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민주당 공천탈락 후유증 본격화 조짐
무소속연대, 말 옮겨 타기 등 ‘동지가 적으로’

정치의 계절은 곧 배반의 계절이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양당구도를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천을 속속 확정하면서 공천 탈락자들이 결과에 반발하는 등 배반의 조짐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탈락자들은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체감하면서 출마의 뜻을 접는 경우도 있지만 무소속으로라도 출마를 강행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당으로 이적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오히려 당이 배신을 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당선가능성 혹은 특정인사 입김에 의해 공천에 배제됐다는 것이 배신론의 요지다.  

▲ 공천결과에 따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13일 한나라당의 공천에 반발하고 있는 심흥섭(사진 중앙) 도의원 등 충주시 탈락자들.
한나라당은 12일 시장·군수와 지방의회 공천자를 확정, 발표했다. 정우택 지사도 공천이 확정됐으나 충청권 단체장 후보를 동시에 발표한다는 이벤트만 남아있을 뿐이다.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지방권력, 특히 지방의회에 있어서는 충북에서 영원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경우 이번 공천시장이 세종시 수정 추진의 여파로 다소 한산했지만 그래도 공천후유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군수 후보 중에서는 음성군수 공천에서 탈락한 이기동 전 충북도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태풍의 눈이다. 이 의원은 공천을 받은 이필용 전 도의원에 비해 도덕성, 당선가능성, 전문성 등 공천기준에서는 밀리는 게 없었음에도 보이지 않는 입김에 의해 탈락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사전여론조사에서 밀렸는데 이필용 후보의 도의원 지역구는 460샘플, 내 지역구는 260샘플로 내가 이길 수 없는 조사였다. 내가 도의회 내에서 ‘친 박근혜’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세종시 원안고수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공천탈락은 예견된 결과였다. 공심위 면접과정에서도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주목을 받는 것은 음성군수 선거가 사상 초유의 다자구도로 진행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박수광 전 군수가 지난해 12월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함에 따라 음성군수 선거는 그야말로 무주공산의 상태에서 7명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소지역주의 구도까지 겹쳐 누구도 압도적인 득표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다자구도 음성군수 선거 ‘결과 주목’
음성군수 선거는 그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접전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기동 전 의원은 ‘선거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에 복당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선택을 따르겠다는 마음뿐”이라고 답했다.

음성군과 함께 반란이 예상됐던 곳은 청원군이지만 현재로서는 찻잔 속에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 청원에서 공천을 받은 후보는 김병국 전 청원군의회 의장이다. 김 전 의장에게 밀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물은 홍익표 대청이엔씨 회장이다.

홍 회장은 “오성균 당협위원장이 김 전 의장을 끝내 놓지 못했다. 김 전 의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던 날 기초의회 예비후보들을 이끌고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사실상 출정식을 진행했을 정도로 이미 내천이 끝난 상황이었다. 지난달 28일 중앙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내가 적합도에서 이겼고, 인지도에서만 김 전 의장이 이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뒤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해 김 전 의장을 후보로 낙점했는데, 여론조사 실시에 대한 후보자 간 협의도 없었고 당협위원장이 일언반구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회장은 그러나 한나라당을 떠나 출사표를 던지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홍 회장은 “당협위원장이 나쁜 짓을 했을 때 ‘마이웨이(My way)’를 했어야 하는데 공천심사 과정에 다 참여한 마당에 이제는 명분이 약하고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자신의 지역구(충북도의회 8선거구)를 비례대표 강태원 의원에게 내준 권광택 의원은 13일 현재 무소속 출마를 전제로 주변의견을 듣고 있다. 권 의원은 “당연히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특정인의 입김에 의해 밀렸다. 주민이 뽑아줘서 4년 동안 일했는데 물러나는 것도 주민의 뜻을 들어야 한다. 도와준 분들의 의견을 고려해 15일쯤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충북도의회 4선거구에서 현역 물갈이의 대상이 된 최광옥 의원은 이미 3선을 하고 거쳐 온 청주시의회로 돌아가 도내 최초 여성 지방의회 의장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당의 상황을 배려할 필요가 있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앞만 보고 가는 성격이라 빨리 마음을 굳혔다. 돌이켜보면 주민들과 밀접히 접촉하는 기초가 더 보람이 있었다. 능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고 시의회 4선에 성공해 여성 최초의 의장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충주 탈락자, 무소속연대 가시화 
심흥섭 충북도의회 의원 등 충주지역 한나라당 공천탈락자 6명은 13일 충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공천은 누구라도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이는 공천이 아닌 사천(私薦)”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들의 공천반발이 항의에 그치는 수준을 넘어 이른바 무소속 연대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의회 후보 탈락자에 시의회 후보 탈락자들까지 가세한 무소속 연대의 기준점은 도의회 공천에서 탈락한 심흥섭 도의원과 류호담 충주시의회 의장이다. 심흥섭 의원은 3선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공천에서 배제되자 13일 탈당계를 냈다. 류호담 의장은 공천탈락설이 제기되던 5일 일찌감치 탈당계를 내고 무소속 출마를 준비해 왔다.

이밖에도 도의회 공천에서 밀려난 김원석, 김학철, 윤동노 예비후보와 시의회 공천에서 낙천한 심재익, 황병주 현역 시의원도 무소속 연대에 자세할 기세다. 이들은 12일 충주시의회 의장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연대에 가세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인 A씨는 “선거는 혼자 치르는 게 아니라 최소한 지인들이 힘을 모아줘야 한다. 그래서 출마여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다만 워낙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낙천됐기 때문에 무소속연대가 규모를 갖게 될 경우 승산이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어찌 됐든 3선에 부의장까지 지낸 심흥섭 도의원을 필두로 류호담 현 시의회 의장, 4선 시의원으로 의장까지 역임한 황병주 의원 등 중진들이 대거 포진한 충주지역 한나라당 공천탈락자들의 행보는 지방선거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일각에선 민주당 단체입당 카드?
다만 A씨는 무소속연대가 집단으로 민주당 행을 택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세가 강한 충주지역에서 인물난을 겪고 있는 민주당이 무소속연대에 대한 단체영입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A씨는 “나를 포함해 일부 인사는 당적변경에 대해 혐오감이 크다. 무소속연대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도 관심사지만 민주당 입당이 구체화될 경우 단체행동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제천지역의 반발도 충주 못지않다. 제천시의원 공천을 신청했다가 최근 사퇴한 박관희 예비후보는 “공천심사에서 최고점수를 받았지만 어느날 당직자들이 찾아와 ‘현직 시의원에게 공천을 줘야 한다’며 사퇴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박 후보는 “회유가 계속돼 고심 끝에 탈당하고 예비후보를 사퇴했다”며 “한나라당의 공천심사 기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초의원 선거 공천을 신청했던 현직 제천시의원 유영화, 김봉수, 조덕희 예비후보도 한나라당 1차 공천결과에 반발해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또 충북도의회 제천2 선거구 공천에서 탈락한 김문천 전 충북도의원도 무소속 출마를 위해 탈당하는 등 공천을 둘러 싼 한나라당 제천지역 공천 내홍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 국민경선으로 이탈자 ‘발목’
한나라당에 비해 다소 느린 템포로 공천자를 발표하고 있는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공천 후폭풍의 영향력이 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이시종 충북지사 후보 외에도 7개 시장·군수 후보를 확정했고, 경합중인 3개 지역 군수는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한 뒤 18일 발표할 예정이다. 도지사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이용희 의원의 암묵적 도움이 필요한 만큼 보은, 옥천은 군수후보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2개 여론조사기관을 선정해 전화면접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한범덕 청주시장 후보, 서재관 제천시장 후보가 이 방식에 의해 후보로 결정됐다. 국민경선은 당원을 일정비율 참여시키는 국민참여경선과 달리 ‘무늬만 경선이다’, ‘민주당답지 않다’는 비판여론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일단 한범덕, 서재관 후보가 낙천한 이범우(청주), 권건중(제천) 예비후보에 비해 본선 경쟁력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반발은 유야무야됐다.

향후 국민경선을 실시하는 3개 군 지역은 후보가 그만그만하기 때문에 결과에 따른 반발이 더 거셀 수도 있지만 일단 불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비록 여론조사라 하더라도 분명히 경선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정당 경선에 참여한 후보가 해당 선거에는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복수의 예비후보가 등록한 단체장 선거에 어찌 됐든 예외 없이 경선을 도입함으로써 낙천자의 불복을 사전 봉쇄한 셈이다.

단양군수 선거는 당초 이건표 전 군수와 이완영 전 도의원의 경선이 예상됐으나 이 전 의원이 경선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한마디로 도둑을 맞은 기분이다. 당을 위해 헌신했는데, 헌신짝 버려지듯 버림을 받았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당으로 돌아오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행렬 도당 사무처장은 그러나 “당원이 참여하는 오프라인 국민참여경선은 동원 경선, 돈 경선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 후보자가 다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여론조사 국민경선을 실시한 것이지 특정후보의 유·불리를 따져서 여론조사방식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 처장은 또 “영입인사에 대해서도 이 점은 분명히 주지시켰다. 단양군수 후보로 영입한 이건표 전 군수의 경우에도 ‘경선을 할 거면 들어와라. 경선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보이지 않는 반역이 더 문제
민주당에서 공천 탈락자의 반발이 가시화된 것은 음성군수 공천에서 탈락한 김전호 전 단양부군수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다. 김 전 부군수는 지난해 12월 명예퇴직 후 민주당에 입당해 고향인 음성에서 군수 출마를 노렸으나 예비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경선대상 3배수에도 들지 못하자 법원에 ‘시민공천배심원 경선후보자 선정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자 7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부군수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구태정치, 정당공천에 맞서 정책과 인물로 평가받고자 출마한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공약 또한 파격적이다. 임기 동안 연봉을 반납하고 군수실과 부군수실을 없애겠으며 민원실과 행정과에서 집무하겠다는 것. 1호, 2호 관용차 대신에 1t 트럭을 타고 음성군 공무원 근무 시간을 탄력적 운용하겠다는 공언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민주당이 더 염려하는 것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반역이다. 당선이라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출마의 꿈을 접지만 선거운동에 백의종군은 고사하고 상대 당 후보를 돕는 반란도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주지역에서 도의원 출마를 준비했던 B씨는 시내요지에 있는 자신의 건물에 한나라당 단체장 후보의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협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공천을 보장할 것처럼 언지를 줘서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공심위 결과 경선 없이 탈락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는 뒷얘기가 들려온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공심위원 C씨는 “도의원 후보까지는 사전여론조사를 모두 실시해 채점표에 반영했다. 더 중요한 것은 준비도와 발전가능성에 대한 판단이다. B씨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당내 경선에 대비한 대의원 작업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경선에 간다면 공심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공천이 확정된 반면 민주당은 아직 뒤처리가 남아있는 상태다. 여기에다 자유선진당의 공천이 끝나면 공천탈락에 따른 예비후보자들의 이합집산도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친박 전멸한 충북선거판에 박근혜 내려오나
대선 앞둔 2006년 지방선거와는 판 자체가 달라

▲ 거듭된 악수에 결국 붕대를 감아야했던 2006년 박근혜의 손.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근혜의 악수(握手)’는 판도를 움직였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충청과 영남 등을 집중적으로 누비며 자신에 대한 지지표를 지방선거 투표함으로 쓸어 담았다.

그러나 공천에서 이 같은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단 2006년은 2007년 대선을 불과 1년 앞둔 상황이어서 사실상 박 전 대표 자신의 선거운동과 궤를 같이했고 친박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2012년 대선과 거리가 있고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과도 세종시 문제로 불편한 관계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서 공교롭게도 친박성향의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한 것도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충북의 경우 친박인 송광호 최고위원의 지지를 받은 민경환 전 충북도의원이 제천시장 경선에서 탈락했고 음성군수 공천에서도 친박 이기동 의원이 친이 이필용 의원에게 밀렸다.

결국 친박 중에 살아남은 정치인은 김병국 청원군수 후보와 김법기, 정윤숙 도의원 정도다. 정우택 지사도 세종시 수정을 반대했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지켜볼 때 2005년 한나라당 입당 시에만 찬박임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친박이지만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은 어찌 됐든 한나라당적의 박 전 대표의 충북행이 달가울 리 없다. 이기동 무소속 음성군수 후보는 “설사 박 전 대표가 충북에 내려오더라도 선별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친박 후보가 탈락한 지역은 알아서 지원유세를 피할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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