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출신 `흑금성' 간첩활동 혐의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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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 `흑금성' 간첩활동 혐의 구속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6.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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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공작원 출신 박채서씨, 육군 소장 포섭 軍기밀 유출 혐의
97년 북풍사건으로 신분노출, 중국 사업중 북 공작원에 포섭당해

▲ 97년 북풍사건 당시 언론에 보도된 흑금성 박채서씨.
지난 97년 대선 당시 '북풍' 사건의 주역으로 암호명 '흑금성'으로 알려졌던 청주고 출신의 박채서씨(56)가 이번에는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 기밀과 방위산업 정보를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3일 한국의 군사기밀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흑금성' 박씨와 방위사업체인 L사 간부 손모씨(45) 등 두 명을 구속했다. 박씨는 군사령부 참모장이었던 K소장을 통해 2005~2007년 사이에 여러차례 접촉해 메모를 전달하거나 구두설명 방법으로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 5027` 핵심 내용을 북한에 넘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는 박씨를 통해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현역 육군 소장 K씨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안기부의 대북 공작원 출신인 박씨는 K소장을 통해 2005~2007년 한미연합사의 작전 교리와 야전 교범을 박씨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박씨를 포섭한 북한 공작원은 대외적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대남 경협을 총괄하는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소속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작년 2월 정찰총국으로 편입된 구(舊) 작전부에서 대남 공작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청원 남이 출신으로 청주고와 육군 3사를 나와 안기부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하다 북풍사건에 휘말린 뒤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벌여왔다. 지난 2005년을 전후해서는 청주를 자주 방문해 인근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후 사업에 전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흑금성, 안기부의 ‘유능한’ 대북 공작원

'흑금성(黑金星)'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대북 공작원이었던 박채서씨의 암호명이다. 3사 출신인 그는 소령으로 진급한뒤 육군대학에 입교하는데,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것. 이후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치된 그는 1991년부터 정보사령부 공작단의 한미공작대 A-23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A-23팀은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미 CIA와 함께 대북 우회침투공작을 하는 비밀 조직이었다.

▲ 2005년 고교 동문 골프대회에서 빼어난 실력을 발휘한 박채서씨. (왼쪽에서 두번째)
박씨는 자신을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키는 '고도의 위장술'을 거쳐  1993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1994년부터 안기부에서 공작원으로 일해왔다. 행여 정보사에 침투해 있을 북한 고첩(고정간첩)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전역 과정을 꾸민 것이다. 남측 정보부대 출신이라는 신분을 위장한 박씨는 중국을 무대로 남북한의 실력자들을 접촉해온 손꼽히는 북한전문 첩보요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1995년 대북 광고기획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취업해 1997년부터 북한의 금강산, 백두산 등을 배경으로 남한 기업의 TV광고를 찍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북한측과 접촉하면서 프로젝트 성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실제로 당시 "아자"는 영화배우 안성기 등을 모델로 북한에서 "애니콜" 휴대폰 광고를 찍기 위해 북측과 5년간 독점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안기부 북풍공작에 무너진 대북 정보망

 대북공작원이었던 박씨의 신분이 밝혀진 것은 1998년 안기부 때문이었다. 당시 북풍사건(안기부가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자, 안기부 간부였던 이대성(68)씨가 수사확대를 막기 위해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언론에 폭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흑금성이 안기부 대북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안기부는 박씨를 ‘이중간첩’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으나 박씨가 남과 북의 요인을 만날 때 비밀리에 녹음한 녹음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배수진을 치자 수사를 중단했다. 또한 북풍 수사 발표를 통해 박씨가 ‘안기부의 4급 상당 공작원”이라고 밝혀 퇴직금까지 받게 됐다.

한편 박씨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폭로되자 아자커뮤니케이션측의 대북사업은 전면 중단됐고 국가를 상대로 7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안기부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패소 판결했으나 2003년 6월 2심 재판부는 안기부의 책임을 인정해 "6억5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안기부 간부의 기밀누설로 인해 아자커뮤니케이션의 사업은 물론 유능한 공작원이었던 흑금성 역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박씨는 이 사건 이후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대북 사업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성 파일'과 조철호 사장의 북풍사건

1998년 2월말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서울지검 공안부는 수사기획단을 만들고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북풍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차츰 수사의 칼날이 다가오자 이대성 실장은 이종찬 신임 안기부장을 만나 권영해 부장 시절에 있었던 북풍공작을 털어놓고 비장의 카드를 꺼내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 측근들의 대북접촉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끌어모은 '이대성 파일'이었다.

이종찬 부장이 검찰 수사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자 정권실세였던 정대철 의원을 만나 '이대성 파일'을 전달했고 문제의 자료가 한겨레신문에 보도되면서 파일에 담겨있던 흑금성의 존재와 동양일보 조철호 사장의 존재까지 알려지게 됐다.

'대선 전후 북한의 대남공작 기도와 전망’이라는 제목의 자료에는 97년 대권주자 캠프에서 북측과 접촉한 과정이 소상하게 담겨있었다. 한나라당은 정재문의원, 국민회의는 최봉구 전 평민당의원, 한국신당은 조철호대표가 북한 조평통 고위간부와 만난 것으로 기록됐다. 이들의 비밀스런 북측 접촉과정은 바로 대북 공작원 흑금성의 정보보고를 통해 안기부가 확보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조철호 사장이 한국신당 대권주자인 이인제 후보의 동서였기 때문에 선거국면에 남북관계의 빅 카드를 만들려 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접촉사실이 공개된 이들 3명은 98년 5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1심 유죄판결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관련자 3명 모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결국 청주 출신의 고교 선후배가 안기부의 '이대성 파일'이 폭로되면서 신분이 노출되고 사법처리되는 동병상련을 겪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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