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충북환경련 풀꿈강좌②- 김용택 시인
섬진강 시인이 길어 올리는 진솔한 삶의 향기

섬진강 시인이 청주에 왔다. 5월12일 청주시립상당도서관에서 열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의 풀꿈강좌 두 번째 강의가 김용택 시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객석과 같은 높이에서 주어진 1시간30분을 넘기고도 그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2차라도 함께할 기세였지만 이튿날 서울일정 때문에 스스로 아쉬워하며 자리를 파했다. 수강자들은 강의가 끝나는 순간까지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그의 토담집 사랑방에서 아랫목 이불 속에 다리를 묻고 도란도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다소 거창하게도 ‘시가, 자연이 내게로 왔다’였다. 강의에 앞서 나눠준 유인물의 제목도 ‘세상을 가꾸는 글쓰기, 바스락 소리를 듣다’였다. 그러나 김 시인은 자료를 보지 말라며 수강자들과 눈을 맞추려했다.

김 시인은 주제에서 벗어나 영화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순창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순창극장에 들어온 모든 영화를 빠짐없이 봤다. 돈을 내고 본 건 아니고 영화가 시작되고 20분쯤 지나면 문지기가 입장을 허용했다”는 것. 김 시인은 “그 당시 영화는 처음부터 본 게 한 편도 없다. 그래도 배우, 감독들 중에 나 만큼 영화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지금도 틈만 나면 극장을 찾는다고 했다. “영화를 놓치면 사람이 낡아간다. 시대를 놓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 시인은 시를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이룸·2000년)’라는 책을 썼다.

시네마 키드 은막에 서다
김 시인의 이야기는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했고, 청주에서 장면 일부를 촬영한 이창동 감독의 신작영화 ‘시’로 옮아갔다. 줄거리는 “지난해 이창동 감독이 던져준 시나리오에 ‘김용탁’이라는 시인이 등장했는데 그게 나를 염두에 둔 것이었더라. 강원도 영월에서 9일, 청주에서 이틀을 찍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연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 밤을 새워 찍고도 하루를 더 작업했다. 4분짜리 필름 한 통 값이 25만원이니 영화를 많이 봐 달라”는 일종의 영화홍보였다.

시네마키드로 자라서 이순의 나이에 은막에 데뷔하기까지 진진한 스토리가 결국은 잘 짜인 홍보멘트였다니. 그래도 통속성을 감쪽같이 은폐하고 수강자들을 빨려들게 만드는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알려진 대로 김 시인은 시골초등학교 교사였다. 1970년에 자신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2008년 교문을 나설 때까지 38년을 근무했고 그 가운데 6번을 덕치초로 발령을 받았다. 누구나 근무를 꺼리는 궁벽한 산골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졸업할 때 200명이었는데 한때 700명까지 학생이 늘었다. 퇴직할 때는 전교생이 35명에 불과했다….” 아무런 수식도 없는 서사(敍事)적 나열이지만 자신이 초등학교를 다닌 기간을 포함해 44년 동안 현장을 지켰던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다는 점에서 농촌현실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정리다. “38년 재직기간 동안 2학년만 26년을 맡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말 안 듣는 게 그 놈들이다….” 시인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존경과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사물에 대한 관심이 시가 된다
젊고 예쁜 여교사들과 카풀을 했던 때가 있었단다. 어느 봄날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가 드리워진 길을 지나가면서 겨울을 이겨낸 새순에 대해 찬탄했다. 그때 그 여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은 “여기에 느티나무가 있었구나!”였다고. 김 시인은 “겨우내 느티나무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나. 실가지가 어떻게 겨울을 이겨내고 새순이 났는지 꽃보다 아름다웠다. 내가 자연이다. 인간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산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김 시인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의 눈을 칭찬한다. 그러면서 김 시인은 2학년 문성민 군이 썼다는 ‘참새 집을 보았다’를 읽어줬다. ‘학교가 끝나고 참새 집을 보았다/ 참새 집을 보았을 땐/ 나뭇잎이 떨어졌다/ 나뭇잎이 떨어졌을 땐/ 바람이 불어/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재미있었다(이상 全文)’ 성민이가 언제 적 2학년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2학년 다운 호기심이 제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김 시인은 “사실 참새는 나무에 집을 짓지 않는다. 다른 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김 시인의 어머니는 그의 ‘시(詩)스승’이다. 김 시인은 “하루는 보일러가 고장 나 배관의 온수를 마당으로 빼는데 노모가 ‘눈 감아라, 눈 감아라’를 주문처럼 중얼거리시더라. ‘어머니 뭐라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땅 속의 벌레들이 눈이 멀까봐 그런다’고 하시더라”며 “그 모습이 너무 엄숙하고 경건했다”고 밝혔다.
어머니의 말을 옮겨 적으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 오늘 꾀꼬리가 울데요’ 그랬더니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소리 듣고 토란 난다’고 하시더라”는 것. “나는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참깨는 한 움큼씩 파종하기 때문에 함께 흙을 들고 싹이 나온다. 새소리에 싹이 나오는 것처럼 쉬워 보인다. 반면 토란은 도리깨로 땅을 두드려야 잠이 깨는 것처럼 늦게 싹이 난다는 것을 이처럼 표현할 수 있겠냐”며 관심이 곧 예술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 등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를 감동시키며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김소월과 백석의 대를 잇는 시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섬진강 연작으로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평생을 시골에 머물면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섬진강> <맑은 날> 등 여러 권의 시집 외에도 산문집, 장편동화, 성장소설 등 많은 저작물이 있으며, 1986년 김수영 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