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 이덕남 여사 초청 대담회

"어느날 갑자기 남편(신수범)이 오더니 다짜고짜 아들과 딸은 양언니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거예요. 고향으로 내려와서 한참 뒤에 경찰서 벽보에 걸린 남편을 보고 간첩인 줄 알았습니다. 간신히 서울서 찾은 남편을 보고 경찰서에 가자고 잡아끌었더니 노산 이은상 선생님 집으로 데려갔어요. 당시 책에서나 봤던 이은상 선생은 환대를 해주시며 위대한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그때 처음 독립운동가 집안인 줄 알았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는 16일 '우리 아버님, 신채호'란 주제로 열린 대담회에서 신채호 선생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지난한 삶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투박한 어투로 관중들에게 들려줬다.

이 여사는 "살아생전 아버님을 뵌 적은 없었지만 남편과 아버님과 뜻을 같이한 동지들로부터 많이 전해들었다"면서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버님이었기에 민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로 신채호 선생의 뜻을 기렸다.

이어 "남편을 따라 아이들과 처음으로 아버님 묘소를 찾은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두미 마을의 아버님의 묘소에는 표석 하나와 사람 키만큼 자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남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며 그날 이후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로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들려줬다.

이 여사는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였음에도 다른 독립운동가와는 달리 조명이 덜 된 것은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이승만 체제를 철저히 비판하며 정치적 적대관계를 이룬 탓"이라며 "정치적 판단에 따라 오랫동안 박해를 받았고, 한동안 아버님의 묘자리조차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이후 정권이 바뀌었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아버님에 대한 예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며느리로서 탄압에 맞서 15~16년간 법정투쟁을 하느라 위암 말기로 판정받는 등 최악의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 여사는 "아버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전하고 "독립운동이 새롭게 조명되고 연구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한편,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가 '단재 신채호'전을 개최하며 마련한 이번 대담에는 도종환 시인이 함께해 신채호 선생의 족적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생활상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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