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흑자 후 임금인상 기대감 부풀어올라
노조 “회사먼저 살리고 보자” 대승적 양보

한국 네슬레 사태만큼 주목받지는 했지만 모처럼 만의 분기흑자 달성 이후 몸살을 톡톡히 앓아온 하이닉스 반도체의 최근 뒷얘기가 뒤늦게 시선을 끌고 있다.하이닉스는 올 3/4분기에 9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불과 3개월 전인 2/4분기때 1830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것과 비교할 때 엄청난 상황변화다. 하이닉스의 분기흑자는 2000년 9월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이후 몇차례 흑자를 기록한 뒤 2001년 4/4분기 이후 무려 1년 6개월(6개 분기)만에 처음이다.

하이닉스 반도체 경영진은 이같은 사실의 의미와 상징성을 최대한 활용, 모처럼 만의 분기흑자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지만, 흑자기록이 경영진에게 ‘좋은 뉴스’만 되지는 않았다. 지난 3년간 임금동결에 상여금 자진 반납을 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피땀을 흘려온 직원들의 오랜 ‘억눌려진 욕구’가 분기흑자를 계기로 자극 받기 시작한 때문.

경영진은 분기흑자가 달성되자 곧바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평균 월급여의 50%씩을 특별성과급으로 지급했으나 직원들은 올해 초에 마무리 지으려다 회사 사정을 보고 추후에 논의키로 한 임금협상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떡조각’을 더 내놓으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보상있어야”
하이닉스 반도체 노조는 이에 따라 노조원의 의견을 수렴, 13.19%의 임금인상안을 회사측에 제시했다. 사실 직원들은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후 지난 3년간이나 임금동결을 감수하면서 올 봄에도 “회사 사정을 봐 가며 나중에 임금협상을 하자”며 일단 회사 살리기에 총력 다해 왔다. 그런만큼 실제로는 4년간 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해 왔던 셈.

직원들은 회사의 설비투자가 전혀 없는 속에서도 임금동결을 자청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생산성을 놀라울 만큼 향상시키는 저력을 보여왔다. 회사측도 “직원들의 합심노력 덕분에 생산성이 45% 가량이나 향상되는 기적을 일궈냈다”고 인정할 정도다. 직원과 경영진은 반도체 웨이퍼의 수율(불량률을 뺀 수치)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설비투자 없이 생산능력 자체를 크게 증가시켜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내심 다급한 심정이었다. 현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실질적인 임금협상은 한 차례도 없었고 직원들의 허리띠 조이기만 계속돼 온 때문이다. 그동안 회사 살리기를 위한 노력에 노조원들이 전폭적으로 동참해 왔던 데에는 현 노동조합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동료 노조원들에게 무한정 인내를 요구하기에는 리더십에 대한 노조원의 신인도가 흔들릴 판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이번 만은 노조원들에게 실질적인 선물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노조 집행부를 몰고 갔던 것이다.

이런 배경이 노조로 하여금 회사측에 “올 임금인상률을 구체적으로 정하자”는 배수진을 치고 나서게 만들었다.

MOU에 묶인 회사측 고민
하지만 회사측 역시 고민이 컸다. 사실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해 줄 수 있을 만큼 흔쾌히 보따리를 풀고 싶었지만 이들에게는 경영자율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이닉스는 채권은행단의 신탁통치를 받는 처지다. 그리고 하이닉스에 대한 신탁통치 지침은 매년 회사와 채권은행단이 맺는 ‘MOU’(경영이행각서).

이런 만큼 작년 12월 체결한 MOU를 지켜야 할 입장의 회사측으로선 운신의 폭이 없었다. 더구나 3/4분기에 흑자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누적실적으론 여전히 적자였다. 이러니 회사측으로선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고 지난 4년 가까이 묵묵히 있었던 노조에서도 어쩔 수 없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중재’를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때 신노사문화 우수 사업장의 명예스런 호칭까지 받은 하이닉스가 이후 한동안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던 건 불문가지였다. 다만 하이닉스 노사 양측은 이런 사실을 전혀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마당에 노사가 티격태격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노위로서도 뾰족한 수단이 있을 수 없었다. 노조의 입장이 아무리 딱하다고 해서 구조조정대상에 들어있는 회사 사정을 무시하고 그들의 손만을 들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노위는 ‘올 MOU 내용대로 경영을 이행한 결과 현재 남아 있는 인건비 전용가능 예산 50억원을 대리급 이하 직원들에게만 분할지급하고 내년도 임금인상은 경영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협상’하는 방안을 궁여지책을 내놓았다.

여기서 노조는 고민했다.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뻔했다. 노사간 대결뿐이었다. 숱한 고민을 거듭하던 노조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중재안에 따를 경우 대리급 이하 직원들에게 돌아갈 지급분은 평균 40만∼50만원 가량에 불과하지만 더 이상 명분에만 소모적으로 집착하다가는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고 판단, 회사와 중노위의 안을 대승적으로 전격 수용한 것이다.

하이닉스 노조는 그 대신 내년 3월 임단협에 대비, 조용한 기다림에 들어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