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까지 인문학·인문학··· 열풍 불지만 청주는 ‘무풍지대’
충남대, ‘대전인문학포럼’ 운영하다 별도 기관 독립 ‘인기폭발’

인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답해준다. 요즘처럼 사회가 혼란할수록 인문학은 필요하다. 사진은 국립청주박물관의 '박물관 연구과정'중 현장답사.

서울시는 지난 3월 23일 2010 ‘희망의 인문학 과정’ 입학식을 열었다. 지난해 노숙인 등 저소득층주민 1643명이 신청해 이 중 73.6%인 1210명이 수료, 주변을 놀라게 한 바로 그 강좌다. 프로그램은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학 중심의 강좌를 기본으로 하고 경영·재무 컨설팅 등 실용경제 교과와 문화공연 관람 등 현장체험학습을 지난해보다 강화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이 강좌는 서울형 그물망 복지정책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다.

서울시가 올해 ‘희망의 인문학 과정’ 전문 교육기관으로 선정한 곳은 경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외국어대, 성공회대 등 5군데. 지난해 4군데서 한 군데 늘어났다. 또 올해는 지난해 참여한 졸업생을 대상으로 심화과정을 운영, 재학습의 기회도 줄 예정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경기 성남시 산하의 분당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인문학 강의’를 개설해 철학·역사·종교분야 강의를 했고 대구시 수성구가 만든 ‘수성 아트피아’에서는 철학·문학·역사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 강남구는 ‘강남 아카데미’를 개설해 시민교육을 실시했다. 일부 사회단체나 사단법인 같은데서 하던 인문학 강좌를 이제는 지자체가 나서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강좌는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공간과 강사를 확보하고 시민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부럽기만한 ‘대전인문학포럼’
한 때 인문학이 위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으나 이제는 다행히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게 학자들의 얘기다. 하지만 청주지역은 왠일인지 이런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대학이 많은 대학도시이건만 현재 어떤 대학도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지 않았다. 단기적으로 몇 몇 강좌를 초청강연회 식으로 한 곳은 있으나 최소한 6개월 이상 운영하는 곳은 아쉽게도 없다.

지난 2008년 9월 흥덕문화의 집이 청주문화원·문화사랑모임과 공동주최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당시 강명관 부산대 교수,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김종철 영남대 교수, 강수돌 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해 ‘다시 인문학에 길을 묻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역설했다. 이들은 모두 ‘전국구 강사’로 수준높은 강의를 했으나 안타깝게도 참여율은 저조했다.

김희식 흥덕문화의 집 관장은 “어렵게 강사들을 모셔왔는데 청중들이 15~20명밖에 모이지 않아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 강좌당 1만원을 받았는데 강사료 주기도 벅찰 만큼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예산이 없는 기관에서는 홍보비·강사료·기타 경비 때문에 해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학이나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 반면 충남대는 매우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다.

충남대는 당초 인문대 부속기관인 ‘대전인문학포럼’에서 줄곧 인문학강좌를 해오다 이를 고유 브랜드로 독립시키면서 ‘대전인문학포럼’이라는 별도 기관을 설립했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이라는 타이틀을 단 ‘대전인문학포럼’은 지난 3월 30일 제57회 강좌를 열었다. 매월 2회 강좌를 열고 무료다. 충남대와 대전광역시가 후원을 하고 장소는 충남대. 넓은 홀에서 강연을 해도 대학생과 일반인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차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이이화·이정우·김탁환·탁석산·성석제·황지우·도종환 씨 등 유명강사들이 다녀갔고, 올 상반기에 김용택 시인과 김영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의 강의가 예정돼 있다.

충남대는 포럼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강사 선정 등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포럼 관계자는 “격주 화요일에 강좌를 하는데 시민들이 평균 300명씩 모인다. 강좌가 좋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온다”고 말했다. 인문적인 지식의 갈증을 풀어주는 이 강좌가 좋다고 입소문나자 인터넷 사이트에는 강의후기도 여러 건 올라와 있다.

얼 쇼리스가 가르쳐준 교훈
인문학 강좌 바람은 미국에서 건너왔다.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는 살인사건에 연루돼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8년째 복역중이던 여죄수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에 더 빈곤해진다는 얘기였다.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보다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결론을 내고 95년 노숙자·빈민·마약중독자·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열었다. 그는 여기에 철학·미술사·논리학·역사·문학 등의 강좌를 개설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렇게 해서 얼 쇼리스가 만든 ‘희망의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는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 원조가 되었다. 그가 지은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刊)’은 국내에 번역돼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대학수준의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에 몰려든 노숙자·전과자·기초생활수급권자 등 400여명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 왜 인문학 공부가 필요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나라 노숙인다시서기센터에서 운영한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과정'이 이를 모델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최고인 세상, 철학의 부재로 영혼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인문학에 다시 길을 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읽는 청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부하는 청주’를 만들자. 그 곳에 가면 항상 인문학적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요즘처럼 사회가 혼란할 때는 차분히 앉아 지성을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싶거든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올 봄 청소년문화학교·어린이학교·박물관 연구과정 시작

국립청주박물관의 '어린이학교' 과정 중 국악체험

국립청주박물관(관장 김성명)은 쉬지 않고 연중 문화강좌를 연다. 지역에서는 역사와 문화에 관한한 국립청주박물관의 강의를 따라 올 기관이 없다. 올 상반기에는 청소년 문화학교, 어린이학교, 박물관 연구과정, 성인대상 교육프로그램 ‘매난국죽’, 토요문화산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수강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강의는 모두 무료이고 답사비·교재비·재료비만 실비로 받고 있다. ‘청소년 문화학교’는 도내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들은 한참 대학입시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나이 이지만, 박물관측은 청소년들이 주입식교육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전통문화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김성명 관장은 “고등학생들은 입시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 박물관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입시에 매몰된 만큼 이런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문화강좌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평소 인문학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김 관장은 거의 시도하지 않는 고등학생 대상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다. 정신적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게 그 어떤 지위나 부를 갖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관장은 특히 6개월 이상의 연속강의 방식을 고집한다.

교과내용은 박물관과 문화유산, 충북의 역사와 문화, 우리음악 이야기, 전통건축에 깃든 옛 사람의 정신, 기록문화의 변천 등이며 현장답사도 마련돼 있다. 오는 6일까지 접수를 받고 17일에 입학식이 있다. 토요일 오후 2시~5시 총 12번 강의한다. 입시공부에 찌든 머리를 식힐 겸 문화와 접속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국립청주박물관의 '어린이학교' 과정 중 도자기만들기 실습

“입시에 매몰된 만큼 문화 필요”
또 ‘어린이학교’는 초등학교 4~6학년 대상의 역사교육이다. 교육내용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삶, 마한이야기, 우리의 종과 소리, 불교조각 등 주제별 16개 이론수업과 체험학습으로 진행된다. 어린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고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정립시키고자 마련됐다. 4일 입학식을 갖는다. 학교교육에서 맛볼 수 없는 다양한 역사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하는 ‘박물관 연구과정’은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주제로 총 8차에 걸쳐 열린다. 김 관장은 “만주·한반도 일대에서 발굴된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신화속에 머물렀던 고조선을 다시 보는 프로그램이다. 당시의 정치조직과 성격, 문화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에서 접근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의는 고조선을 바라보는 시각, 고조선과 주변집단,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그 사회적 성격 등과 현장답사가 있다.

아울러 ‘큐레이터와의 대화-박물관 유물여행’ 시간에는 박준호·한봉규·김현정 씨 등이 1, 3주 토요일 오후5시에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 이야기, 힘을 가진 자 청동기인, 신석기인 농사를 시작하다 등에 대해 강의한다. 박물관 전통문화 교실 ‘매난국죽’은 우리나라 전통회화의 우수성에 대해 공부하고 사군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시간. 사군자를 중심으로 한 이론강의와 매·난·국·죽을 그린다. 4월~11월 연속 30주 동안 진행된다.

인문학 게릴라 모임 ‘수유+너머’를 아는가
함께 공부하고 먹고 노는 곳, 새로운 형태의 연구공간

국내 대표적인 인문학 연구공간으로 자리잡은 '수유+너머'.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면서 현재 6개의 단체로 늘어났다.

국내 인문학 게릴라 모임 중 대표적인 곳은 연구공간 ‘수유+너머’다. ‘코뮤넷 수유너머’로 이름을 바꾼 이 곳은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키는 곳이다. 수유+너머는 지난 2000년 서울 수유리의 작은 공부방에서 출발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가 공부방을 얻으면서 소수의 국문학자들이 세미나를 시작한 게 시초다. 이후 학교교육에서 갈증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교수, 프리랜서 작가, 학생, 주부 등이 구성원들이다.

고미숙 씨는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에서 “지식과 일상이 하나가 되고, 일상이 다시 축제가 되는 곳. 도시의 중산층으로 편입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모색되는 곳이 바로 연구공간 수유+너머다”고 정의했다. 먹고 놀고 즐기는 일상의 공간이면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배움터, 구도를 위한 명상이 가능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가는 곳마다 “함께 모여 공부를 하니 밥과 놀이와 친구가 생겼다. 여러분들도 해보라”고 강력히 권한다. 고 씨는 지난 2007년 ‘책읽는 청주’ 선정위원회가 뽑은 대표도서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의 저자면서 전국구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청주도 이미 몇 차례 다녀갔다.

수유+너머는 사회학 박사인 이진경과 고병권, 국문학 박사인 고미숙 씨가 주축이 돼서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부와 생활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앎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얘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박사과정 못지 않은 수준높은 강의
지난해 7월 대표적인 인문학 연구공간의 명성을 확인하고자 이 곳을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열공’중이었다. 식사당번을 정해 식사를 해결하고, 체력단련실에서는 운동을 하며,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연구원은 “수강생들이 원하는 강사라면 외국인도 마다하고 데려와 인기가 높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해 즉석 토론도 많이 하고, 정보를 공유해 좋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이 많아 강의료로 자체 운영이 가능하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강좌는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열린다. 박사과정 못지않게 심오하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평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고전읽기, 일본어·중국어 배우기, 루쉰세미나, 대중지성 , 동의보감 등의 반이 있고 그 때 그 때 기획세미나와 기획강좌가 많다.

그간 수유+너머는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지난 2009년 6월 수유너머 구로를 시작으로 7월에는 수유너머 길, 수유너머 강원, 수유너머 R, 수유너머 N이 문을 열었다. 본점은 수유너머 남산이다. 그러니까 총 6개의 코뮨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는 이런 성격의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인문학 박사들이 뭉쳐 만든 ‘철학아카데미’와 사이버 인문학 강좌를 하는 ‘아트앤스터디’, 문학과지성 출판사가 자매기관으로 설립한 ‘사이’, 즐거운 지식·공통의 삶·다중의 지성공간을 표방한 ‘다중지성의 정원’, 전통문화연구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동양고전 강좌 ‘사이버 서당’ 등이 그 것이다. 이 곳에서는 새 봄을 맞아 현재 철학과 과학, 영화, 글쓰기, 미학, 윤리학 등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