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회 지역구 한8-민5-민노2, 대부분 ‘가번’ 공천
비례대표 당선자 더할 경우 최대 30명 안팎 이를 듯

남장 국회의원 김옥선을 추억하며….

2대8의 가르마로 빗어 넘긴 전형적인 정치인 헤어스타일에 감색 정장, 늘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국회의원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있었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그는 여자였다. 40대 정도만 돼도 대개 얼굴 정도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김옥선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9대 국회 때인 1975년 10월8일,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딕테이터(독재자) 박’으로,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맹공격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내놔야 했다. 그러나 10년간 공민권을 박탈당하고도 1985년 정계복귀 뒤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도합 3번이나 금배지를 달았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은 왜 남장(男裝)을 했을까?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 대한 항거이거나 그 반대로 여성성(女性性)에 대한 희석을 원하지 않았겠냐는 것이 대다수의 추측일 것이다. 그러나 2007년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선 “어머니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1남3녀 중 막내인 자신이 남장을 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환경에 적응하는 방편이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앞선 추측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비례대표에 있어서 여성을 우선 배려하고 지역구에서도 제도적으로 여성공천을 장려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이면에는 여전히 모순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여성공천비율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정도냐’는 측면과 ‘여성공천을 제도적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진정한 양성평등에는 위배된다’는 측면이다. 6.2지방선거에서 충북 여성정치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 4월1일 여성후보들이 정당을 초월해 한자리에 모여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촉구했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찌 됐든 정치권에서는 ‘여성공천’ 경쟁이 뜨겁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 의무 공천을 강화한 개정 선거법이 처음 적용되는 것이 여성공천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개정 선거법에 따르면 지역구에서 광역 및 도시지역 기초의원 선거에 여성을 1명 이상 공천하지 않을 경우 그 지역 공천 자체가 무효화된다.

여기에다 ‘여성추천보조금’제도가 알게 모르게 여성공천비율을 상승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지역구에 여성을 많이 공천하는 정당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전체 지역구 의석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한 정당은 보조금 전액을 가져간다. 30% 이상 공천한 정당이 없으면 여성 공천비율과 국회의원 의석수, 선거 득표율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조금을 나눈다.

제도가 처음 실시된 2006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한나라당 7억6800여만원, 열린우리당 2억6300여만원, 민노당 3558만원 순으로 보조금을 받아갔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총선 때에는 민노당이 지역구 의원 254석 가운데 46곳(18.8%)에 여성 후보를 공천해 무려 17억7900여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지역구든 비례든 여성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민주 양당과 민주노동당의 경우 도의회 지역구 여성후보를 필두로 최소한 도시지역에는 복수의 여성후보를 공천한 상황이다. 세 정당의 여성 지역구 후보는 도의원 후보 2명을 포함해 17명에 이른다.

여성공천의 비율을 30%까지 높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당선자 수에 있어서는 지난 2006년 5.31지방선거에 비해 확실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전망이다. 여성 기초의회 후보에게 당선에 유리한 선순위 기호(가번)를 부여해 ‘무늬만 여성후보’라는 논란을 피해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5.31지방선거 결과는 광역과 기초를 포함해 모두 20명(지역구 2명, 비례 18명)의 당선자를 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에서는 비례를 포함 30명 안팎의 당선자를 낼 것으로 예상돼 50%수준의 약진이 기대되고 있다.   
  
한나라, 기호 고려 최소 5,6명 지역구 당선권
한나라당 충북도당은 4일 현재 충북도의회 청주시 9선거구에 정윤숙 후보를 공천한 것을 비롯해 기초의 경우 청주시의회 4명 등 광역 1명, 기초 8명을 지역구에 공천했다. 이는 지난 2006년 5기 지방선거에서 도의원 후보 정윤숙, 충주시의원 후보 김경숙 후보 등 단 2명만을 지역구에 공천했던 것에 비해 양적으로 무려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물론 기초의회 공천자 8명 가운데 이종순(청주 다), 최광옥(청주 라), 서명희·이행임(청주 자), 홍진옥(충주 다), 김경숙(충주 사), 이정임(제천 나) 후보 등 7명이 1명 이상 의무공천 대상인 도시지역이고 이완식(진천 가) 후보만 군지역이다.

최광옥 후보는 이례적으로 현역 도의원임에도 청주시의회로 하향 공천됐고, 서명희·이행임 후보는 현역 청주시의회 비례대표 의원, 김경숙 후보는 현역 충주시의회 지역구 의원, 이정임 후보는 현역 제천시 비례대표 의원, 이완식 후보는 현역 진천군의회 비례대표 의원(부의장)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거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비례대표 연임이라는 전례가 지방의회에 전무하다시피하고 현역 프리미엄에 기인한 경쟁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규석 한나라당 충북도당 사무처장은 “형식적으로 여성공천 비율만 높인 게 아니다. 당선권에 근접할 수 있도록 여성후보를 대부분 ‘가번’에 배치했다. 여성후보가 한 지역구에 나서는 청주 자는 어쩔 수 없이 서명희-가, 이행임-나를 줬고 현역 지역구 의원으로 경쟁력이 있는 충주 사의 김경숙 후보도 사실상 본인 희망에 따라 뒤에 배치했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처장은 또 ‘여성공천이 도시지역에만 몰린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든 선거구에서 상징적으로라도 여성후보를 공천하려 했다. 그런데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여성후보들이 극구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 지역구에서 대개 2,3명을 뽑는 중선거구방식으로 치러지는 기초의회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와 여성후보에게 선순위 기호를 부여한 것을 고려할 때 최소 5명의 지역구 여성후보가 의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여성이 무조건 비례대표 1번을 받는 것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은 충북에서 20명까지 여성의원을 배출할 수도 있다.

민주, 시지역만 공천…기초 3명 ‘가번’ 부여
민주당 충북도당은 4일 현재 충북도의회 청주 9선거구에 현역 비례대표인 최미애 의원을 공천했고 기초의 경우 청주시의회 2명, 충주시의회 1명, 제천시의회 2명 등 총 5명의 여성후보를 지역구에 배치했다. 여성의무공천대상인 도시지역에서만 후보를 냈을 뿐 군지역에는 여성후보가 전무하다.

최미애 의원이 출마하는 도의회 청주9선거구는 한나라당 도의회 현역인 정윤숙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청주시의회 자선거구에 서명희·이행임 후보가 각각 가·나번을 받아 그야말로 여성천하다. 선거운동 구역에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최 후보는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다.

어찌 됐든 양당구도 선거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적은 수의 후보를 냈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기초의회 여성후보에게 최대한 ‘가번’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지역구 당선자 배출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청주시 나선거구의 제정숙 후보만 ‘다번’을 받고, 안혜자(청주 바), 허영옥(충주 사), 양순경(제천 다), 최경자(제천 마)  후보 등 4명은 모두 ‘가번’을 받았다. 이 가운데 안혜자 후보와 양순경 후보는 현역 비례대표 의원이고 양 후보는 제천시의회 부의장이다.

유행렬 민주당 충북도당 사무처장은 “지역구 공천을 신청한 여성후보들에게 되도록 당선에 유리한 ‘가번’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여성후보들이 공천신청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여서 일단 비율면에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유 처장은 또 “우리가 (공천)장벽을 쳐놓은 것은 아니다. 여성정치인들 스스로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라면서도 “아무래도 지금까지 남성위주의 정치풍토가 굳어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여성후보들의 지역구 당선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앞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여성후보들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충북도의회 비례대표 상무위원 경선에서 정지숙 전 충북도 여성복지과장을 1번에 추천했다. 당초 유력한 1번으로 떠올랐던 민경자 도당 여성위원장은 13표를 얻는데 그쳐 15표를 얻은 정 후보에 이어 후순위로 밀렸다. 
     
민노, 청주시의회 2명 공천 ‘적지만 강하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은 여성후보에 대한 의무공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이전부터 여성후보 공천에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여성·장애인·청년 등을 상대적 사회약자로 보고 정당의 성격상 이들을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국회의 경우 비례대표를 포함해 여성 당선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지방정치에 있어서는 당선에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민노당 충북도당은 4일 현재 6.2지방선거에 지역구 기준, 모두 10명의 후보를 공천했다. 이 가운데 여성후보는 청주시의회 마선거구의 차순애 후보와 아선거구의 정남득 후보 등 2명이다. 비율로는 전체 공천자 중 20%가 여성후보다. 두 후보는 모두 월드텔레콤 노조에서 활동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지만 차 후보는 아파트 주민대표, 정 후보는 보육아동사회복지사로서 저소득층 공부방에 종사하는 등 서민생활정치에 천착해 왔다.

이 가운데 정 후보는 2번의 출마경험이 있어 나름대로 정치인으로서 얼굴이 알려져 있다. 2008년에는 총선(청주 흥덕을)에 출사표를 던져 5% 이상 득표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청주시의회 자선거구에 출마해 불과 68표 차로 낙선했으나 이는 진보정치의 불모지에 가까운 충북에서 여성후보가 그것도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약진이었다. 

신장호 민노당 충북도당 위원장은 “절대적으로 많은 후보를 내지는 못했지만 청주의 살림살이를 꼼꼼하게 견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여성후보를 공천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진보정당 후보를 지방의회에 진출시켜 보수정당 일색인 지방자치에 최소한 감시의 통로라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은 충북도의회, 청주시의회 등 2곳에만 각각 1명씩 비례대표를 공천할 계획이다. 물론 2명 모두 여성후보다. 도의회 비례는 4일 현재 전국학습지노조위원장 출신의 이소영 충북지역노조위원장이 유력하고, 청주시의회 비례는 2008년 총선출마(청주 흥덕갑) 경험이 있는 장우정 청주시당부위원장으로 결정됐다. 어찌 됐든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에서 단 1석이라도 당선자가 나온다면 여성일 확률이 사실상 100%다.   

군소정당, 여성정계진출 ‘상징성’으로 승부
미래연-친박 성격 강조하며 여성후보 청주시장 공천

참여당-몽골 이주여성 ‘체제그수렌’ 道 비례대표 1번

▲ 변이인 미래연합 청주시장 후보 ▲ 체체그수렌 국민참여당 도 비례 1번
여성후보 당선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군소정당들은 파격적인 공천에 따른 상징성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구 친박연대 가운데 한나라당과 합당하지 않은 잔류파들의 정당인 미래연합은 출판사 대표인 변이인 후보를 청주시장에 공천했다.

변이인 후보는 3일 청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생활의 경험과 가정주부, 교육자, 사업자, 평범한 직장인 등 사회 여러 분야의 경험을 살려 청주시를 어느 도시 못지않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각오’로 청주시장에 출마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 후보는 “시장후보는 오랫동안 정치에 몸을 담아서 실질적인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잘 알 수 없는 정치인이 아니어야 하며, 행정만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구습을 버리기 힘든 행정가도 아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여고, 충북대를 졸업한 변 후보는 제천중학교 영어교사,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선임연구원를 거쳐 현재 출판사인 굿·자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김준환 도당위원장은 “미래연합은 궁극적인 목표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정당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후보를 청주시장 후보로 내는 것은 상징성이 있고 당사자도 상당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참여당은 4일 약속한대로 결혼이주여성을 비례대표 1번에 공천했다. 주인공은 몽골 출신의 ‘체체그수렌’이다.

몽골에 출장 온 현재의 남편에게 몽골어를 가르쳐주다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돼 1998년 청주로 온 체체그수렌은 “누구든지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이기든 지든 참 용기 있는 일이다. 이주여성이 한국말은 모른다고 해도, 알고 보면 멀쩡한 사람이다.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후보자의 용기가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람이 대단해서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이주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출마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민참여당은 지난달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창당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비례대표 1순위를 이주여성으로 영입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평등권을 보장하고, 개방적인 다문화 사회를 실현하며, 취업 결혼 이민 등으로 들어온 외국인과 재외동포들이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광직 도당위원장은 “우리는 소수자를 배려하는 정당이다. 충북만하더라도 결혼이주여성이 5000명에 이르고 이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대변하기 위해 이주여성을 비례대표 1번에 공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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