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처리를 위한 국회 특위구성이 부결되는 바람에 졸지에 이원종지사가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자신이 속한 한나라당의 상대인 열린우리당이 분위기를 주도하긴 했지만 당장 탈당하라는 주변의 요구가 가해진 것이다. 이지사로선 정치문제에 이렇게까지 자신을 옭아 매려는 여론의 불손함이 물론 서운하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본인의 업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집권 가능한 정당을 택해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며 자민련을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한 전력 때문에 이런 촌스러운(?) 시위에조차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삐딱하게 해석하면 잔뜩 상기된 사람들이 우~ 몰려 와 탈당을 주문하는 자체가 도지사의 권위를 우습게하는 처사인지도 모른다. 하기사 요즘은 대통령도 집단논리의 ‘밥’이 되지 않았나.

지난 24일, 그들의 말대로 ‘도지사실을 처 들어간’ 사람들은 이원종지사에게 “이럴 때 도지사답게 결연한 행동을 보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직 도지사에게 도지사답게 처신하라는 말이 내심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결연한 행동, 다시 말해 ‘결단’은 항상 이지사를 괴롭혀 왔다. 더 솔직하게 말해 관선과 민선을 합쳐 세 번째 지사직을 수행하면서 켜켜이 쌓아 온 업적도 이 ‘결단’ 때문에 한방에 매도되기 일쑤다. 그만큼 이지사와 ‘결단’은 도민들의 인식속에서 잘 매치되지 않는다.

지난해 당적 이동때 이지사가 보인 언행은 사실 남다른데가 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도의원들을 줄줄이 지사실로 맞아들여 이들의 입당요구를 마치 시대적 숙명으로 여론화시킨 것부터가 사람들의 의표를 찔렀다. 당시 이지사는 지역 전문가 집단의 여러 인사들에게도 개별 자문을 구하는 제스처를 취해 분위기를 잡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이미 한나라당 입당을 기정사실화한 후의 요식적 절차였더라도 이지사는 언론으로부터도 큰 화를 당하지 않고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이지사의 ‘결단’ 아킬레스건에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선은 이뤘지만 본인의 정치적 잠재력을 되레 갉아 먹은 것이다. 당시 많은 도민들은 말 그대로 이지사의 ‘결단’을 원했다. 여론을 빙자한 선택보다는 소신에 의한 돌파를 보고싶었던 것이다. 도민들에겐 소수점 이하까지를 성찰하는 지사의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때론 쾌도난마의 시원함도 간절해진다. 요즘같은 경우에 말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이, 비록 한껏 고조된 여론이지만 이에 흔들리는 것도 곤란하다. 탈당을 주문하는 항의방문단에게 “당적을 초월해 현안을 챙기겠다”고 한 말은 옳고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이미 ‘결단’의 시기를 놓쳤다. 이지사가 도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줄 적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탈당과 의원직사퇴로 배수진을 친 투표 보름 전쯤이다. 이지사도 이때 이미 국회의 분위기가 심상치않음을 직감했다. 150만을 책임지는 지사라면 이럴 때 적어도 ‘색깔있는’ 말 한마디는 했어야 옳았다. 그게 한나라당을 택한 이지사의 궤적을 기억하는 도민들의 바램이다. 큰 일이 터질 때마다 기자들이 골프장을 탐문하는 ‘불신의 악령’을 이젠 씻어야 하지 않은가.  

리더는 위기 때 빛난다. 태평성대에선 오히려 그 존재가 거추장스럽다. 지방분권 3대 특별법 제정이 표류하는 지금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장 특히 광역 시도지사들에겐 분명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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