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을 이재오와 함께 ‘왕의 남자’ 윤진식 출사표
민주, 당 대표까지 나서서 이인영 출마 설득할 듯
국정운영 방향타로 떠오른 7·28 보선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표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세종시 수정에 대한 미련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7.28 충주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향후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충주 보선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64)을 일찌감치 공천한 상태다. 윤 전 실장은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황에서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충주가 오랫동안 정체되고 지역발전이 더뎠던 이유는 역대 국회의원과 지도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이 집권했던 과거 10년과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를 싸잡아 비난했다.
윤 예비후보는 예비후보 등록 후 공천과정에서 역시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맹정섭 MIK 대표(51)와 지난 18대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이면 합의서 문제로 갈등을 빚었지만 당은 주저 없이 윤 전 실장을 택했다. 합의서란 ‘2008년 18대 총선에 윤 후보를 미는 대신에 향후 정치일정에는 윤 후보가 맹 후보를 민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종합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보선이 그 향후 일정에 해당되는지가 논란이 됐던 것. 맹 후보는 윤 후보의 공천이 확정된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靑-국면 전환용, 이겨야하는 선거
청와대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윤 후보가 청와대를 떠나 충주 보선 출사표를 던지기까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거나 최소한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불 보 듯 뻔한 일이다. 그만큼 국면 전환용으로 윤진식 카드가 갖는 중요성은 크다.
특히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부와 한나라당은 ‘7.28 보선을 보자’며 민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번만 더’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윤 후보와 함께 이번 보선에서 서울 은평을 출마가 유력한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생환여부가 향후 정국 주도권을 쥐느냐 놓치느냐를 가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주당으로서도 충주 보선에서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때 민주당 충북도당 내부에서는 민선 이후 첫 충북지사를 배출하고 청주시장 당선과 더불어 충주 출신 이시종 후보 당선에 힘입어 충주시장 선거에서까지 역전승을 거둔 마당에 ‘7.28은 편하게 가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7.28 필승’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직후에는 이인영 전 국회의원(46), 최규호 변호사(40), 이종배 행안부 소청심사위원(53), 박상규 전 중소기업중앙회장(74), 정기영 세종시 사수위 부위원장(52) 등 모두 5명이 자천타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당 대변인인 노영민 의원은 “이 전 의원을 제외한 4명 가운데 후보가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노 의원의 발언은 서울 구로갑에서 의원을 지냈고 현재도 지역구를 맡고 있는 이 전 의원이 아니더라도 해 볼만 하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10일 이후로 상황은 급반전 됐다. 필승카드로 ‘이인영 출마’를 결정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충주보선을 포기할 수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전 의원을 설득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민주당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인영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따라서 중앙당에서 더욱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李-“구로 떠날 명분이 없다”
이런 가운데 이시종 당선자와 이 전 의원의 만남이 12일 청주에서 이뤄졌다. 도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당선자와 홍재형 의원이 출마를 종용하는 전화를 잇달아 걸었고 이 전 의원이 이 당선자의 당선을 축하하는 형식으로 30분 정도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 이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고민해보겠다”고 짧게 답변했을 뿐 가부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함께했던 유행렬 충북도당 사무처장이 15일 이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갑 사무실을 방문해 2시간 가까이 설득에 나섰다. 유 처장은 이 전 의원이 “‘고향인 충주에서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10여년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고락을 함께 해온 구로갑 당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유 처장은 또 “전대협 1기 의장일 때부터 지켜봤지만 워낙 소신파인데다 원칙주의자다. 중앙당도 이 전 의원의 보선 출마를 바라는 만큼 어떻게든 설득을 하겠다. 사실 여권의 실세 중 실세인 윤 전 실장을 꺾는 것 자체가 명분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6일 주말을 전후해 이 전 의원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충주고 졸, 전대협 1기 의장 경력
어찌 됐든 이 전 의원으로서는 충주 선거에서 이기면 다행이지만 만약 낙선할 경우 그동안 표밭을 갈아왔던 구로로 되돌아가기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행렬 처장은 “고향인 충주로 돌아오면 롱런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지만 이 전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갖고 있는 더 큰 꿈이 있을 수도 있기에 솔직히 우리 입장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충주출신의 이 전 의원은 충주고와 고려대를 나와 16대 총선 서울 구로갑에 출마했으나 4선의 김기배 의원에게 1000여 표 차로 낙선했다. 이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18대 총선에서는 926표 차로 재선에 실패했다. 윤진식 후보가 고향은 충주지만 청주고를 나왔다는 점에서 이 전 의원이 충주고 학연을 등에 업을 공산이 크다.
이 전 의원의 충주보선 출마가 성사될 경우 지난해 10.28 보선에서 서울 중구를 관리하던 당시 정범구 전 의원이 증평·진천·괴산·음성으로 내려와 금배지를 단 것에 이어 충북 연고 중앙정치인의 도전사를 잇게 된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객지 아닌 객지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정 의원으로서는 든든한 친구를 얻는 셈이다.
한편 정치적 신의를 저버렸다며 윤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었던 맹 후보는 지난 17일 "중앙당의 공천신청 설득이 있었지만 윤 후보에 대한 당의 공식 입장이 표명되지 않으면 공천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튿날 곧바로 한나라당이 윤 후보 공천을 확정하자 18일 탈당계를 제출했다.
탈당계를 제출한 후 맹 후보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고, 홀가분하다”며 “당선으로 충주민심의 본때를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7년 ‘지역구 맹정섭, 윤진식 입각 또는 전국구’라는 당 약속에 속은 것도, 2008년 3월 ‘다음에는 맹정섭’이라는 윤진식 합의서에 속은 것도 모두 나의 선택적 실수였다”고 말했다.
맹 후보는 또 격앙된 어조로 “윤 후보가 양심이 있다면 합의서 파기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사기꾼에 대한 바른 선택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