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비례대표 여성의원들 공천 우수수 탈락, 의무공천제 악용사례도
“총선·대선 표몰이용으로 공천, 유능한 여성 기피하는 것 큰 문제”

‘뚜껑 열고보니 별 것 아니네.’ 말만 무성했을 뿐이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충북도내 지역구 여
성후보는 역시 많지 않다. 4일 현재 출마자는 한나라당 9명, 민주당 6명, 민노당 2명 등 총 17명으로
나타났다. 다른 정당까지 합치면 20여명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보다 출마자가 늘기는
했으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아직도 한참 밑돈다는 게 지역 여성계의 분석이다. 참고로 2006년
에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총 56명이 출마했다.

올해는 여성 의무공천제가 처음으로 시행돼 기대를 모았지만, 공천과정에서 남성후보에게 밀리는 사
례도 몇 건 발생했다. 의무공천제의 주요 골자는 국회의원 지역구에 여성 한 명 의무공천이다. 청주
시를 예로 들면 흥덕갑·을과 상당 해서 3명만 공천하면 된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도 구분하지 않고
각 당에서 기껏해야 3명 공천하면 의무를 이행하는 셈이 돼 ‘빛좋은 개살구’라는 게 여성들의 말이
다. 그래서 차라리 의무공천제 대신 과거의 ‘여성 30% 공천 권고사항’을 손질해 ‘여성 30% 공천
의무’로 바꾸자는 여론이다.

최광옥 도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은 이번에 신규식 서원대 총동문회장과 제4선거구(모충, 사직1·2,
수곡1·2)에서 도의원 공천을 놓고 겨뤘으나 한나라당은 신 회장을 공천하고 최 의원을 시의원 후보
로 낙점했다. 그리고 남기예 전 충북새마을부녀회장은 제5선거구(분평·산남동)에서 박종룡 청주시의
원과 공천경쟁을 벌였으나 탈락됐다. 남 씨는 비례대표 청주시의원을 신청했다.

또 한나라당은 의무공천제를 악용, 여성후보들을 분노케 했다는 게 정가의 소식이다. 한 여성후보는
“의무공천제 때문에 당한 여성후보가 몇 명 있다. ‘공천줄테니 나오라’고 하면서 솔깃하게 얘기한
뒤 나오면 안 주고, 안 주고 하는 식으로 이 제도를 악용했다. 급기야 급조된 여성 2명은 공천 약속
을 받고 청주시의원 예비후보를 등록했으나 결국 ‘팽’ 당했다. 공천권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참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여성들의 표로 심판하겠다”
지난 2006년 선거 때 지방의회에 입성한 도내 여성의원은 모두 20명. 이 중 비례대표로 들어간 여성
이 18명, 지역구가 2명이다. 그런데 올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14명에 불과하다. 광역의원은 모두 출
마했으나, 기초 비례대표 의원 중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이 8명이나 된다. 출마자 중 2명은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과 다른 당으로 나섰다. 주로 도내 군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원으로만 충족할 수 없는 각 직능분야의 전문성을 보호한다는 목적아래 시작
됐다. 따라서 소수자와 전문성 배려원칙의 의미가 들어있다. 여성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나라에서 비례대표를 통해 여성의원을 길러내자는 목적이 있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
이다.

하숙자 충북여성정치세력연대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 중 공천받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
다. 하나는 정당에서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용으로 공천해 비례대표가 끝난 뒤 지역구로 연결되지 못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공천을 주지 않는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 여성의원이 비례대표 의원을 한 번 지내면 선출직으로 돌아서 자연스레 여성정치세력화를 이뤄야 한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여성 지위향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천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전문성을 가진 유능한 여성을 공천하는 게 아니고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 도움이 될 만한 여성을 공천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일회용 공천밖에 되지 않아 다음 선거 때 선출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후보는 비례대표 한 번 하고 정계를 떠나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두 번째는 능력이 있어도 남성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보통 총선이나 대선 때 표몰이용으로 비례대표를 받는 여성의원들은 자질시비를 불러오고 여성의 정
치세력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계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입김에 의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천(公薦)이 아니고 사천(私薦)인 셈이다. 유권자들이 가장 의아해 하
는 부분은 이번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이다. 여성계의 한 인사는 “예상 밖 결과에 놀랐다. 도대체 공
천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당 기여도 인지, 유능한 일꾼을 뽑자는 것인지 헷갈린다. 비례대표의
참 뜻을 살리지 못하는 결과에 대해 여성들이 표로 심판하겠다”고 비판했다.

봉명·운천·신봉동은 ‘여성특구’?
청주지역 6명 후보 중 4명 몰려 있어 ‘화제’
정윤숙-최미애, 서명희-이행임 불꽃튀는 경쟁

청주시 봉명1·2동과 운천·신봉동, 강서2동에 '여성특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지역구에서만 4명
의 여성의원이 출마하기 때문이다. 도의원 후보로 한나라당 정윤숙 의원과 민주당 최미애 의원, 청주
시의원 후보로 한나라당 서명희 의원(가)과 이행임 의원(나)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많은 여성후
보가 한 지역구에 몰린 것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그래서 여성 의원이 한 명이라도 더 당선되기를 바라는 지역 여성계에서는 여성후보가 몰려있는 상황
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여성계 인사는 "여성후보들끼리 싸우라고 한 곳에 몰아놓은 게 아
닌가 의심된다. 여성후보들에게도 결코 바람직스런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모두 당선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해 그 만큼 여성 의원 숫자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모 씨는 "남성 정치인들 같으면 지역구를 옮겨서라도 같이 맞붙는 것을 피할텐데 여성들은 무리수
를 두지 않아 이런 현상이 온 것 같다. 공교롭게 4명 모두 지역구가 겹쳐 여성의원 당선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듯 하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권자들이 4명의 여성후보를 분간하지 못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명함을 내밀면 "아까 받았는데 왜 또 주느냐"며 사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후보는 "이럴 때는 속이 타 들어간다.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성이라고 무조건 같은 후보인줄
아니 어떻겠느냐"고 속상해 했다.

한편 도의원 후보 정·최 의원과 시의원 후보 서·이 의원은 현재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의식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모 후보 측에서는 상대 후보 주변을 돌며 혹시
유권자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지, 신고된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들이 명함을 돌리지 않는지 일일
이 체크하며 벌써 몇 건을 선관위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여성후
보들의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유권자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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