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조직·리더십 면에서 남성보다 열세···가족도움 받아야
“反정치적이고 부드러워야 한다고 교육받아··나서면 욕먹어”

충북도내 여론주도층 인사 중 여성의 비율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 중 정치계는 특히 그렇다. 현재까지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여성 자치단체장은 한 명도 없었다. 민선이후 지방의원의 숫자도 손에 꼽을 만하다.

지난 2006년 당선된 여성의원은 20명이다. 광역의원 31명 중 여성의원은 3명으로 전체의9.7%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체 기초의원 131명 중 여성은 17명으로 13.0%에 그쳤다. 그 중 지역구 의원은 2명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이 지역구 선거에 출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후보들을 만나 고충을 들어보았다.
 

 

충북도내 여성계는 지난 4월 21일 성평등사회를 앞당기자는 취지에서 여성정책 의제를 발표했다.

“여성조직만으로 선거하기 힘들어”
대부분의 여성후보들은 돈·조직·리더십 면에서 남성보다 열세에 놓여있다. 후보들도 이를 시인했다. 여성후보들이 비례대표에 몰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성후보들이 출마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족들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인 여기서부터 브레이크에 걸려 출마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꽤 있다.

여기서 동의를 얻어야 후보들은 재정적·실제적 도움을 받는다. 유권자 수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청주시의원은 4700~4800만원, 도의원은 5100~5200만원까지 선거비용을 쓸 수 있다. 출마하면 아무리 안 쓴다고 해도 사무실 임대료와 홍보물, 활동비, 인건비 등 최소 몇 천만원은 기본으로 들어가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성과 달리 가족의 동의가 필수사항이다.

최미애 민주당 도의원 후보는 "여성은 사회경제적으로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재정적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여성후보들은 집안살림까지 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간혹 자녀문제까지 신경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남성처럼 완벽하게 선거에 몰두하기가 힘든 게 어려운 점이다"라면서 "남성들은 혈연, 지연, 학연 모임에 관여하면서 조직을 관리하는데 여성들은 이런 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집안살림 팽개치고 밤 늦게까지 조직관리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실제 보통의 성인 남성들은 동창회,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와 각종 친목모임에 들어가 활동한다. 남성 정치인들은 최소 30개 이상의 모임을 관리, 운영한다는 게 한 남성후보의 말이다. 정윤숙 한나라당 도의원 후보도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여성 조직만으로 선거를 치르기는 힘들다. ‘반 남성화’된 나도 조직관리에 한계를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남편이나 가족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 후보들은 남성들이 어려서부터 조직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기르는데 반해 여성은 그렇지 못한 것도 선거에 출마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미애 후보는 “여성이 남성처럼 앞에 나서면 정치적이라고 욕 먹는다. 그래서 여성들은 反정치적이고 부드러워야 한다고 교육받고 자랐다.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남성 정치인이 머리띠 두르고 주먹 쥐면 씩씩한 것이지만, 여성이 그렇게 하면 설친다고 욕 먹는 게 우리사회 분위기다. 그렇다보니 정치와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미덕처럼 여겨진다”면서 “출마를 했어도 이런 분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최 후보는 이번에 머리띠 두르고 주먹 쥔 사진의 명함을 만들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폐기했다. 정윤숙 후보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권모술수(?)에 약해 정치에 나서기 힘들다. 정치를 하면 온갖 구설수에 오르는데 이런 것도 이겨내야 한다. 출마하고 정치를 하려면 남성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술을 마시게 되는데 똑같이 마셔도 여성만 욕 먹는다”면서 “전반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도 여성 출마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주변에서 ‘왜 정치를 하느냐’고 말리는 사람들도 정치인이 좋은 소리를 못 듣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여성정치세력연대는 여성들에게 일찍부터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딸들을 위한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캠프에 참석한 여학생들.

‘여성이 해야 깨끗하다’는 인식
그런가하면 남성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운동 단계부터 배우자들과 함께 뛰는데 여성후보들은 외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 청주시의원 후보로 나선 서명희·이행임·이종순 씨는 남편이 직 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혼자 뛰어야 하는 게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

또 최광옥 한나라당 청주시의원 후보는 “남성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여성들은 살림을 해봐서 돈을 아끼는 게 습성이 돼있다. 물론 선거법 테두리내에서 쓰는 돈
을 말하는 것”이라며 역시 남편으로부터 재정·조직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 여성 후보들은 이제 “여자가 뭘 정치를 하느냐”는 소리는 거의 듣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 만큼 우리사회가 변했음을 실감한다는 것. 지난 94년 청주 시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던 4선의 최광옥 후보는 “당시에는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여자가 하면 더 잘한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서명희 후보도 “요즘 남성 자치단체장들의 공직비리가 터져 나오자 여성 후보를 눈여겨 보는 유권자들이 늘었다. 여성들이 정치를 하면 오히려 깨끗하다는 인식들이 있는 것 같다”고 동의했다. 실제 여성 정치인이 많은 나라일수록 청렴하다는 통계도 있다. 여성 후보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주민대표 역할을 할 자신이 있다면 정치에 한 번 도전해볼만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쉽고 다면적이고 종합적 사고를 하는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생물학적인 성이 여성이라고 다 여성후보가 될 수는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 여성의 대표가 될 수 없는 여성들이 공천을 받고 당선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들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충북여성포럼은 지난 2월 ‘여성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제안서’를 채택하면서 최소한 비례대표 50%이상 할당과 선출직 30%이상 여성 공천할당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천된 일부 여성의원들에 대해 여성의 대표로 자격 시비가 일었고, 여성 정치참여 확대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이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대표로 공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 후보를 공천하는 것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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