부의 압력으로 도중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우리 국민들 날마다 배가 부릅니다. 아니, 배가 부른 정도가 아니라 터질 지경이라는 표현이 옳겠습니다. 기업들이 한나라당에 준 대선 자금이 검찰 조사결과 ‘억!’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나기에 말입니다. 500여 억 원이라는 액수도 액수려니와 주고받은 수법이 007작전을 방불하듯 하도 기발하니 절로 기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케이크상자, 사과궤짝은 옛 말이요, 아예 차 떼기로 화물차에 돈을 가득 실어 통째로 넘겨주곤 했다니 그 검은 배포가 정말 놀랍습니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농작물을 밭떼기로 사고 판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현금을 차 떼기로 주고받는다는 얘기는 듣느니 처음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빙산의 일각은 아닐까요. 또 그것이 한나라당만의 일이겠습니까. 노무현캠프에는 없었던 일이겠습니까. 다만 당시 상황이 이회창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처럼 돼 있었기에 왕창 그쪽으로 돈이 더 몰렸을 뿐이 아닐까요.

 몇 일전 서울거리. 허름한 차림의 50대 중년 신사가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돈 뭉치 두 덩어리를 넣고 갔다고 합니다. 신사가 가져온 돈 뭉치의 반을 넣고 또 반을 넣으려 했을 때 차림이 퍽 남루하기에 종을 치던 신도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렸지만 그는 굳이 두 뭉치를 다 넣고 총총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신도가 전화번호라도 알아보려 뒤쫓아갔지만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다고 합니다. 구세군 측은 이 돈이 1928년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한 이래 최고의 액수라고 밝혔습니다. 3752만원이었습니다.

 그의 선행은 오늘 우리사회에 낭랑한 종소리로 크게 울립니다. 정치인이라는 자들이 마피아를 뺨치는 수법으로 기업에서 돈을 긁어내는가 하면, 최고의 직업인 변호사라는 자들은 추악한 정치의 하수인이 되어 검은 수금원으로 전락한 것이 오늘 우리 사회 지도층의 행태입니다. 그들에게 손톱만큼의 양심이나마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금테안경에 비싼 옷을 입고 입만 열면 애국을 외치면서 뒤로는 검은 돈 챙기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 허름한 양복에 이름조차 숨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 뭉치를 버리고 간 사람. 어느 쪽이 더 훌륭할까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요.

 김갑순의 말 마 따나 ‘민나도로보데스’입니다. 오늘, 정치인 고위공직자 중에서 이 고약한 푸념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것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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