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슬레 사태 타협 이끈 ‘중재 전문갗 박 승 태 충북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실 노동위원회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없습니다. 결국 이해당사자인 노사 양측이 서로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합의를 통해 노사분규 사태를 종식시킨 것 아니겠습니까.”
145일만에 극적인 타결을 통해 지리했던 초장기 파업-직장폐쇄 사태를 끝낸 한국네슬레 노사분규 문제를 성공적으로 중재해 낸 박승태 충북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51)에게 ‘그간 노고가 컸겠다’고 위로의 말을 꺼내자 박 위원장은 “노사 모두 더 이상 초장기 파업 및 직장폐쇄 사태를 끌고 가다가는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며 “이런 인식이 노사 상호간에 일보씩 양보를 이끌어 냈고 이것이 극적인 타결을 이뤄낸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지방노동위원회로서는 당사자간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재판관처럼 제3자 입장에서 한국 네슬레 사태를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또 중재를 시도하면서 느낀 소회’를 묻는 질문에 박 위원장은 “한국네슬레 노사간에 진정한 대화가 부재했던 것 같다”고 문제의식을 정리했다. 그리고 대화의 부재, 신뢰의 상실이 노사간 서로 사생결단 하듯 정면충돌을 빚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평소 상대를 존중하며 늘 대화하는 게 필요”
“한국네슬레의 파업사태를 들여다보면 그 촉발점에는 고용안정 문제라는 핵심이 노조측에겐 놓여 있었습니다. 반면 경영진으로선 계속 하락하는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득불 구조조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회사측이 노조와 성실히 논의하면서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배경 등을 마음을 열고 충실히 설명했더라면 이토록 극단적인 저항은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박 위원장은 “노사간에는 상대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 성실한 대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회사측이 기업 경쟁력 강화차원의 구조조정 방안을 불가피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만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설득하거나 추진하려다보니 직원들의 마음을 폭넓게 얻지 못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국 노사 상호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임금단체협상 기간에 닥쳐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는 형식적인 대화로는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없다는 경험칙을 숱한 사례를 통해 확인해 왔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말이었다. 박 위원장은 “평상시 꾸준한 대화, 성실한 대화가 노사 관계의 요체”라고 확언했다.

“돈 보다 직장만족도가 더 중요해”
이런 점에서 “충북지역 경영층들은 아직도 노사관계를 대립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등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박 위원장의 말은 놀랍기까지 했다.
“아직도 많은 기업주들이 노무관리의 중요성을 인식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지적했듯 평상시 현장에서 노사대화를 통해 직원의 참여의식을 키우는 노력을 잘 하지 않는 듯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의 주인의식도 싹트고 이렇게 되면 분규도 크게 줄어들텐데 말입니다. 제 경험상 근로조건 때문에 분규가 발생하는 사례는 정작 많지 않아요. 쉽게 말해 돈 문제 때문에 파업이 벌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대우를 얼마나 해 주는지, 회사가 직원의 고충사항을 평소 얼마나 성실하게 수렴, 해결하려는 자세 갖고 있는가에 따라 직원들의 직장 만족도가 크게 달라지는데 대부분 직장 만족도가 떨어질 때 분규가 발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고경영자의 대노조 인식 등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재 과도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경영진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위원장은 “연장선에서 노동운동 역시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노조는 노조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운동을 하는 존재로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과 교섭 또는 협상을 통해 얻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2가지 방법론을 법적으로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 등 투쟁 방식을 선택한 경우라도 종국적으로는 반드시 협상을 통해 분규를 종식시킬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도 살필 줄 아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폭넓은 지지도 확보할 수 있고요. 협상은 투쟁보다 후유증이 훨씬 적은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투쟁방식을 성급히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 위원장은 노사 불문하고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노사화합 없이는 이제 어느 사업장이든 공멸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단언했다.

“노사화합 없는 기업은 설땅 잃어 “
“충북은 그래도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는 지역”이라는 박 위원장은 화해주선의 전문가로 통한다. 노동부 노사조정과장에서 올 초 충북지노위원장으로 승진 부임한 박 위원장은 노사조정과장으로서 숱하게 쌓은 중재경험을 십분 발휘, 올해 충북지노위에 접수된 25건의 노동쟁의조정 신청건 중 무려 16건이나 조정을 성립시켜 72.7%라는 미증유의 전국 최고 조정성립률(전국 평균은 51%)을 기록했다.
박 위원장은 “조정을 통해 분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 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노사관계 발전 로드맵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대하고 있는 것과 관련, 박 위원장은 “노동관계법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이 안은 국제적 수준의 ‘게임 룰’을 만들자는 것으로 노사 모두 자기에게 불리한 것만 들어 반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토론을 해 나가면서 가장 합리적인 안을 이제부터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1등 기업이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1등 기업이 노사평화 없이 우수한 기술만으로 달성되겠습니까. 노사 모두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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